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생각하면 할수록 허망한 뜬구름일세.

장백산-1 2015. 5. 1. 01:41

 

 

 

 

허망하기 뜬구름일세  |영원한 나를 찾아서

 

 

 

허망하기 뜬구름일세


처자와 권속들이 대숲처럼 많이 있고  금은보화 비단들도 언덕처럼 쌓였는데,

죽음에 다다르니 나 홀로 가는구나.  생각하면 할수록 허망한 뜬구름일세.

 

매일매일 세상사 속에서 시달리다가 벼슬이 겨우 조금 높아지니 머리는 이미 백발이네.

염라대왕은 벼슬이 높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허망한 뜬구름일세.

 

비단결 같은 마음과 훌륭한 말솜씨와 뛰어난 문장과 만승의 제후라도 다생토록 아만만

높이는 근본이어라.  생각하면 할수록 허망한 뜬구름일세.

 

가령 설법이 구름 같고  비 내리는 것 같아서 하늘에선 꽃비가 내리고 돌이 점두를 하더라도

온전하지 못한 지혜로는 생사를 면할 수 없네. 생각하면 할수록 허망한 뜬구름일세.


妻子眷屬森如竹   金銀玉帛積似邱

처자권속삼여죽    금은옥백적사구

臨終獨自孤魂逝   思量也是虛浮浮

임종독자고혼서    사량야시허부부

 

朝朝役役紅塵路   爵位纔高己白頭

조조역역홍진로    작위재고기백두

閻王不怕佩金魚   思量也是虛浮浮

염왕불파패금어    사량야시허부부

 

錦心繡口風雷舌   千首詩輕萬戶候

금심수구풍뢰설    천수시경만호후

增長多生人我本   思量也是虛浮浮

증장다생인아본    사량야시허부부

 

假使說法如雲雨   感得天花石點頭

 가사설법여운우  감득천화석점두

乾慧未能免生死   思量也是虛浮浮

건혜미능면생사   사량야시허부부


- 부설 거사 사부시

 

 

 

 

불교에는 人生이 無常하고 世上事가 無常하다는 내용의 말씀이 대단히 많다.

불교에서 發心한다는 것은 첫째 無常한 世上事를 버리고 永遠한 出世間의 眞理를

追究하는 것을 根本 취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신라의 부설 거사가 지은 이 사부시(四浮詩)는 7언 절구 네 개로 되었고

끝에는 뜰 부(浮)자로 韻을 달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설 거사는 어려서 出家하여 남들 못지않은 수행도 하였다.

그리고 因緣을 따라 환속하여 처자식도 거느려 보았다.

처자식이 있으면서도 출가수행자보다도 더욱 열심히 精進하면서 높은 境地까지 이른 분이다.

이러한 경력이 있는 사람의 뼈저린 말씀이기에  사람들의 가슴에 더욱 깊이 와 닿는다.

形式도 잘 되었지만  그 內容이 人生事의 無常을 노래한 것으로는

 제대로 잘 갖추고 있어서 인구에 많이 회자되고 애송된다.


처자와 권속, 금은보화, 그리고 높은 벼슬이 죽음 앞에는 모두 아무런 쓸데가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비단결 같은 마음씨나 훌륭한 말솜씨, 뛰어난 문장은 결국 사람들의 我慢만 높이는

根本이 된다고 하였다. 나아가서 출가 수행하여 경전 공부를 많이 하고 설법을 잘하여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돌이 점두를 하는 지극히 감동적인 법문을 하더라도

完全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면 生死解脫과는 關係없는 일이라고 무서운 警戒를 하였다.


부처님이 설법을 할 때 꽃비가 내렸다는 이야기는 大乘經典에 많이 傳한다.

그리고 완석점두(頑石點頭)라는 말이 있다. 중국 진(晉)나라 때 도생 법사(道生法師, 372~434)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 법태(法汰) 스님을 따라 출가하여 불도를 닦아 불경을 암송하고 벌써 15세 의

어린 나이에 불경을 강의하였다. 그 후 그는 장안으로 가서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에게서

수업을 받고 여러 종류의 불서(佛書)를 내었다. 그는 불경에 대해서 아주 심오한 깨침이 있어

때때로 새로운 경지를 발견하고 그 동안 배워오던 구파의 스님들의 이론을 배척하였다.

 뒤에 남쪽으로 내려가 소주(蘇州) 호구산(虎邱山)으로 들어갔다.


도생 법사는 호구산에 입산하여 다만 혼자뿐이니, 산위의 돌과 바위만을 상대로 해서 佛法을

강론하였다. 그는 늘 자기가 주장하는 바의 정묘(精妙)한 佛法을 강론하고 앞에 있는 돌과 바위에게

묻기를 “내가 말한 佛法이 理致에 합당하느냐?” 하니  모든 돌과 바위가 듣고서 함께 머리를 끄덕였다.

 이 말이 곧 산 아래로 퍼지자 열흘쯤 지나 각 지방의 스님들이 구름같이 호구산으로 모여 들었다.

그의 佛法은 너무도 설득력이 있어서  돌과 바위마저도 깊이 감화되어 움직였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호구산 위에 ‘생공석(生公石)’  또는 ‘점두석(點頭石)’이라고 해서

도생 법사가 설법을 하던 곳과 그 돌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비록 그와 같다 하더라도 부설 거사의 眼目으로는 오직 虛妄할 뿐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② [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