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역사교과서 공개]
박정희 탄생 100주기 맞춘 ‘박근혜표 효도 교과서’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ㆍ국정화, 어떻게 진행됐나
ㆍ부친 ‘유신 독재’ 합리화…정권 입맛에 맞는 ‘역사관’ 심어
박근혜 대통령은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역사에 관한 일은 국민과 역사학자의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정권이 재단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013년 대통령 취임 이후 역사교과서를 바꾸려는 박 대통령의 의지는 집요했다. 역사학자와 현장교사는 물론 전 국민적인 반대 여론에도 거침없이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시계는 2017년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기에 맞춰져 있었다. 28일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근혜의, 박근혜를 위한, 박근혜에 의한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버지와 닮은꼴 ‘국정교과서’
국정화의 기초 작업은 ‘한국사 수능 필수화’였다. 박 대통령은 2013년 6월 “언론에서 실시한 청소년 역사인식 조사 설문에서 고교생 응답자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응답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면서 “역사는 민족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당시 설문 결과는 학생들이 ‘북침’이라는 용어를 ‘북한의 침략’으로 착각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7월에는 “역사과목을 평가기준에 넣어 어떻게 해서든지 (성적에) 반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교육부는 한 달 만에 역사교육 강화방안을 발표하고, ‘한국사 수능 필수화’를 결정했다. 이를 두고 1973년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사 교육 강화와 닮은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이 유신 독재를 합리화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기 위해 ‘국정사관’을 강요한 것처럼, 딸 박 대통령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역사관을 주입하려는 수순이라는 것이다.
우려는 ‘교학사 사태’로 점차 현실화했다. 2013년 8월 ‘우편향’ 논란과 사실왜곡·오류 문제가 제기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최종 합격본 8종에 포함되면서 반대 여론이 커졌다. 교육부는 ‘교학사 구하기’에 나서 8종 전체에 대한 수정·보완을 결정했다. 여당은 기존 교과서가 모두 좌편향됐다는 ‘색깔론’을 덧칠했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는 학교 현장의 외면 속에 2014년 1월 고교 1곳만 채택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2014년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역사교과서 문제가 이념논쟁으로 번지는 것이 안타깝다. 균형 잡힌 교과서를 가지고 학생들이 배워야 한다”면서 국정화 논의의 서막을 열었다. 정치권에서 시작된 논의는 1월13일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개선안을 상반기까지 마련한다는 당정 협의를 계기로 교육부로 옮겨갔다. 교육부는 교과서 편수조직 강화라는 통제장치를 마련했다. 이어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토론회 등 절차를 밟아가며 국정화 전환을 기정사실화했다. 여당은 여론전에 나섰다. ‘교학사 사태’ 때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식시켜야 한다”던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국어와 역사는 반드시 국정교과서로 하겠다”고 밝혔다.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은 “국정화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군불을 지폈다. 2015년 9월 국정감사를 앞두고는 박 대통령이 2014년 2월 교육부에 ‘역사교과서 제도 개선’을 제시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교학사 교과서 파동이 ‘완패’로 끝나자 박 대통령이 직접 국정화에 나섰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혼이 비정상’ 국정화 옹호
결국 정부는 2015년 10월12일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 전환 방침을 발표하면서 ‘올바른 교과서’로 명명했다. 정부는 역사적 사실과 균형을 강조했지만, 정부가 기록하려는 역사는 ‘건국절’ ‘북한’ 등 노골적인 우파 교과서의 방향이었다. 박 대통령은 22일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게 어디냐”는 질문에 “(역사교과서)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말했다.
황교안 총리는 11월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확정 발표하면서 “고교 99.9% 편향 교과서”라고 주장했다. 기존 교과서 집필진과 반대 시민들에게 붉은 덧칠을 하면서 외친 ‘국민 통합’이라는 구호는 공허했다. 박 대통령은 5일 “이것(역사관 확립)이 선행되지 않으면 통일이 되기도 어렵고, 우리의 정신은 큰 혼란을 겪게 되고, 결국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는 그런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국정화 옹호에 나섰다. 10일 국무회의 때는 ‘잘못된’ 역사를 배우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거나,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로부터 1년여 뒤 국정화 작업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주요 인물인 차은택씨의 외삼촌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주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정 역사교과서는 ‘최순실 교과서’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장악력을 상실하면서 국정 역사교과서는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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