본성 71

법문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모를 뿐'임이 분명해 집니다

법문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모를 뿐'임이 분명해 집니다  제가 설법을 할 때나 글에서나 '모를뿐'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마음 공부는 머리로 법문을 듣고 이해하는 공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법문을 듣고 그 내용을 머리로 이해하고, 정리하고, 체계화하며, 내가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불교 경전을 대입해 보아서 딱딱 들어맞을 때 느끼는 쾌감 같은 것을 마음 공부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허공에 도장을 찍듯, 마음 공부는 하되 한 바가 없어야 하고, 공부를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붙잡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법문일지라도 그것을 내 것으로 붙잡아 틀을 정해 놓고, 거기에 대입시켜 볼 어떤 기준점을 만들어 놓으면 안 됩니다. 방편으로 다양한 설법을 해..

괴로움(고통)을 없애려 애쓰지 말라.

괴로움(고통)을 없애려 애쓰지 말라. 고통(괴로움)이 실체가 없는 신기루임을 알아차린다면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리라. 살면서 괴로움(고통)이 하나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누구나 한번쯤 가슴 미어지는 고통을 겪어 봤을 것이고, 또한 그 괴로움을 가슴 속에 묻고 살고 있으리라. 지난 주에도 법회를 하는데 어떤 한 대목에서 한 사람이 유난하게 눈물을 글썽이며 흐느꼈다. 때때로 이런 사람들은 그 아픔을 죽을 때까지 가슴 속에 파묻고 살게 될 지도 모른다. 아무리 내려놓으라고 비우라고 해도 그것이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내려놓아야 하고 맑게 비워야 텅~빈 가슴으로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려놓고 텅~비울 수 있는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번뇌며 욕심이며 집착..

나는 누구인가? 나의 실체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실체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실체는 무엇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세상의 실체는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삶의 실체는 무엇인가? 바다라는 연극 무대 위에서 원인과 조건이라는 인연(因緣)에 따라 무수한 파도가 치듯, 실체가 없는 삶이란 바다라는 연극 무대 위에서 인연 따라 치는 무수한 파도에 불과하다. 세상이라는 연극 무대 위에서 온갖 존재가 벌이는 울고 웃는 삶의 스토리가 다만 ‘파도’일 뿐이다. 일어나고 꺼지는 상황을 반복하는 파도는 본질이 아니다. ‘바다’만이 본성이다. 생각이 내가 아니다. 생각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느낌 감정, 의도 의지 욕망 욕구, 분별심 인식이 내가 아니다. 몸도 내가 아니다. 몸 모양 사물, 느..

개구리 네 마리와 강물과 통나무와 마음

개구리 네 마리와 강물과 통나무와 마음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는 통나무에 개구리 네 마리가 앉아 있었다. 개구리들은 신이 나고 몹시 흥분했다. 통나무를 타고 떠내려가는 그런 여행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얼마쯤 떠내려가다가 첫 번째 개구리가 말했다. “이 통나무는 정말 신기하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가. 나는 이런 통나무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두 번째 개구리가 말했다. “여보게, 그게 무슨 터무니없는 소린가? 이 통나무는 다른 나무와 다를 게 없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해. 통나무를 움직이는 것은 강물이야.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면서 우리들 개구리 4마리와 통나무를 떠내려가게 하는 거란 말일세.” 세 번째 개구리가 말했다. “천만에! 통나무도 강물도 움직이지 않네. 움직이..

대상(對相)은 실재(實在)하지 않아… 대상(對相)은 그저 심층마음이 만들어낸 허상(虛像)일뿐

대상(對相)은 실재(實在)하지 않아… 대상(對相)은 그저 심층마음이 만들어낸 허상(虛像)일뿐 감각되는 모든 것과 삼매까지도 오로지 우리 마음이 만들어 내 업력의 종자가 아뢰야식에 보존돼 있다가 인연(因緣) 만나면 현행(現行) 견성(見性)은 본래 마음을 자각(自覺)…남과 나의 마음 결코 다르지 않아 불자라면 이 세상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유식(唯識)에서는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고 합니다. 유식무경은 오직 식이 있을 뿐이고 바깥의 경계, 즉 대상이 따로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우리 눈앞에 있는 대상(경계), 즉 물리세계(物理世界)가 엄연하게 있는데 이 물리세계(物理世界)가 어떻게 가상(假想)의 세계인가 ..

