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대통령 김두관

김두관과의 만남 그리고 눈물----

장백산-1 2012. 8. 5. 21:02
 
[단상] 김두관을 만나다 (1): 눈물 최근 글 / 안내

2012/07/2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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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치인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딱 두 번 있습니다많죠?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을 이틀 앞두고 저는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에 제 몸을 실었습니다.

기내에서 푹 잤습니다.^^

약 한 달 이상 집중적으로 정치개혁 내용과 추진전략을 짜느라 잠이 많이 모자랐었죠.

취임식 초대장은 장인장모께 드렸습니다좋은 구경 하셨답니다.

 

그래서 저는 노 대통령 취임식을 캘리포니아 제 집에서 인터넷으로 봤습니다.

정치개혁을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허 참다 큰 놈이 창피하게 말입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정치개혁 제안을 만들어 드렸으니 그 내용대로 제법 정치개혁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의 눈물이었습니다.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저는 2003년 노무현 당선자 인수위원회 정치개혁연구실에서 상근자문위원으로 일했습니다직책이 이상하죠자문을 상근으로 한다… ㅎㅎㅎ

 

참여정부 때 민간 종합정책연구원인 우리정책협력연구원을 만들어서 노 대통령을 나름 도왔는데노 대통령 지지율은 계속 떨어졌고급기야 MB라는 이상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더군요..

그래서인지 노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노 대통령의 정치 성적표는 F입니다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고자유민주주의 발전에 일부 기여한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정권 재창출을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에 F입니다정권 재창출이 되지 않아서 노무현 정신은 여기저기서 헤매게 됩니다지금까지 그 헤맴은 계속되고 있고대표적인 사례가 민주당 모 후보 캠프입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할 때마다 무척 안타깝습니다뜻이 훌륭하면 뭐 합니까현실에서 그 모양 그 꼴로 드러나는 데 말입니다.

 

주저리 주저리말이 너무 많군요요즘 인터넷 글은 한 페이지 넘어가면 안 보신다고 하더군요.

짧게 줄이겠습니다.

 

그 다음 눈물은 2012 7 21일 새벽에 흘렸습니다.

그날 새벽에 일어나서 이메일을 체크하려고 노트북을 켰는데캠프 메시지 팀에서 급한 연락을 해왔더군요.출판기념회에서 김두관 후보의 가족 소개를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첨부된 글을 읽었습니다다음과 같습니다.

 

 

 

다음은 가족소개 순서입니다.

 

왜 김두관 전 지사님 큰누님이

언론에 ‘생선좌판하는 대선주자 누나’로 소개되었죠?

잔잔한 감동을 주었는데요.

그리고 나서 인터넷에

‘그게 사실이냐’면서 확인하는 글들도 있었고,

어떤 네티즌들은 ‘좌판 두관’이라는 말도 만들어 냈더라구요.

 

, 김두관 저자의 가족은 어떤분들일까요? 궁금하시죠?

 

먼저, 김두관 전 지사의 작은 아버님 소개드리겠습니다.

96년까지 봉천동 서울대 후문에서 빵집을 하셨죠.

지금은 작은 건물의 경비원을 하고 계십니다.

김정웅 작은 아버님을 모시겠습니다.

, 오늘도 출근하는 날인데 잠시 시간내서 오셨습니다.

 

, 다음은 화제의 주인공이죠?

영등포 대림시장에서 40년째 생선좌판을 하고 계시는

김길자 큰누님을 소개합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제일 큰형님 순서인데요.

언론에 잠깐 소개된 적도 있죠.

강원도 탄광에서 2,

독일 탄광에서 10년간 광부로 일하시고 귀국하셨죠.

귀국해서는 목사도 하시고,

노인복지재산에서 운영하는

노인일자리 창출 사회적 기업을 맡아 일하고 계십니다.

광부 출신김영철 큰형님 내외분을 모시겠습니다.

 

다음은 둘째 형님입니다.

부산에 가서 목욕탕에서도 일하셨고,

비정규직으로 회사경비원도 하셨죠.

고향에서 농사지으면서

결혼패물까지 팔아서 저자의 학비를 마련해 주었다고 해요.

김두철 둘째형님 내외분을 소개합니다.

 

, 다음은 셋째 형님입니다.

중동 건설노동자로 일하면서 동생 공부시켰다는 형님인데요.

귀국해서는 택시운전사, 용접공으로 일하셨고

지금은 요양병원의 시설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두성 셋째 형님 내외분을 모시겠습니다.

 

이제 동생 소개할 시간이죠.

형님과 함께 정치를 하고 있는 동생인데요.

통합민주당 사무총장으로 일했던

김두수 동생 부부를 소개하겠습니다.

 

다음은 김두관 전 지사 부인이신

채정자 여사 순서입니다.

채정자 여사께서는 어렸을 때 꿈이

간호사였다고 합니다.

어렵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인문계고를 들어가지 못해 꿈을 포기했다고 하셨습니다.

 

한때 남편이 정치한다고 돈을 가져오지 않으니까

뼈다귀 해장국집을 직접 하기도 했죠?

, 채정자 여사님을 모시겠습니다.

 

이제, 한 명 더 남았습니다.

, 채정자 여사의 어머님이자 김두관 전 지사의 장모님이죠?

장모님도 남해읍 재래시장에서

작은 가게를 내고 야채장사를 하시다가

올해 5월 달에 채정자 여사님 간호하려고

시장 일을 그만 두셨다고 해요.

따님 사랑이 대단하죠?

대선후보 장모님께서 야채장사를 한 셈인데요.

이애순 여사님을 모시겠습니다.

 

, 여기 나오신 분은 우리의 희망, 김두관의 가족입니다.

그런데,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재벌이 없네요.

여러분, 실망하셨습니까?

아니죠?

저는 정말 너무나 기쁩니다.

여러분도 기쁘죠?

 

생선좌판, 빵집, 야채장사, 용접공, 경비원,

광부, 중동노동자, 식당주인.

 

우리 시대의 서민이 여기 모두 있습니다.

, 여기 나오신 분은 우리 모두의 가족이기도 합니다.

 

그날 출판기념회 현장에서도 울었습니다.   

다시 읽어도 눈물이 또 나네요…

 

다 큰 놈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캠프 일이 바빠서 다음 글이 언제 준비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후보를 만나서 제 인생을 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개봉박두이옵니당.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