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
[ 一切唯心造 ]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뜻하는 불교용어.
一 : 한 일
切 : 모두 체
唯 : 오직 유
心 : 마음 심
造 : 지을 조
《화엄경(華嚴經)》의 중심 사상으로,
일체의 제법(諸法)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나타남이고,
존재의 본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곧 일체의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있다는 것을 일컫는다.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화엄경》 보살설게품(菩薩設偈品)에
다음과 같은 4구의 게송이 나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 일체의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관하라(應觀法界性).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一切唯心造)."
《화엄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송으로,
삼세불은 과거불·현재불·미래불을 가리킨다.
이 일체유심조의 경계는
모든 것이 마음으로 통찰해 보이는 경계로,
마음을 통해 생명이 충만함을 깨닫는 경계이다.
곧 유심은 절대 진리인 참 마음[眞如]과 중생의 마음[妄心]을 포괄하는 것으로,
일심(一心)과 같은 뜻이다.
일체유심조와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것이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와 관련된 얘기다.
원효는 661년(문무왕 1)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당항성(唐項城:南陽)에 이르러 묵을 곳을 찾아, 어두운 움막을 찾아 들어가 잠을 잤다.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날이 새어서 깨어 보니
자기가 머문 곳이 움막이 아니라, 고총(古塚)이었으며,
잠결에 마신 물이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사물 자체에는 정(淨)도 부정(不淨)도 없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음을 깨달아 대오(大悟)했다는 이야기이다.
원효는 그 길로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출처] 두산백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대해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만법유식(萬法唯識)이란 말과 상통하는 의미로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창조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의 경전중 하나인 {화엄경} [십지품]에 보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정도로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고 보다 오묘(奧妙)한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음은 그 작용이 광대무변(廣大無邊)하기도 하고
바늘귀보다도 적을 때가 있습니다.
넓게 마음을 쓰면 우주를 감사고도 남고,
좁게 마음을 쓰면 겨자씨도 들어가지 못하는 마음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이 부리는 오묘한 작용입니다.
이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마음이 이 세계를 창조하는 주체라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에게 무엇이든지 이루어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인
한 마음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중생의 마음과
불성(佛性)이라고 하기도 하고 진여심(眞如心)이라고도 하며
진심(眞心), 본래심(本來心),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보리심(菩提心) 등
다양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래의 마음은
우리가 두루 갖추고 있는 무한한 능력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가능성을 믿는 마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의 힘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화엄경} [십지품]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불자여!
어떤 중생이 선근을 깊이 심고
모든 행을 잘 닦고 도를 돕는 법을 잘 모으고
여러 부처님께 잘 공양하고 청정한 법을 잘 쌓고,
선지식의 거두어 주심이 되고 깊은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
광대한 뜻을 세우고, 광대한 지혜를 내면 자비가 앞에 나타난다.
보살이 처음 이런 마음을 내고는,
곧 범부의 처지를 뛰어나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서 여래의 집에 태어나나니,
여래의 종성에서 결정코 위없는 보리를 얻는다.
보살이 이런 법에 머물면 보살의 환희지에 머물렀다 하나니,
동하지 않는 법과 서로 응하는 까닭이니라.
불자여!
보살이 환희지에 머무르면
여러 가지 환희와 청정한 신심과 즐거움과
희열과 기쁜 경사와 뛰놀음과 용맹과
투쟁없음과 고뇌없음과 성내지 않음을 성취하느니라.
"
사람은 누구나 착한 바탕에 착한 마음을 심고
착한 행을 잘 닦아 광대한 뜻을 세우면
반드시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한다 하였습니다.
즉,
우리의 올바른 마음을 잘 닦고 쓰면
바라는 것을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흔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하면
원효스님이 의상스님과 함께 중국으로 유학을 가다가
어느 초막에서 하루 밤을 지새웠는데
그 날 밤에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개울에 가서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다시 물이 마시고 싶어
어제 밤에 마신 물이 생각나 그곳을 바라보니 해골들이 여러 개 널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지난밤에 맛있게 먹었던 물이 올라오는 듯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이 환히 밝아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즉, 한 생각이 나면 온갖 만물이 생겨나고,
한 생각이 멸하면 만물이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이 해골바가지 속의 물에 대한 일화에서 보면 똑같은 물인데,
모르고 마셨을 때는 감로수가 되었으나,
썩은 해골바가지 물인 줄 알고 나니 속이 뒤틀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인 마음의 창조적 힘입니다.
흔히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주변 여건은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어떤 때는 그 상황에서 행복함을 느끼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느낌을 갖기도 합니다.
변함 없이 언제나 똑같은 내 자식, 남편인데
어느 때는 사랑스럽고 어느 때는 미워지는 것도
결국은 마음의 작용인 셈입니다.
이와 같이 매순간 느끼게 되는 행복과 불행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이 세상을 움직이는 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흔히 행복의 조건이
마치 얼마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처럼 생각되고 있으며,
그리고 실제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편리한 생활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변해 가는 것들입니다.
비록 현재가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마음을 비워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바로 보고 거기서 희망을 찾아낼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만 있다면
언제나 행복은 우리들 가까이에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하찮아 보일지라도 자기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
지금까지 이루어 온 것에 대해 자기 스스로 자기 등을 두드려 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감을 주고 자기를 강하게 해주며 성공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면 더 큰 성공을 이끌어내는 성취의 기운을 일으키는 작용을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부러워하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여건 속에서 자기의 성취를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일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바로 창조적이고 무한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본래로 우리의 마음에 갖추어진 힘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며,
그 창조적 마음의 힘을 집중하여 쓰는 일입니다.
이렇게 마음은 생각하는 것을 무엇이든 이루게 하는 근본 바탕이며 우주적 힘입니다.
마음의 힘이란 단순한 관념이 아닙니다.
신념을 가진 생각은 놀라운 힘을 발휘하여 창조력을 가집니다.
항상 좋은 생각, 좋은 감정만을 갖도록 해서
긍정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우리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합시다.
이제부터 생활 속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원리를 활용함으로써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잘 살아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사는 인간이 됩시다.
오관에 휘둘리는 삶이 아니라 본래로 밝고 맑은 마음의 창조성을 발휘하도록 합시다.
이에 관해서 {80화엄경} [보살설계품]에서는 다음과 같은 4구의 게송을 설하고 있습니다.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일 어떤 사람이 과거, 현재, 미래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본성(本性)을 관(觀)해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유명한 {화엄경}의 사구게(四句偈)입니다.
과거·현재·미래의 부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관(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일체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마음이 극락을 만들면 극락이 만들어지고,
마음이 지옥을 만들면 지옥이 만들어지며,
마음이 행복을 만들면 행복이 이루어지고,
마음이 불행을 자초하면 불행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부처님의 마음도 있고,
악마의 마음도 있으며, 중생의 마음도 있고,
창조자의 마음도 있고,
굴종하는 노예가 되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주인의 마음도 있고, 나그네의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하나로 정해져 있는 마음이 아니라
본래로 텅텅 빈 마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를 창조하는 본래의 마음인 것입니다.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을 보는 5가지 눈 (0) | 2013.07.31 |
---|---|
지혜롭게 일을 벌이는 방업 (0) | 2013.07.31 |
영원한 생명 불성이란? (0) | 2013.07.31 |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0) | 2013.07.31 |
100세 할머니가 쓴 詩 (0) | 2013.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