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창균 정치부장에게 정식으로 묻습니다.
- '독자 알권리'보다 '정권 이익' 중시하는 신문이 '공정성'을 입에 담나?
(데일리서프 / 문한별 / 2009-03-07)
1.
지난 5일이 '갈수록 추해지는 신문' 조선일보의 89살 생일이었습니다. 1920년 3월 5일 친일실업인 단체인 대정친목회 명의로 발행허가가 나고, 친일 악덕 지주 예종석을 발행인으로 하고, 친일상공인 조진태를 초대사장으로 해서 창간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그런데 조선일보가 자꾸 자기들 나이를 89살이라고 우기는 게 참 이상합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76살밖에 안 되거든요. 왜냐? 방씨 조선의 실질적 창업주인 방응모가 광산에서 떼돈 번 것으로 조선일보를 인수한 게 1933년의 일입니다. 그때 조선총독부는 기존의 인가를 취소하고 새로 인가를 내줬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이상재, 신석우, 안재홍, 조만식으로 이어지는 민족주의자들이 잠깐이나마 경영했던 이전의 조선일보(1924~1933)는 법적으로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방응모의 조선일보는 이후 <조광> 잡지와 더불어 충직한 친일의 길을 갔구요. 이 명확한 사실을 조선일보가 왜 자꾸 감추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각설하고, 이날 조선일보는 '가진 게 돈밖에 없는 신문'이라는 걸 자랑이라도 하듯, 무려 88면에 달하는 엄청난 물량공세를 폈습니다. 돈줄이 말라서 기자들 봉급도 제대로 못 주는 한겨레, 경향 등과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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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89주년 창간기념으로 한꺼번에 배달된 신문지 더미(2009.03.05) |
잡지 1권을 족히 능가하는 두툼한 신문지 더미를 보며 "신문의 힘은 돈에 있지 않고 기사의 신뢰성에 있다는 것을 조선일보 기자들이 깨달으면 좋을 텐데…." 잠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이런 걸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무리겠지요?
5일 자 조선일보 1면 우측을 보니, '창간 89주년'을 맞아 "또 한 번 혁신한다"며, "A2면에 '투데이' 신설", "시니어 기자가 쓰는 '뉴스 & 뷰'", "글로벌 이슈·피플", "최보식이 만난 사람", "젊은이를 위한 'JOB'면" 등등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잔뜩 진열해 놨더군요.
그 가운데 눈길을 끈 게 있었습니다. "독자와 쌍방향 소통"으로 "'오피니언' 혁신"한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조선일보 기사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사설 옆에 "조선일보를 읽고" 코너를 신설하고, 또한 독자들이 신문에 대해 갖는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해 기존의 'Q&A'와 비슷한 '그것은 이렇습니다.' 코너를 독립적으로 배치한다는 거에요.
과연! 34~35면 오피니언 란에 "그것은 이렇습니다"와 "조선일보를 읽고" 코너가 새로 마련돼 있더군요. 이하의 글에서는 조선일보의 생일을 축하(?)해 줄 겸, 신설된 "그것은 이렇습니다."에 대해 간략하게 짚어보고자 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네요.
2.
"그것은 이렇습니다." 코너가 첫 번째로 선택한 주제는 조선일보의 불공정에 관한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국회 몸싸움을 보도하면서 민주당 당직자가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의 목을 조르는 사진은 2일 자 1면 톱으로 큼지막하게 내보내면서 민주당 서갑원 의원이 한나라당 의원에게 폭행당해 허리가 다친 사진은 5면에 흑백으로 작게 처리한 것은 "(두 사건을) 동일한 비중으로 다뤘어야 하는" 언론의 공정성을 위반한 것 아닌가?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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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는 ‘목 졸리는 차명진 의원’ 사진을 3월 2일 자 1면에 큼지막하게 올리고, 허리를 다쳐 병원으로 후송되는 서갑원 의원 사진은 5면 상단 귀퉁이에 거의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작게 흑백 처리했다. |
이걸 보면, 조선일보도 겉으론 태연한 척해도 실은 "불공정, 편파, 친여신문, 한나라당보"라는 세간의 시선이 꽤나 신경쓰이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걸 맨 먼저 꺼내 들 까닭이 없지요. 스스로 질문지를 선택하고 스스로 변명하는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하는 것도 그 때문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는 조선일보 김창균 정치부장의 답변이 걸작입니다. 핵심만 간추려 소개하면, 두 사건이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무엇이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뉴스냐?'라는 기준에 재보면 위치가 전혀 달라진다는 겁니다.
