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뿌리는 마음이다
언젠가 한번쯤은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의문이 불쑥 일어납니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문득 어느 날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쳐다보거나 혹은 높은 곳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다보면, 일상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퇴색되어 그 의미를 잃고,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라는 질문이 새삼 자연스럽게 올라옵니다. 事實 내가 무엇인
지도 누구인지도 모르고 사는 삶의 흐름 속에서의 나의 삶의 목표, 나의 삶의 의미가 과연 얼마나 정확
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내가 남을 어찌 알것이며, 자기자신도 모르는 상대가 어찌 나를 알겠으면 더욱이나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평화롭게 끝나는가? 아니면 죽
고 나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만약 이러한 의문들이 화롯불에 눈 녹듯이 깨끗하게 사라진다면 人間들
의 마음에도 봄이 찾아올 것입니다.
고통-행복의 뿌리도 마음
봄은 따뜻한 남쪽지방에서부터 차츰 북쪽으로 올라오듯이 人間 마음에 봄은 내가 무엇인지를 찾는 마음
에서부터 옵니다. 사람들에게는 좁게 쓰면 먼지 한 톨도 담지 못하지만 넓게 쓰면 온 宇宙를 다 담고도
오히려 남는 그런 物件이 하나씩 있는데 이것에 이름을 붙여서 마음(心)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란
놈이 참으로 神通하고 妙하여 마음 스스로가 비추어 보고 싶은 것, 대상, 경계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그것들을 전부 마음 스스로에게 비추어서 볼 수 있는 能力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촉감을 느끼고, 생각하는 대상을 이 마음이라는 거울에 비추어서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恒常 마음 거울에 비추어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마음 거울을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人間이 어떤 사건 사물 사람 사고 상황 환경에 直面할 때 조금만 內面으로 精神을 集中해서 마음
거울을 觀察하면, 관찰하는 그것들을 통해서 인간은 내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많은 것을 스스로 알아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기 자신의 行爲인 三業 즉, 생각 의식 마음, 말, 행동을 올바르게 다스려서 자기
자신을 크게 變化시켜 나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음 거울에 자신의 생각 의식 마음, 말, 행동을 비추어 살펴보고,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 의식 마음과 느낌
감정들,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의 原因을 알아서 그것들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幸福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고, 부정적인 생각 의식 마음과 느낌 감정,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들에 의해서 오히려 支
配된다면 不幸과 고통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부정적인 생각 감정이 행동
이나 말로서 表現되면 그것은 상대방을 자극하게 되고 그 상대방은 어떤 부정적인 생각 감정과 말이나 행
동으로 되돌려주는데, 이 때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 감정과 말 행동에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反應이 더해지
므로 부정적인 에너지가 계속 증가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기는 자기가 主體的 主導的으로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에 자기 목숨이 다하도록 그냥 팍팍 끌려다니는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고통의
뿌리도 인간의 마음이고, 행복의 뿌리도 인간의 마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고통은 결코 남에 의해
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運命이나 사주팔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더더욱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삼일 동안만 자신이 만나는 직장동료나 친구, 가족들이나 버스 운전기사나 거리의 아무 사람들
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최악의 욕만 해 보십시오. 삼일 후 내 인생이 어떻게 變하겠습니까? 반대로 삼일
동안 미친 척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방글방글 웃으면서 좋은 말만 해 보십시오.삼일 후 자기 인생이 얼마
만큼 變化했는가를 한번 살펴보십시오.
이것이 훌륭한 증거입니다. 삼일이 아니라 삼십 년 동안이라면, 지금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자기가 전생이나 현생의 과거에 지은 대로 겪게 되는 것임을 確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몰아
세우거나 괴롭히거나 혹은 외롭게 만드는 직접적인 原因의 대부분은 他人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마음 거울에 비추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부모를 원망하고 배우자나 자식을 친구를 혹은 사회
를 시대를 원망해보지만, 더욱 깊은 직접적인 原因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明確하게 알 수 있습
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 가는 것이 곧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요, 고통을 벗어나는 길
이 바로 眞正한 幸福으로 들어서는 길입니다. 이렇게 行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일상생활인 동시에, 불교
에서 말하는 마음수행, 마음공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정된 실체의 ‘나’는 없다(諸法無我). 불교에서는 무엇을 나라고 말을 할까요?
