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누리의 참된 主人公, 色身으로서의 ‘나’ ---衆生佛 ①

장백산-1 2014. 11. 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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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의 참된 主人公, 色身으로서의 ‘나’
衆生佛 ①
2014년 07월 18일 (금) 21:10:39백봉 김기추 거사 추모사업회 webmaster@hyunbul.com

衆生佛이라 중생놀음 하는데  實은 우리가 부처.

煩惱妄想 일으키는 이것도 부처자리

달리 제도 받을 사람도 없고

제도할 사람도 없어.

 

 

境界에 들어앉기 때문에 그만 衆生이 됐다 말이죠. 衆生이 됐는데 이걸 衆生이라고만 말하기는 좀 어색해요. 그러나 부처님도 衆生이라 말 하니까 따라서 말하는 거지만 이건 꼭 똑바로 말하자면 衆生佛이에요. 衆生佛. 왜 그러냐. 우리는 衆生佛이기 때문에 衆生놀음 하는데 事實은 우리가 부처(法身佛)이거든요. 왜 부처냐. 말쑥한 그 자리가 부처인데 우리가 부처가 아니라 하면 말이지 말은 어떻게 하며 남 보기는 어떻게 보며 듣기는 어떻게 들으며 生覺은 어떻게 하죠?

보고 듣고 말하고 하는 거 이거 부처자리라 말이죠. 또 煩惱妄想 일으키는 이것도 부처자리에요. 솔직한 말로. 부처자리이기 때문에 어떠한 境界에 휘둘려서 煩惱妄想을 일으킬 따름이지

事實에 있어서는 부처는 틀림없는 부처거든요. 달리 제도 받을 사람도 없고 제도할 사람도 없어.

 

그러하기 때문에 또 부처님께서 내가 제도를 했느니라. 내가 제도를 했느니라 하는 이런 生覺이, 하나의 말마디가 떠올라. 따라서 또 제도를 받았느니라 하면 衆生이란 말마디가 하나 딱

하게 나타나. 그러하면 이거 또 수작놀음이거든. 觀念 槪念놀음, 모습놀이라요. 相놀음이거든. 四相에 떨어져. 그러하기 때문에 제도를 해도 제도 받을 사람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한 겁니다. 原理 原則은 그러나 實際에 있어서는 우리가 다 부처 씨가 있고 또 涅槃妙心으로서 술집에 가서 술을 먹고 싸움을 하더라도 그놈이 涅槃妙心이 있기 때문에, 本來 寂滅性인 그 자리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건데, 그 本소식을 모르고 그만 境界에 나타난 거기에 휩쓸려서 거기만 내 世上이다 해서 말이지 그렇게 하니 이거 딱하단 말이지. 그러기 때문에 중생은 중생이라. 부처는 부처인데 중생이라는 이름을 갖다가 우리는 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거든요.

 

그러하니 그러면 實에 있어서는 衆生佛인데 그 마음자리, 니가 지금 술 먹고 싸움을 한단 말이지. 이 술 먹고 싸움을 하는 놈이 무엇이냐면 全部  妄想덩어리거든. 알음알이 놀이거든. 요놈인데, 그러면 妄想덩어리가 술을 먹고 싸움을 한다 말이여. 그러면 부처 아닌 거 아닌가? 하지만 그거 아니라. 내가 술 먹고 싸움을 하는 걸 알아. 요놈이 부처란 말이야. 그러면 마음이 두 나 아니가? 마음은 둘 아니라 하난데 行動을 둘로 하는건데 그만 싸워. 저 놈이 밉다 말이야. 저 놈 밉다고 生覺하는 그놈이 부처자리거든. 그러나 그대로 行動을 옮겨. 미우면 밉다 좋으면 좋다 이런 行動을 옮긴다 말이지. 옮겨서 行動을 하는 것이 알음알이여. 그렇게 보면 되요.

