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군요
범치령(范致靈)이란 사람이 내한(內翰) 벼슬에 있다가 어느 지역의 태수로 나가는 길에 원통(圓通)의
민(旻) 화상을 만났다. 이야기 중에 범 공(公)이 탄식하며 말했다. “늘그막에 벼슬살이를 하느라 이
일을 알기가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자 민 화상은 곧장 “내한!” 하고 불렀다. 범 공이 “예.” 하고 대답
하자 화상이 말했다. “멀지 않군요.”
범 공이 말했다. “좋고 좋습니다. 다시 가르침을 바랍니다.”
민 화상이 말했다. “여기에서 홍도(洪都)까지는 나흘이 걸립니다.”
범 공이 우두커니 생각에 잠기자 민 화상이 말했다. “보려면 곧장 봐야지 머뭇거리고 生覺하면 곧바로
어긋납니다.” 이 말을 듣고 범 공은 크게 기뻐하며 이로부터 들어갈 곳이 있었다.
<총림성사(叢林盛事)>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道), 眞理니 하는 것을 方便上 말로 가리키는 道나 眞理라는 것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저멀리 어디에 떨어져 있는 고정된 실체가 있는 어떤 物件과 같은 것인 줄로 錯覺을 합니다.
그러나 중용(中庸)에서 말한 바와 같이, 道라는 것은 잠시라도 나를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순간만이
라도 나를 떠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道가 아닙니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도야자 불가
유수이야 가이 비도야].
分別 비교 해석을 통해 이 마음공부를 하려 하면 위의 예화 가운데 등장하는 범 내한과 같이,마치 광활한
사막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막막한 심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찾으려는 것
과는 공부가 더욱 멀어져만 가는 절망감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절망과 좌절이 참으로 이 공부 길에 들어서는 入口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어떤 성취도 얻지 못했을 때 스스로의 실수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인연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이러할 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눈 밝은 善知識입니다.
민 화상이 “내한!” 하고 부르자 범 내한이 “예.” 하고 대답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思量 分別도 끼어들지
못합니다. 석가모니 세존이 한 송이 꽃을 들어보이자 가섭이 미소를 지은 소식이 바로 어떤 思量 分別도
介入하지 못한 이 소식입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思量 分別하는 生覺이 없는 가운데 저절로 흘러가는데
어느 순간 사량 분별하는 생각이 끼어드는 그 순간부터 삶이 부자연스러워집니다.
범 내한이 이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자 생각으로 분별하고 헤아리기 어렵지만 뭔가 마음속에서 번쩍하는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음의 기연(機緣)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가르침을 청하자 민
화상이 이번엔 “여기에서 홍도까지는 나흘이 걸린다.”라고 말했습니다.
“내한” 하고 부르자 “예.”라고 대답한 것과, “부처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마른 똥 막대기다.”라고
대답한 것은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生覺으로 思量 分別해서 이해하려 하면 이 공부와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해는 결국 생각의 내용물, 헛것에 불과합니다.
“예.”, “마른 똥 막대기.”, “여기에서 홍도까지 나흘 걸린다.”는 말의 겉만 보면 단어의 길이나 내용이
다릅니다. 말의 기럭지나 내용은 각각 다르지만 그 모든 말들은 말이 아닌 嚴然한 事實, 멀리 떨어질래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나 자신의 본래면목, 우주만물의 본질 즉,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곧장 가리키
고 있는 겁니다.
모든 행동과 말과 생각 의식 마음,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알아지는 모든 現象들이 바로 지금 어디에서
나타났다가 어디로 사라지고 있습니까? “내한!” 하고 부르자 “예.”라고 대답합니다.“부처가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마른 똥 막대기다.”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에서 홍도까지 나흘 걸립니다.”라고 대답할 뿐입
니다.
다만 이러할 뿐입니다. 단지 이것일 뿐입니다. 헤아리면 어긋납니다.
- 몽지님- / 무진장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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