인간의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라.

인간의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라. 그대는 인간들을 다스리는 통치자(統治者)가 되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먼저 그대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대 자신도 스스로 잘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바람에 일렁거리면서 물거품을 만드는 파도가 평화로움과 고요함을 바다에 줄 수 있겠는가? 눈물이 가득한 눈이 눈물이 그득한 마음에 축복의 미소를 보낼 수 있겠는가? 두려움과 분노에 떨고 있는 손이 물 위를 이동하는 배를 수평으로 똑바르게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인간을 다스리는 통치자들은 인간에 의해 통치를 받는다. 또한 인간은 소란과 무질서와 혼란으로 가득 차 있다. 바다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온갖 풍파 속에 놓여 있다. 그리고 바다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밀물과 썰물을 경험하며..

이 세상 모든 것들(일체법)은 단지 모양과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일체법)은 단지 모양과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이다. 일체법(一切法,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단지 이름(名)과 모양(相)만 있을 뿐, 실체가 없이 텅~비어있는 것이다. 명과 상(名과 相)은 다만 가짜로 시설(施設)된 허깨비 환영과 같은 것이고, 이름과 모양의 본성은 공성(空性)이다. 어리석은 중생들은 명(이름)과 상(모양)에 집착해서 허망한 생사(生死)의 윤회에 빠져 흘러가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허망한 번뇌 망상 분별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명상(이름과 모양)의 본성은 공성(空性)이라서 생(生)겨나는 것도 아니고 멸(滅)하는 것도 아니고(불생불멸/不生不滅), 머묾도 없고 달라짐도 없지만, 다만 가짜로 시설(施設)할 수는 있다. [반야경] ✔ 일체법은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어 공(空)한..

내면의 중심, 본성, 깨달음의 성품

내면의 중심, 본성, 깨달음의 성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소유하려 하거나 지배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기뻐하할 뿐 사람들에게 표를 구걸하지 않는다. 권력(權力)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우월(優越)하다고 증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깊은 열등감(劣等感,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진정으로 우월(優越)한 사람은 권력 같은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진정으로 우월(優越)한 사람은 자신의 노래, 춤, 시, 그림, 음악을 통해서 우월한 삶을 살아간다. 열등한 사람들만이 정치판에 남아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내..

유일(唯一)한 풍요로움의 원천(源泉)

성인들의 법문, 유일(唯一)한 풍요로움의 원천(源泉) 붓다가 당시 인도의 어느 나라를 방문했는데, 왕이 붓다 앞에 나가서 붓다를 영접하기를 망설였다. 그렇게 망설이는 왕에게 총리대신이 말했다. “왕께서 붓다를 직접 영접하지 않으시겠다면, 저는 사임하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왕인 당신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러자 왕이 총리대신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왕인 내가 직접 붓다를 영접해야 하는가?” 이 총리대신은 조정에 없으면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왕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총리대신은 왕이 누리는 권력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왕인 내가 왜 거지같은 행색을 한 붓다를 직접 영접해야만 하는가?” 나이가 많은 총리대신이 왕에게 말했다. “왕인 당신이 거..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릴 때...

◈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릴 때...◈ - - 우룡스님 불가(佛家)의 가르침(敎), 즉 불교(佛敎)는 절 법당에 모셔진 불상으로서의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우리들 스스로가 본래 이미 완벽한 부처님임을 확인하는 가르침입니다. 만약 우리들 스스로가 부처님임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가슴에 맺혀있는 응어리가 떨어져나가야 합니다. 기슴에 맺혀있는 응어리는 두고 두고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때까지 응어리를 갖고 가서 내생까지도 그릇되게 만들어버립니다. 죽음(死)과 내생(來生)! 불교에서도 가장 문제로 삼는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 우리에게는 죽음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은 다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