요컨대, 차 의원은 급이 다른 민주당 당직자들에 의해 집단 폭행을 당했으므로 그 '의외성'에서 앞서고, 또한 서 의원이 한나라당 의원에 떠밀려 허리를 다친 것은 의원들 간의 몸싸움이 워낙에 흔한 일이라 그 '새로움'에서도 게임이 안된다는 겁니다. 김 부장은 이러한 자신의 답변에 무게를 더하기 위해 글 말미에 "당직자의 의원에 대한 폭행은 제가 아는 한, 대한민국 국회에서 처음 발생한 일입니다."라는 설명까지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습니까? 조선일보의 파격을 이해하기 위해 타신문들의 편집과 비교해 보지요. 대부분의 신문들은, 조선일보와 달리, '목 졸리는 차명진' 사진과 '허리 다친 서갑원' 사진을 평행으로 나란히 배치했습니다. 조중동의 한 축인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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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3월 2일 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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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3월 2일 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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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부장이 말한 '당직자의 의원 폭행'이 갖는 사건의 비중을 이들이 몰라서 그렇게 처리한 것일까요? 조선일보만 유식하고 다른 신문들은 무식해서요? 천만에! 그게 아니지요. 그들도 그 점을 분명 의식하고 있지만, 그러나 국회 내 폭력을 어느 일방의 잘못으로만 매도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서 양 사건을 비교적 균등하게 처리한 것일 겁니다.
중앙일보를 보면 그 점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3일 자 중앙일보 사설 <파국 피했지만 … 폭력과 편법으로 얼룩진 국회>의 한 대목을 읽어 보세요.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민주당 당직자들에게 폭행당한 사건은 특별히 충격적이다. 국회의원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다. 당직자는 정당에서 보수를 받는 사적 피고용인에 불과하다. 이런 인사들이 본청 출입금지를 뚫고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다가가 “금배지를 떼라.”라는 등 야유를 퍼붓다가 이를 나무라는 의원을 폭행한 것이다…. (중략)... 검찰은 차 의원을 폭행한 이들을 엄정히 사법처리해야 한다. 민주당은 자당의 의원도 한나라당 의원에게 떠밀려 허리를 다쳤다며 사건을 물타기 하려 한다. 두 사건은 성격이 판이하다…."
두 사건의 성격이 판이하다고 명기하고 있지요? 그러면서도 중앙일보는 1면 편집에서 <차명진 팔 부러지고, 서갑원 허리 다쳐>란 제목으로 두 의원이 폭행당한 사진을 동일한 크기로 나란히 취급했습니다. '무늬만'이라도 공정을 얘기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김 부장이 설명한 대로, 조선일보가 평소 '정권의 이익'이 아니라 '독자의 알권리' 차원에서 '뉴스가치가 있는 사건'을 빠짐없이 보도했다면, 김 부장의 답변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래도 넘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여태 어떻게 해 왔습니까? 제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이명박 정권에 해가 돌아갈 것 같으면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짓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용산 철거민 참사를 덮기 위해 군포연쇄살해범 사건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라는 청와대 이메일 지침사건이나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 시 '촛불사건 몰아주기'에 나서고, 그도 모자라 '촛불 재판'을 재촉하는 이메일까지 보낸 사건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정권의 호불호를 떠나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연쇄살인마를 대신 띄워 정권의 치부를 감추라고 코치한 이명박 청와대의 정신상태가 온전한 것입니까? 이런 식의 반인륜적인 여론조작이 민주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것입니까?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런 논란에 관심 없다는 듯 '먼 산 바라보기'로 일관했습니다. 이메일을 경찰청에 보낸 행정관을 청와대가 경고했다는 기사 하나만 달랑 걸어놓고 말이죠. (조선, 2009.02.14, A4)
신영철 판사가 '촛불재판 몰아주기'에 나선 사건도 그렇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행정부의 독선을 견제해야 할 사법부가 오히려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중대한 사건이자, 민주주의 근간인 삼권분립 원칙이 이명박 정부 들어 뿌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엄중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때도 침묵으로 버티며 시간을 끌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런 적이 있었더라'는 식으로 관련 기사를 두 개 배치하고 넘어가려 했습니다(<신영철 대법관 '촛불 재판' 재촉 이메일 논란>, 2009.03.06, A12 ; <신영철 대법관 "일부 판사들이 재판 방치해 법원장으로서 할 일 한 것>, 03.06, A12)
그조차 의혹을 파헤치기는커녕, "판사들을 믿고 보낸 것인데 불신감이 생긴다"거나 "(뒤늦게 이메일이 공개된 것은) 뭔가 의도가 있는 것"이라는 둥. 젊은 판사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신 대법관의 해명을 길게 내보내는 편파적인 내용으로 때운 게 전부였습니다.
이런 짓을 밥 먹듯이 자행하는 조선일보가 '공정성'을 입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정말 불공정한 것 아닐까요?
김창균 정치부장, 어떻습니까? 이것에 대해서도 답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문한별 /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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