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숨기는 것이 없다
바닷바람이 능가산에 불어오니 사방의 선객들은 눈여겨 살펴보라.
한 움큼 버들가지 꺽어들이지 말라 온화한 바람결에 실어 옥난간에 걸어두노라.
- 황정견(黃庭堅, 1045~1105)
해풍취락능가산(海風吹落楞伽山) 사해선류착안간(四海禪流着眼看)
일파유조수부득(一把柳條收不得)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
황정견이 일찍이 회당조심 선사를 찾아가서 마음의 요체를 묻자 선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나는 너희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고 했으니,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황정견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하려 하자 선사는 “아닐세. 아니야.”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황정견은
민망하여 어쩔 줄 몰랐습니다.
이후로도 황정견이 法을 물을 때마다 선사는 ‘나는 그대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어느 날 선사를 모시고 산책을 하는데 우거진 녹음 사이로 산목련이 곱게 피어 있었습니다.
선사가 물었습니다. “그대는 저 산목련 향기를 맡는가?” 황정견은 “맡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이에 비로서 황정견이 疑心이 풀려 곧 선사에게 절하고 말하였다. “스님의 간절한 노파심을 알겠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가 비로소 집에 이르렀구나.” 그 뒤 조심 선사의 입멸 소식을
전해들은 황정견은 위와 같은 詩를 지었다 합니다.
바닷바람이 능가산에 불어옵니다. 바닷바람이나 능가산은 숨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천하의 禪客들은 이것을 눈여겨 살펴봐야 합니다. 장미는 붉고 국화는 노랗습니다. 개는 멍멍 짓고
고양이는 야옹 웁니다. 설탕은 달고 소금은 짭니다. 더우면 옷을 벗고 추우면 옷을 입습니다.
이 세상 이 모든 것이 아무 숨김도 없이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을 얻으려해도
절대로 얻을 수가 없고 내버리려해도 절대로 내버릴 수가 없습니다.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마음(心)이 아니고, 잃을 수 있는 것이라면 道가 아닙니다.
이것을 말로 표현하고 싶지만 표현 할 수 없고, 생각으로 알고 싶지만 생각으로 알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 우주삼라만상만물, 우리들은 마치 虛空에 그린 그림 같고, 물 위에 쓴 글씨 같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에도 허공에 남아있는 소리의 여운, 잔을 비운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차향 같습니다.
봄바람에 하늘하늘 춤추는 한 줄기 버드나무 가지 같아서 그저 바람결에 실어 옥난간에 걸쳐 둘 뿐입니다.
- 몽지님 /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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