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선(禪))으로 읽는 복음] 28. 좁은 문 (영생의 문)

장백산-1 2016. 10. 13. 00:24

[선(禪))으로 읽는 복음] 28. 좁은 문 (영생의 문)


"좁은 門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門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門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 [마태복음, 7:13~14]


예수가 말한 生命에 이르는 ‘좁은 門’을 선가(禪家)에서는 ‘門 없는 門(無門關무문관)’이라고 말합니다. 

‘좁은 문’은 좁고 험해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문이라면, ‘문 없는 문’은 아예 들어갈 

조차도 찾을 수 없어 앞길이 캄캄하게 꽉 막힌 門입니다. ‘좁은 문’이든, ‘문 없는 문’이든 그 門을 넘어

선 사람은 영원한 생명(영생)의 도리, 즉 生(탄생)과 死(죽음)이 없는 이치를 깨달을 수 있지만, 그 門

을 넘지 못하면 멸망의 세계, 생사의 고해의 세계에서 결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문, 좁은 문, 문 없는 문은 어디에 있을까요? (잠시 묵상)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지각의 원점, 부분이 없는 전체이자 

위치도 크기도 없는 영원한 생명(永生)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나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곧 나 자신이자 영원한 생명으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와 나 자신과 영원한 생명 이 셋은 조금의 간격, 물샐 틈도 없습니다. 이 셋은 언제 어

디서나 이럴 뿐입니다. 잘라 낼 수 없는 時間, 分離 할 수 없는 空間, 이것이다 저것이다 分別할 수 없는 

存在 자체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을 생각을 통해 시비 분별해서 이해하려는 순간 무한대로 텅~트여 있는 虛空이 좁디 좁은 문,

다가서려야 다가설 수 없는 문, 문 없는 문이 됩니다. 생생하게 살아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眞理 

자체가 죽어버린 槪念, 관념, 박제가 되어버린 生覺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생각의 

움직임이 멈춰지면, 그때 그저 그냥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眞實에 대한 自覺이 싹틀 수가 있습니다.

生覺의 소란스러움에서 잠시 벗어나게 될 때, 그때 소란한 그  生覺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텅~빈 바

탕을 비로소 보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좁은 門을 통과하고 문득 돌아보면 본래 애초부터 아무 門이 없었기 때문에 없는 그

문으로 들어가는 일마저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회교(回敎)의 神秘家인 잘랄루딘 루미는 이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로 노래했습니다.


"광기의 입술에 매달려 살아왔다

까닭을 알고 싶어서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나는 문 안에서 두드리고 있었다."


문 밖에 있는 줄 알고 문을 두드렸는데 문이 열리고 보니 이미  문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아니, 

애초부터 문 안도 없었고 따라서 문 밖도 없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였는데 내가 나인 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허망하게 變해가는 것을 나인 줄로만 알았기 때문에 變함없이 恒常하는 영원한 

생명인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부분이 없는 全切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나 자신, 영원한 생명(영생)입니다. 이 사실을 의식하면 없는 문이 생

겨나지만, 의식하지 않는다면 문은 본래 없습니다.


그대 자신을 열고 그대 자신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침묵)


- 몽지님-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