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空性 (허공성)
마음이란 당장 지금 이 瞬間에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 보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 인식 분별하는, '이것'이다.
마음은 物質이 아니기 때문에 形體가 없고, 形體가 없기 때문에, 우리 感覺器管의 認知 能力을 벗어나 있다.
卽, 마음은 지금 이 자리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 보고, 접촉을 느끼고, 분별 판단 인식하는 '이것'이다.
六根(眼耳鼻舌身意라는 감각기관)과 여섯 가지 境界(六境,色聲香味觸法)가 接觸할 때 생겨나는 여섯 가지
意識(六識: 眼識, 耳識, 鼻識, 舌識, 身識, 意識)이 일어나는 근본 바탕이 이것, 본래마음이다. 죽은 송장도
六根(눈 귀 코 혀 몸 마음)은 썪지않고 아직 있지만 옆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본래마음, 이것이 이번 생에서 因緣이 다한 六根 六境 六識을 떠나갔기 때문이다.
마음이란 이와 같이 형체도 아무것도 없는 것의 精神的인 作用임을 이해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보고 듣는 본래마음 이놈, 이것은 어디에 있느냐?
형체가 없다는 의미는 無限大를 말한다. 형체가 하나라도 있으면 걸려서 구속되지만 하나도 없기에 無限大인 것이다.
(無限大는 동시에 無限小이기도 하다. 形體가 없으니까.) 지금 對相을 보는 이 본래마음 이놈, 이것은 어디에 있느냐?
지금 여기 이자리 내 눈앞 無限한 虛空이 바로 내 본래마음, 이놈, 이것이다.
上下四方八方 虛虛空空 大虛無空으로 시작도 끝도 없이 펼쳐진 無限한 虛空이 내 본래마음 이놈, 이것이다.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 이 無限한 虛空, 본래마음 이놈,이것이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인식/식별/분별을 한다.
虛空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하기에 도대체 나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나인지 限界가 없다.
지금 여기 이 자리서 보고 100m 앞에 가서 봐도 보는 이놈, 이것 본래마음은 永遠히 恒常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다.
虛空全切로써 보고, 허공전체로써 듣고, 허공전체로써 냄새 맡고, 허공전체로써 맛보고,
허공전체로써 촉감을 느끼고, 허공전체로써 헤아림 생각 망상 번뇌 분별 판단 인식을 한다.
虛空全切로써 그렇게하기에 나의 本來面目, 나의 本質, 본바탕, 根源, 實相은 “의식이 있는 虛空”이다.
虛空이 宇宙全切를 감싸고 포용하고 있듯이, 내 본래마음(虛空) 속에 이 세상 모든 것이 存在한다.
저 빛나는 太陽도, 限없이 큰 銀河界도 모두, 내 본래마음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질 뿐이다.
하물며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읽는 그대도 내 본래마음이자 그대의 본래마음인 虛空 속에서 生하고 滅한다.
그래서 나나 그대는 이 宇宙 自體이다. 이 宇宙안에 모든 것이 滅하더라도 본래마음은 變化가 없기 때문이다.
본래마음은 生하지도 滅하지도,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增加하지도 減小하지도 않는, 絶對性의 자리이다.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그러하기에 이 宇宙에 오직 본래마음만이
홀로 尊嚴하다.(천상천하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
내 본래마음이 그러하기에 다른 사람의 본래마음도 똑같이 그러하다.
이 宇宙의 모든 有情物(생각이 있는 중생:동물, 벌레, 나무등...)이 똑같이 그러하다.
이 宇宙의 모든 無情物(생각이 없는 중생:바위, 광물, 흙등,... )이 똑같이 그러하다. 有情物 無情物 세상 모든 것인
相對性(報身,化身)은 絶對性(法身자리, 본래마음, 眞空場, 零點場)에서 나왔기에 無情도 바로 이 宇宙의 主人空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생각으로 이 몸과 分別하는 마음을 나/我라고 여겨서 하루 거의 모든 시간을
(깊은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잠을 자도 無意識이 活動하는 꿈 역시 境界에 휘둘림이다.)
이 나/我 (相對性의 가장 큰 뿌리인 我相, 나라고 하는 生覺/幻想)를 기준으로 부딛치는 境界에 휘둘려서 살아간다.
즉, 境界/대상/현상에 구속당하고 휩쓸려서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간다.
道는 별것 아니다. 다만 이 宇宙의 모든 것들이 본래마음 자리에서 나온 것임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또한 삶 속
내 몸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느낌 감정 생각 마음 의식 관념 개념 이미지 相이 본래마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깨달아서 좋고 싫어함 없이 어떤 分別도없이 있는 그대로를 통째로 다 받아들여서 함께 할 때 道는 스스로
드러난다.
色이 空에서 온 것임을 아는 것이다. 色이 空에서 왔기에, 色 그 自體가 곧바로 空이요, 空 그 自體가 곧바로 色임을
아는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 이다. 色의 境界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고,
받아들이는 느낌 감정의 境界(受), 이미지를 짓는 生覺의 境界(想), 이미지를 바탕으로 좋고 싫음을 行動하는 境界(行), 색 수 상 행을 종합적으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선택하는 境界(識) 모두가
그 根本은 眞空이다.(五蘊皆空, 수상행식역부여시 受 想 行 識 亦復如是)
그러므로 부모로 부터 나오기 以前 진정한 自己의 本來모습, 實相이 '意識이 있는 虛空'이고,
現象으로 마주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宇宙法界의 因緣에 따라서 생겨난 꿈 헛개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은 幻像 헛것들이다. 虛空에 핀 空花, 헛꽃이다. 그러나 헛것인 幻像 또한 마음의 그림자 이므로 거짓으로서
眞實인 것이다. 즉, 諸法實相, 立處皆眞인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성품은 원만해서 두 가지의 모습이 없고,
또한 이 세상 모든 것은 본래 움직임이 없이 고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境界에 구속되어 휩쓸리지 않고 恒常 虛空性, 본래마음을 반조(返照)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道를 行하는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우주를 포함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이 虛空性이 나툰 그림자임을 안다면 일상삼매(一相三昧)이며
24시간 내내 虛空性을 返照할 수 있다면 일행삼매(一行三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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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빨간 사과가 한 개 있다.
그대가 지금 빨간 사과를 보는 것은 진짜 마음, 본래마음이고
그대가 지금 빨간 사과를 보고 빨간 사과라고 말다면 그것은 가짜 마음,분별하는 마음이다.
빨간 사과 인듯 하다면 가짜 마음을 부여잡고 진짜 마음을 사용한 것이다. 空으로서 幻을 굴린 것이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마음 속 이러한 無意識의 認識 作用을 없애기란 聖人이 아니면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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