 

그러하기 때문에 原來 알음알이하고 眞心하고 둘 아니건만은 그러나 境界에 휘둘리기 때문에 衆生이 되는 것이고, 境界에 휘둘리지 안 해. 그대로 말쑥한 자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 境界가 좋으면 좋다 나쁘면 나쁘다 分別도 할 줄 알아야 돼. 事實에 있어서는. 처음에 공부할 땐 分別을 치워야 된다 이래 하지만 이제 여러분들 分別해야 되거든. 잘 分別을 해. 分別을 하지만은 그

分別 境界에 휘둘리지 않는 것. 요 자리란 말이에요. 요 자리가 부처 아니라요?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하나 부탁을 하겠어요. 나는 生覺을 하기를 내 生覺이

옳은지 그른지 이것도 내가 모르겠어. 이전 어른들은, 이전 어른들은 妄心이 本寂하고, 妄靈된 마음이라 할지라도 妄靈된 마음이 무서운 結果를 가져와. 相對性으로 우리가 삶을 굴려 가는데 무서운 結果를 가져오긴 가져오지만은 그러나 妄心의 當處가 空했다 말이여. 本空한 것이거든.

 

왜 그러느냐. 우리가 어떤 좋은 일을 한다든지, 좋은 生覺을 가져서 좋은 일을 한다든지 그릇된 生覺으로서 어긋난 行爲를 한단 말이지. 한다 할지라도 그 마음씀씀이가 알음알이 놀이가 그

當處 텅~빈 거라. 寂寂한 거라. 그러하고 진경(塵境). 境界. 집도 境界요 우리의 色身 몸뚱어리도 境界요 山도 境界요 나무도 境界요 부는 바람도 境界요. 모든 것을 뚤뚤 뭉쳐서 티끌境界라 이전 어른들은 말씀하셨는데 塵境이 本空이라. 텅~비었어. 一切가 텅~비었어. 이 事實도 여러분들이 아시는 거 아니라요? 아무리 泰山峻嶺이 있다 할지라도 그 性稟이 텅~빈 거 아니라요? 空性 아니라요? 그러니까 삽으로 푹푹 파지기도 하고 대포알을 집어 던지면 그 놈 山이 뭉개어지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텅~빈 性稟이 아니면 절대 안 그래. 우리의 몸뚱어리 이것도 텅~빈 性稟이거든. 赤血球 白血球로서 모아진 하나의 가죽주머니라 해도 事實은 이거 텅~빈 性稟이에요.

 

그러나 그 當處 이것도 텅~빈 것이거든. 이러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모든 境界를 여의어라. 四相을 여의어라.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을 여의라. 그것 全部 헛거니라. 또 산하대지도 여의어라. 산하대지를 여의라 해서 깡그리 없애버리고 텅~빈 걸로 보지 말고, 산하대지를 그대로 두고 그걸 텅~빈 性稟으로 봐라 이 말씀을 했거든요. 그렇게 하면은 다시 말하자면, 더 줄여서 말하자면은 妄心이, 우리의 마음씀씀이, 妄心이 本寂하고 本來 寂寂하고. 塵境, 티끌의 境界가 本來 텅~비었단 말이여. 이것을 알면은 見性을 하느니라. 아마 이전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했을 거여. 그러나 나는 부처님 말씀을 여러 조사님들 말씀을 거꾸로 한 번 뒤집어 볼 作定이여. 어떻게 하느냐 妄念이 本寂하고 妄靈된 여김이, 妄心이 本寂하고 塵境이 本空이니라. 이걸 알면은 見性, 性稟을 보느니라 이래 하는데 나는 正反對로 우선 見性을 하면은 妄念이 本寂한 줄 알고 塵境이 本空한 줄 안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부처님 말씀 거꾸로 뒤집는다 말이여.

 

왜 그러느냐. 다른 데 가서는 나 이렇게 설법을 안 합니다. 이 자리에서 이렇게 설법을 해야 됩니다. 왜 그러느냐. 여러분들은 이 누리의 참된 主人公, 色身으로서인 내가 아니고 虛空으로서인 法身, 虛空으로서인 내라 말이여. 이건 여러분들이 알았거든. 그러면 色身으로서인 내가 아니고 虛空으로서인 내란 말이여.

虛空 하면 虛空을 위한 虛空이 아니거든. 늘 말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虛空이란 말을 써야 알아듣기가 쉽기 때문에 虛空이라고 말하는 건데 虛空 自體에 있어서 슬기가 없으면 글자 그대로 虛空이지만은, 슬기가 있는 虛空은 뭣이냐 하면 바로 空寂 靈智거든. 法身자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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