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뉴타운돌이들이 구속되지 않은 이유
우리에겐 익숙한 장면이 하나 있다. 재계 총수가 중대한 경제범죄를 저지르고 재판장에 섰는데,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한다. “경제활동에 공헌한 바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삼성 이건희 회장도 똑같은 일을 겪으며 풀려났다. 경제에 공헌한 것은 삼성인가? 이건희 인가?
또 하나, 지난 2005년 황우석 사태로 나라가 들썩였다. ‘줄기세포는 없다’는 결과 때문이다. 그런데 황우석은 일각에서 여전히 구원자다. 줄기세포가 대한민국을 구원해 주리라는 종교적 믿음이 국민적으로 팽배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가 구원할 것은 황우석인가 국민인가? |
p.318 돈과 명성이 따라오면 과거의 죄는 편안하게 잊힌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러한 추악한 문화는 신자유주의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평가한다. 경쟁과 정복, 그리고 미덕으로 평가받는 야망을 본질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인간의 본성을 점점 추악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는 적절한 분석이다.
p.27 위대한 사회학자 로버트 머턴(Robert Merton)은 다음과 같은 말로 추악한 모순의 실체를 정확히 짚어냈다. “미국의 중요한 미덕인 ‘야망’이 미국의 중요한 악덕인 ‘일탈행위’를 조장한다”(나만 그러는게 아니다)
문제는 카르텔, 중요한 것은 이건희가 무죄를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무죄를 받은 이건희에 대한 사회적인 용서의 분위기가 감돈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문제에 국한 된 것은 아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이 아들을 때린 자에게 조폭을 몰고 가 “아구를 돌리는”장면을 연출했어도, 이를 ‘부정(父情)’의 이름으로 미화한자들이 있었다.
이는 예수, 부처가 지나간 자리를 차지한 물신(物神)에 대한 맹목적 추종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리고 전 세계 보수진영은 ‘자신 스스로도 인간임’을 깜빡 잊은 체, 사랑하는 연인, 엄마 아빠와 손잡고 놀이동산을 걷는 아이마저도 “경제주체”라고 표현한다.
p.82 보수 진영의 견해에 비춰보면 이러한 변화는 좋은 것이다. 지난 25년을 통틀어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하다.(중략) 미국은 인색하고 야비한 1980년대, 1990년대보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더욱 급속한 경제 성장과 더욱 많은 소득을 경험했다.(중략) 인색함과 야비함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정직성과 경제적 안정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이 돈을 쫒을 것이다.(속임수를 조장하는 자유시장)
이런 팍팍한 세상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화적 접근은 복잡한 경제적 접근보다 훨씬 산뜻하며 공감 가는 바 적지 않다. 특히 대안을 제시한다는 사람들 중 ‘분배’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 경우는, 경제 외에도 이미 문화적으로 우리들의 온몸을 휘감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정확히 주시할 필요가 있으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훌륭한 교재이다.
즉 단순히 “저 사람은 왜 터미널 앞 저렴한 역전다방을 놔두고 스타벅스를 가고 있는가”에 대한 접근이 아닌, “저 사람은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노동비용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착취당하는 어린이들은 아는가”란 접근인 셈이다. 노동을 한 만큼 노동비용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것 또한 자본가의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 속에서 사람 누구나 착취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아내지 못하고 있음에도 왜 그들이 스스로 댓가를 포기하는지, 그 댓가를 이루기 위해 합법적인 방법 말고도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학교라는 공간에 대해 저자는 문제를 제시한다.
p.253 고등학생들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윤리적이고 명예로운 삶’보다, 시사 문제나 정치 참여보다. 심지어는 매력적인 용모나 인기보다도 우위에 둔다.(중략) 이들 학생이 쉬운 인생을 살기 위해 편법을 쓰는 것에 대해 과연 죄책감을 느낄까? 천만의 말씀. 설문조사에 참여한 고등학생의 4분의 3이 대부분의 사람보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응답했다. 또한 91퍼센트가 “나는 나의 윤리관과 인격에 만족한다”고 답했다.(출발선에서의 속임수)
이 문제는 단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며 특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우 심각한 양태를 보인다. 선생출신의 서울시 교육감은 당선되자마자 국제중을 부활시켰으며, 심지어 초등학생을 상대로 일제고사를 실시했다. 이는 아이들에게 ‘윤리적이고 명예로운 삶’보다 ‘돈을 많이 버는’ 줄을 서는 방법을 전달한 셈이다.
이는 공교육 수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문화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교육의 문제는 또 하나 있다. 바로 그놈의 ‘벌’, 학벌, 그리고 대한민국엔 여기에 족벌이 추가된다. 워낙 가업을 잇는 것이 익숙해 국회의원도 세습하는 미덕을 가진 일본도 마찬가지다. 족벌이 학벌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상도 멀지 않았다.(아니, 시작되었다.)
p.264 헤드헌터들의 논리를 빌리면 신규 직원 채용은 시간도 엄청나게 많이 들고 위험부담도 크다. 쓸 만한 인력이 어떤 환경에서는 절반도 되지 않을 만큼 많지 않기 때문에 고용자는 기본적으로 숫자 알아맞히기 게임을 한다.(중략) 고용주는 가장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되는 인력 시장에 초점을 맞춘다. 명문대 출신이 모두 좋은 인력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고용주는 전체적으로 볼 때 나쁜 인력을 채용할 위험이 낮다고 여긴다.(출발선에서의 속임수)
그리고 이러한 거짓말, 문화를 만들어내는 문제아들의 중심에는 자본주의가 갖는 유혹을 침튀며 떠들어대는 보수정객들, 그리고 그들이 설파하는 자본주의 복음에 대해 끊임없이 침을 흘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다. 뉴타운 역시 기가 막힌 거짓말 아닌가, 그럼에도 정몽준, 오세훈, 신지호는 법정에 서지 않았다.
p.205 보수주의 정객들은 불법 약물이나 성교육, 쌍방 무과실 이혼법에서 비롯되는 유혹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그러나 고삐 풀린 시장의 도덕 위기를 언급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 어쨌든 그들은 선거에 재당선된다.(유혹의 나라)
리뷰를 쓰다 보니 정말 우울한 책인 것 같지만, 사실 집안의 사정이 있지 않았다면 더 빨리 읽었을 만큼 가독성이 있는 책이다. 저자는 저널리스트이기 때문에 많은 팩트를 수집했고 이를 독자들이 읽기 가장 편하게 풀어냈다.(번역도 대단하다. 난 영어를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들이 제일 부럽다)
미국인인 저자의 특성상 대부분의 사례제시 대상이 미국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하나씩 대입 해봐도 정확히 일치하다. 이를 맞춰보는 것도 이 책의 쏠쏠한 재미다. 이 책을 느낌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기업총수, 국회의원, 그리고 특히 ‘그 분’의 책상에 한 권 씩 꽂아두고 싶은 책’이란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사례중심으로 논지가 전개돼 문제점이 다소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 그리고 굳이 양장으로 책을 만들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집 안에서 책을 못읽는 나의 특성상 돌아다니면서 책을 읽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양장본은 무겁고 가격도 비싸서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아쉬운 건 그 정도였다.(도서출판 서돌, 데이비드 캘러헌,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