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에서 본 한명숙
(민주당 / 문병옥 / 2009-01-04)
사실 그 분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잘 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근 2년 동안 한명숙 전 총리님을 옆에서 지켜 봐왔지만 아직도 온전히 그 분을 알 수 없습니다. 그 분은 저의 상상 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뿌리를 가진 거목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그 분을 만나게 된 것은 2008년 18대 총선 때 입니다. 한명숙 총리께서 저를 찾아온 것입니다. 저는 당시 산하단체의 감사로 재직하다 임기가 남았지만 노무현 대통령님의 퇴임에 맞추어 퇴직을 한 후 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18대 총선을 준비하던 당시 한명숙 의원께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해 온 것입니다. 평소부터 존경해 오던 터라 단 1분도 고민하지 않고 흔쾌히 도와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한명숙 총선 캠프의 선대본부장 맡아 선거를 지휘했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너무도 낮은 투표율로 인해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최상의 후보를 앞세우고도 선거에 패배한 것은 모두 저의 탓입니다. 모든 언론과 자체 조사에서까지 거의 10%에 가깝게 승리를 예상했지만 낮은 투표율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야당의 지지자는 기권했고 여당의 지지자는 투표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결국 투표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결코 그 패배의 저녁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살아 온 삶의 기억 중 가장 부끄럽고 죄스러운 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분은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울먹이는 캠프 식구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고 등을 토닥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처절한 패배의 순간에서도 단 한마디의 원망도 성냄도 없이 모든 것을 당신의 탓으로만 돌리셨습니다. 비마저 추적이던 그 밤, 댁으로 돌아가시던 그 좁은 어깨 사이로 저는 산처럼 커다란 거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저는 한명숙 총리님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일산동구 지역위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한명숙 총리님을 모시는 자발적 참모가 되었습니다.
이후 한 나라의 총리까지 지내신 분이 소탈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데는 불과 몇 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집 부근을 산책하고, 이웃과 반갑게 인사하고, 만나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마음씨 좋은 이웃 어른이 된 것입니다.
모임이나 식사의 약속 시간에는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간혹 우리를 집으로 초대할 때면 차를 내오고 과일을 깎는 일에서부터 요리를 하고 식사 시중까지 모든 잡일을 손수 당신께서 하셨습니다.
오래 전부터 모시던 참모들은 마치 자신의 집에서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먹듯 밥 더 달라, 국 더 달라 성화를 부립니다. 그러면 밥을 드시다가도 벌떡 일어서 국을 뜨고 밥을 담아 오시더군요. 농담을 하는 부하직원의 등짝을 툭툭 치시는 모습이 마치 사이좋은 어머니와 아들처럼 다정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된 부하 직원에게 한 번도 말을 내려 하대를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겨울에는 난방비를 아낀다고 거실 보일러를 끄고 사시는 분입니다. 티슈 한 조각이 많다하여 반으로 찢어 쓰는 분입니다. 미처 일자리를 찾지 못한 부하 직원이 안타까워 명절이면 몰래 불러 단 돈 몇 십 만원이라도 쥐어 줘야 마음이 편한 분입니다. 아는 지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걷어서 줄 테니 제발 운전기사를 채용하라고 해도 끝까지 마다하고 그 연세에 손수 운전을 하시던 분입니다. 전에 모시던 부하직원들을 손수 운전하는 차에 태우고 칼국수를 사 먹이러 가시는 인자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당당하시고 매사에 낙천적이던 어른이 노무현 대통령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변하셨습니다. 얼굴에는 웃음이 가시고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도 노무현 대통령님의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경선 패배와 총선 패배에도 당당하고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으시던 분이 노무현 대통령님을 보내고 나서 부하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신 것입니다. 맏상주로 꼭꼭 숨겨 두었던 마음의 상처를 장례가 끝난 후 텅 빈 방안에서 슬픔에 겨워 홀로 통곡하시던 분입니다.
겨우 마음을 추슬러 노무현 대통령님께 진 빚을 재단 이사장을 통해 갚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남기신 유업을 잇고 새로운 인재를 찾고 만드는 일에 마지막 남은 삶을 헌신하시겠다고 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을 MB 정권의 정치 검찰은 모질게도 죽이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이성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담대하고 냉정하게 사태를 관망하고 굳건하게 싸우고 계십니다. 처음 조선의 보도를 접하신 일성은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단호한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싸움은 비단 당신만의 싸움이 아니라 이 땅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는 권언유착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말씀하신 “세상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노라”는 고백에 모든 의미가 함께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처럼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기에 야권은 물론이며 종교계, 시민사회, 학계를 비롯한 양심 있는 모든 분들이 당신을 위해 하나로 뭉쳤다고 믿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이 땅의 민주개혁세력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님은 새로운 정치권력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치사에서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상명하복이 아닌 수평적이며 따뜻하고 섬세하며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한명숙 전총리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참 모습을 알아갈 수록 그 분이 아직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한명숙, 당신은 저와 우리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위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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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 문병옥 / 민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