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長者)와 궁자(窮子)의 비유
불경 법화경에 나오는 “巨富인 長者 아버지 와 거지가 된 그의 아들 窮子”의 비유와 성경에 나오는 “탕자(蕩子)의 비유”는 그 내용이 같으며 이처럼 불경이 성경 '신약'의 형성에 영향을 주는 내용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성경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탕자(蕩子)의 비유”와 불교의 법화경에 나오는 “장자와 궁자”의 비유는 用語만 다를뿐 내용은 같다고 합니다. 1987년 2월에 번역 간행된 서양인의 저서에 니콜라스 노토비치(Nicholas Notovitch)라는 러시아 학자가 인도를 여행하다가 발견했다는 문제의 이사전(Issa예수傳)에 예수가 6년에 걸쳐서 불경연구를 한 것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제정 러시아 시절의 기자인 "니콜라스 노토비치"가 1887년 티벳의 라다크 지방의 레에 남쪽 40km 지점의 히미스사원에서 고대 불교인의 티벳어로 된 필사본을 발견하였는데 이 책에 분명히 예수께서 청년시절에 인도와 티벳에서 유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니콜라스 노토비치의 "예수의 알려지지 않은 생애"라는 책이 1894년 프랑스어로 여덟 번 출판되었고 그후 미국과 영국에서 영어로, 그리고 독일어, 에스파냐어, 스웨덴어, 이탈리아어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 (책 속에서 이사(예수)傳 전문 14장 소개)
우리나라에서는 한양대학교 민희식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프랑스어판을 1986년 10월 26일자 주간지 중앙에 일부 소개한 뒤에 많은 관련 도서들이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학자들은 예수님이 젊은 시절에 인도에 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수행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으며 때문에 누가복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도 법화경 신해품에 있는 “장자와 궁자“의 가르침을 받아 기록한 것처럼 내용이 일치합니다.
장자와 궁자의 비유는 법화경 제4품 신해품에 기록된 말씀으로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인 가섭존자가 석가모니부처님께 巨富인 장자(長者)와 거지 즉 궁자(窮子)가 된 그의 아들의 비유를 들어서 드린 말씀입니다. 종교학자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말을 불자들은 사실로 받아드리겠지만 배타성이 강한 기독교인들은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물론 믿으려는 사람조차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처님이 열반(涅槃)에 드신지 약 600년 후에 태어나신 분이며 또한 유대인들은 오직 유일신(唯一神)인 하나님만을 믿는 백성으로 이방신을 섬기는 타 종교인들과는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인도 지방으로 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했다는 사실이나 불교의식에 따라서 수행을 하였다는 사실은 당연히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 생각할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신 적은 있으나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전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때문에 법화경에 기록된 “장자와 궁자“의 비유와 신약성경 누가복음에 기록된 ”탕자의 비유“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대로 그 내용이 동일한지 다른지 그리고 만일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법화경(法華經) 신해품(信解品)에 기록된 “장자와 궁자“의 비유와 성경 누가복음에 기록된 ”탕자의 비유”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하는 것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장자와 궁자의 비유와 탕자의 비유가 같은 점은 모두 아버지와 아들을 비유한 것과 또한 아들이 모두 집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점은 “장자와 궁자“의 비유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 가섭이 비유를 들어서 석가모니부처님께 말씀드린 것이며 ”탕자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자“는 어린나이에 집에서 가출(家出)하여 집을 잃은 것이며 ”탕자”는 아들이 장성한 후 아버지로부터 자기 재산의 지분(持分)을 받아 가지고 분가(分家)를 하여 떠나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자“는 어린나이에 집을 잃고 거지가 되어서 걸식을 하며 연명을 하며 살다가 장성한 후에는 날품팔이를 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아버지가 사는 집에 도달하였는데 집에 있던 부자 아버지인 장자가 “궁자“를 보자마자 곧 그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집으로 맞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탕자”는 자신이 받아가지고 나온 재산을 모두 탕진(蕩盡)하여 먹을 것이 없어 돼지가 먹는 음식이나 열매로 연명을 하다가 너무 살기가 고통스러워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가출해서 거지가 된 궁자와 장성하여 분가를 한 탕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자와 궁자“의 비유와 ”탕자의 비유”가 유사한 점은 “궁자“의 부모나 ”탕자”의 부모는 모두 한결같이, 자비심 곧 사랑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간 자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가 기쁘게 맞아드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궁자“의 부모는 부처님의 자비심(慈悲心)을 나타낸 것이며 ”탕자”의 부모는 예수님의 사랑을 비유하여 나타낸 것입니다. 불교의 근본사상은 자비(慈悲)이며 기독교의 근본사상은 사랑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은 용어만 다를 뿐 자비가 곧 사랑이며 사랑이 곧 자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부활(復活)의 종교이며 불교는 해탈(解脫)의 종교라 말하는데 실은 “부활과 해탈“도 용어만 다르지 동일한 뜻입니다. 왜냐하면 비유를 들자면 계란 속에서 부화되어 나온 병아리를 보고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였다고 말하며 불교인들은 해탈하였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명 중생들이 자신의 종교를 우월(優越)시 하기 위해서 자기 종교에만 부활이 있고 자기종교만이 해탈이 된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불교인들이 해탈하여 부처가 되거나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여 예수님(하나님의아들)이 된다면 부처가 곧 예수이며 예수가 부처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도 예수님도 모두 한 근원(根源), 한 진리(眞理)인 모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불자들이나 기독교인들은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한 형제라는 것을 깨닫고 모두가 자비심을 가지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제 “부처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으로 불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하루속히 부처가 되시고 예수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祈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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