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아득한 성자>

장백산-1 2015. 5. 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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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조오현 - <아득한 성자>

   한국 선사시의 새형식 개척한 시


 2015년 04월 27일 (월) 16:42:05 김형중  ililsihoil1026@hanmail.net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아득한 성자’


오현 스님의 대표 작품으로 중·고교 교과서에도 수록돼

無常하고 虛無한 人生이나 하루 잘 산 이가 主人公 강조


詩人은 詩로써 말하고 道人은 깨달음의 도력(道力)으로 評價한다. 求道者는 아침에 깨달음을 얻고

저녁에 죽어도 餘限이 없다. ‘아득한 聖者’는 오현(1932~ ) 스님의 대표시로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작가 자신이 밝혔듯이 悟道頌이다. 그러나 旣存의 오도송과는

그 形式이나 內容, 格調가 사뭇 다르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가 참으로 意味가 깊은 表現이다. 우리가 百 年 千 年을 사는 것

같지만 事實은 지금 여기 이 瞬間만을 살아갈 뿐이다. 우리의 삶은 오직 지금 여기 이 瞬間 현재만을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時間을 過去라 하고, 아직 오지 않는 時間을 未來라고 부를 뿐이지 우리는

결코 過去나 未來를 經驗할 수 없다. 오직 現在, 오늘 지금 여기 이 瞬間 刹那만을 살고 있다. 刹那가

連續的으로 이어져 無限한 時間인 劫이라는 永遠한 時間을 이루는 것이다.

 

時間이라는 槪念은 現在 지금 여기 이 瞬間 刹那의 連續일 뿐이다. 그래서 世上은 無常하다.

이 無常의 道理를 깨달은 者가 부처(佛)로, 아무 認識 없이 사는 者를 無知한 衆生이라 부른다.

世上의 無常함을 깨달은 사람은 오늘 지금 여기 이 瞬間이 내 人生의 모든 時間이며 價値 있는

時間임을 아는 사람이다. 無狀하고 虛無한 人生이지만 오늘 하루를 잘 사는 사람이 宇宙의 主人公이고

歷史의 創造者이다. 오늘 하루 지금 여기 이 瞬間을 잘 살면 위대한 삶이요 부처의 삶이다. 百 年도

못 살면서 千 年을 살것같은 欲望으로 미쳐서 사는 삶이 어리석은 衆生의 삶이다.

 

本來 時間이란 實體는 없다. 다만 人間이 살고 있는 現象世界의 事物들이 無常하게 變化할 뿐이다.

人間들은 끊임없이 無常하게 變化해가는 事物의 모습에 따라 時間이란 觀念을 만들어 놓고 마치

時間을 基準으로 世上 萬物이 變化하는 것으로 거꾸로 錯覺하고 있는 것이다.

 

凡夫도 천성(千聖)도 다만 오직 現在 지금 여기 이 瞬間만을 살다가 가는 하루살이 人生인 것이다.

그러나 하루살이 삶이지만 하루살이는 自身이 되돌아가야 할 時間을 알고 삶에 대한 執着을 버리고

마지막 알을 까고 죽는다.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는 偉大하다. 만약 알을 까지 않고 죽는다면

하루살이의 삶은 永遠히 끝나 버린다. 알을 까고 죽기 때문에 하루살이 삶은 永遠히 持續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루살이는 歷史의 繼承者로서 主人公으로서 役割이 可能해진 것이다.

알을 까는 일은 위대한 불사(佛事)다. 하루를 後悔 없이 미련 없이 잘 살다가 가는 하루살이는

千 年을 사는 聖者와 같다.

 

서포 김만중은 조선문학을 부르짖으며 “문학은 자신의 民族魂이 깃든 母國語로써 노래하라”고

하였다. 우리의 言語가 없던 時代는 中國의 漢字를 빌어서 詩를 읊고 歷史를 기록하였다.

‘아득한 聖者’는 이런 面에서 한국선시사(韓國禪詩史)에 새로운 詩 形式을 開拓한 革命이요,

하나의 돌파이다. 아무도 감히 試圖할 수 없었던 새로운 境地의 禪詩 形式의 모형을 開拓한 것이다.

앞으로 禪詩가 自身의 깨달음의 世界를 一般人들이 잘 알 수 없는 漢詩 형식을 통해서 읊는 것보다

우리들의 마음의 世界를 自由自在로 나타내기에 가장 쉬운 우리 글인 한글로 表現해야 한다. 그러면

분명 韓國 詩團에 심오한 精神世界와 思惟를 통해 얻은 깊은 思想과 節制된 言語로 빚은 좋은 詩를

보태게 될 것이다.

 

 

김형중 동대부중 교감·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292호 / 2015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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