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05. 26 - 緣起, 空, 中道, 無分別, 오직 모를 뿐
연기, 공, 중도, 무분별, 오직 모를 뿐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그 사람을 認識할 때 分別心, 判斷하는 마음을 동원한다. 예를 들면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 능력이 있거나 없는 사람, 얼굴이 잘났거나 못난 사람 등 다양한 관점에서 그 사람을
比較 分別 判斷 解釋해서 認識한다. 여기에 키도 크고, 능력도 있고, 인물도 잘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과연 그 사람은 진짜 키도 크고, 능력 있고, 잘난 사람일까? 그 사람을 그렇게 認識하는 데는 반드시 比較할
對相이 따른다. 누군가와 혹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比較했을 때 키가 크거나 작을 수도 있고, 능력이 있거나
없을 수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사람보다 더 키도 크고, 더 능력 있고, 더 잘생긴 사람 옆에 가면 이 사람은
키도 작고 능력 없고 못생긴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사람은 獨者的 獨立的으로 認識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어떤 因緣이 옆에 있느냐에 따라 잘나고
못난 것이 결정되는 것일 뿐이다. 즉 우리의 의식 마음이 規定하고 있는 사람은 진짜 그런 사람이라서
그렇게 認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주위에 어떤 因緣이 오느냐에 따라서 키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한
것이며, 주위 우주법계의 因緣에 따라서 능력이 있거나 없는 사람이 될 뿐이다.
卽,우리가 능력이 있고 없고 하는 分別은 고정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가 아닌 진짜가 아니라, 주위의
因緣에 의지해서 거짓으로 만들어진 虛妄한 分別心일 뿐이다. 그래서 이를 因緣假合이라고 한다. 주위의
因緣에 따라 가짜로 和合해서 그렇게 認識될 뿐 진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것을 불교교리로 정리해 보면, 이 世上 모든 것, 宇宙萬物은 주위, 우주법계의 因緣에 依存해서
緣起的으로 드러난 것일 뿐, 그 自體는 고정불변하는 독립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無自性이며,
텅~빈 空인 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크다거나 작다거나 할 수 없어서 中道라고 말하는 것이다.
크다거나 작다거나 하는 것 자체가 둘로 나누어 그 중 하나를 選擇하는 分別心일 뿐이다. 그래서
이 世上 萬物 萬事를 緣起的으로 본다는 것은 바로 곧 無分別心로 보는 것이다. 分別하지 말라,
알음알이 내지 말라고 하는 말이 바로 이를 의미한다.
또한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모든 規定들, 나는 어떠 어떠하다라고 나를 認識하는 그 모든 認識의 틀들이
모두 이처럼 우주법계, 주위의 因緣에 따라서 緣起的으로 만들어진 가짜이지 진짜인 것은 아니다. 眞實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나’라고 生覺하는 것은 사실 가짜로 주위 우주법계의 인연에 의지해서 規定된
나일 뿐 진짜 내가 아니다. 즉, 無我이다. 나뿐 아니라 ‘너’, ‘세상’, ‘대상’들 모두가 이와 마찬가지다.
내 마음이 눈 앞의 對相을 規定할 때 事實 그 對相 境界는 내 마음 속에서 分別된 헛된 가짜의 生覺일 뿐
진짜 그런 對相이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젓가락은 길거나 짧지 않다. 전봇대 옆에 오면 짧고 이쑤시게
옆에 오면 길다. 卽, 우주법계 주위의 因緣에 따라서 거짓으로 길거나 짧다고 分別되는 가짜 生覺일 뿐
진짜 긴지 짧은지는 判斷할 수 없다. 이처럼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주위 우주법계의 인연에 의지해서 다른
것들과의 比較 속에서, 關係 속에서 分別되고 認識하는, 마음이 投映된 幻影일 뿐, 그것들 자체의 고정
불변하는 독립된 실체적 성품이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이 세상 모든 것, 우주만물, 우주법계는 完全히
텅~빈 空일 뿐이다.
사실이 이 세상 모든 것, 우주만물이 텅~비어 空하다면 그렇다면 ‘나’에 대해서, ‘남들’에 대해서, 이 世上과
事物과 마음 의식 등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判斷, 어떤 認識을 내릴 수 있을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判斷은
모두가 우주법계 주위의 因緣에 따라서 만들어진 가짜일 뿐 진짜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단 하나의 判斷이나 해석 生覺도 일으킬 수 없을 뿐이다. 그야말로 이 세상이 온통 콱 막혀서 말문도
생각도 꽉 막힐 뿐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우주법계, 우주만물의 眞實은 이와 같이 생각 마음 의식으로는
도저히 認識될 수 없고, 判斷될 수 없고, 分別될 수 없다. 오직 모를 뿐이다.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 마음 의식의 認識과 分別이 콱 막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오직 모를 뿐일 때,
단 하나의 생각조차 일으킬 수 없을 때, 그 꽉 막힌 순간이 限界點에 到達하는 瞬間 全部가 알려지는 大
轉換을 맞게 된다. 이것은 生覺이나 分別로 이루는 것이 아니다. 生覺과 分別이 콱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아무 것도 할게 없음을 알고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린 채 오직 모를 뿐으로 남을 때 認識을 넘어 그저 이
하나의 眞實, 깨달음, 부처, 진리가 確認되는 것이다. 비로소 分別心의 오랜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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