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김대중·노무현 ‘파일’을 열어보아라”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하버드대 특강
(시사IN / 양수연 / 2010-03-05)
오바마는 지난 1년간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2월10일 하버드 대학 강연에서 한국 근현대사 및 동아시아 국제 관계 권위자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 대학 석좌교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특이한 대북 정책으로 인해 북한은 더욱 고립되고 문제는 계속 꼬여갈 것이라는 얘기였다.
30여 명이 모인 이날 강연회는 오바마의 ‘액션’을 요구하는 커밍스 교수의 울림으로 가득했다. 그는 오바마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클린턴 정부·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 파일부터 열어보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 핵 문제가 대두된 것은 클린턴의 성과를 철저히 무시한 부시 정부의 책임이 컸고, 그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난 수년간의 남북한 화해 업적을 인정하고 각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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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10일 하버드 대학 한국학연구소 김구포럼 초청으로 강연하는 커밍스 교수 |
그는 1994년 클린턴 정부가 제네바 협정을 통해 영변 핵 시설을 동결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부시 정부는 북·미 간 기본 협약을 파기하고 핵 선제공격, 정권교체까지 들먹이며 북한을 협박해 핵 문제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정부가 일련의 북한의 도발에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6자회담 복귀를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북·미 수교만이 북한 비핵화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즉 물물교환을 하듯 비핵화와 ‘수교’를 맞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남북한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이 진정한 중개인 구실을 할 것, 북한을 동북아 안보체제에 중립국으로 들어오게 할 것도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커밍스 교수는 미국이 중국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온 중국은 남북한 모두와 수교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래에는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커밍스 교수는 “미국이야말로 북한과 수교해 비핵화를 실현하고 남북통일을 지지하는 유일한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김정일 위원장이 죽어도 북한 정권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1990년대 초반, 워싱턴에는 북한이 핵을 무기로 전쟁을 하든지 정권 붕괴로 사라질 것이라는 두 가지 시각이 동시에 존재했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 정권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얘기다.
“김정일 죽어도 북한 정권 안 무너진다”
커밍스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이야말로 한국의 대북정책에 유일하게 기여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에게 미국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진지한 중립국으로 남는다면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도 된다고 말했다면서 “이는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데 김 전 대통령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주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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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노무현 당선자(오른쪽)을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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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스 교수는 북한과의 대화를 막는 여러 요인 중 한국의 강경 보수파를 언급하며 “미국은 미국의 진정한 벗이 한국의 보수세력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이날 강연회에서 커밍스 교수는 인터넷에서 어렵게 찾아냈다는 김 위원장의 사진을 여러 장 소개하며 “인터넷에는 북한에 대해 편견을 갖게 하는 악의적인 사진이 너무 많다”라며 언론의 보도 행태가 이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브루스 커밍스와 한국과의 인연은 그가 1968년 평화봉사단으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1986년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이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클린턴 정부 때에는 평화·외교를 기본 노선으로 하는 대한반도 외교정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2001년, 김동노 역) <김정일 코드:브루스 커밍스의 북한> (2005년, 남성욱 역) 등의 저서가 있다.
양수연 / <보스턴 KAP> 편집장
출처 :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