다섯 가지 덩어리의 合을 '나'라고 하는 것으로 봅니다.
하나, 몸뚱이 즉 육신(色). 둘, 肉身에 달려있는 눈, 귀, 코, 혀, 피부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이것들의 作用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면서 외부세계를 받아들이는 작용[受].
셋, 이 받아들이는 受의 作用에 의지해서 생각[想] 상상 이미지 즉, 아! 지금 밝구나 어둡구나, 조용하구나
시끄럽구나, 공기가 신선하구나 악취가 나는구나, 맛있구나 맛이 없구나, 맵구나 달구나 시구나 짜구나
따뜻하구나 춥구나 서늘하구나 하는 상상하고 이미지화 하는 生覺을 말합니다.
넷, 이 生覺에 의지해서 하는 精神的 肉體的 행동[行] 즉, 욕망 욕구 충동 의도 의지. 예를 들면, 추우니까
몸을 좀 움직여야겠다 혹은 난로를 좀 피워야하겠다 하면서 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다섯, 色 受 想 行에 의지해서 綜合的으로 판단하는 주변상황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識]. 즉 추워서 움직
였더니, 옆 사람이 불편하게 反應하므로 춥더라도 참아보자 하는 認識을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다섯
가지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오온(五蘊)이라고 부르며, 이 다섯가지 덩어리들의 집합체를 '나'로 봅
니다.
西洋에서는 人間을 二元論的으로 즉, 육체와 정신으로, 精神은 感性과 理性으로 보며, 육체는 기계론적으
로 즉, 육체의 각 부분의 합으로 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인간을 이 다섯 가지의 집합체로 이해를 하는
데,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이 다섯 가지 즉, 오온(五蘊)을 하나씩 분석해 보면 그 중 어떠한 것도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이기에 永遠한
것이 없어서 끊임없이 變化하고 있으므로, 恒常함이 없다는 의미의 무상(無常) 또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
는 없다는 의미의 무아(無我)로 ‘참나(眞我, 진짜 나)’를 표현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靈魂,
精神, 意識, 生覺, 마음을 이 세상의 모든 것과 區別되고 分離 分別된 獨立된 個體 내지는 單一的인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事實은 한 生命이 죽으면 그의 영혼이 한 生命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두 사람 내지 세 사람의 생명
이 될 수도 있으며, 여러 生命이 죽어서 한 생명으로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영혼, 정신, 의식, 생각, 마음
을 單一的인 것이라 할 수도 없고 多數라고 할 수도 없어 숫자 개념이 적용되지 않으며, 또한 나라고 내세울
수 있는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기에 무아(無我)가 곧 참나(眞我, 진짜 나)인 것입니다.
‘마음의 봄’을 맞이 해야
그리고 肉身에 대한 관점은 하나의 機械같이 部分의 合이 아니라, 육신의 各部分 속에 全切의 情報가 들어
있는 部分들이므로 部分과 全切가 둘 아니게 보는 것입니다. 동물의 체세포로서 생명을 복제하거나 인삼의
체세포로서 인삼을 배양하는 것이 이러한 불교의 관점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즉, 몸 속의 어떤 細胞 하나가 몸 全切의 情報를 다 포함하고 있듯이, 人間 자신의 生命 속에도 또한 宇宙의
모든 生命에 관한 情報가 들어 있으므로 우주삼라만상만물, 일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나' 아님이 없기에
무아(無我)가 ‘나’의 참 모습 實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내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신비하고 신기하고 신묘한 마음 거울을 하나씩을 平等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 의식 마음, 느낌 감정,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말, 행동을 신비한 능력이 있는 마음 거울에
비추어 자세하게 잘 살펴보십시오. 그리하면 먼저 他人이나 父母, 회사나 사회를 是非 分別하고 怨望하는
생각 의식 마음이 점차로 없어집니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을 지금 있는 그대로 수용하여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너그러움의 온기가 항상하여 殘雪과 같은 나에 관한 의문들을 녹여내게 됩니다. 심지어 나에게 닥치
는 모든 苦痛과 不幸, 失敗까지도 내가 무엇인가를 알아 가고, 나를 다스려 가고, 나를 변화시켜 가는 契機
로 삼아 스스로 변화(變化)하니 어찌 참나를 찾는 이 귀중한 마음공부의 길을 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유당- 다음카페, 무진장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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