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三界唯心 萬法唯識 (삼계유심 만법유식 )

장백산-1 2018. 1. 4. 00:26

三界唯心  萬法唯識 (삼계유심  만법유식 )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이름의 이 세상)가 오직 마음일 뿐이고(삼계유심 三界唯心), 


만법(萬法, 이 세상 모든 것)이 오직 의식일 뿐이다(만법유식 萬法唯識).


-현정선원 대우선사 -


 

* * *


설사 일체의 생각이 완전히 쉬어서 아주 '고요한 경지'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의근(意根)


으로 법진(法塵)을 分別하는 것일 뿐입니다. <진정한 고요함>, 즉 '구경의 열반'은 결코 학인에 의해서 


증득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중생은 <생각 없음>으로써 '무심'이라 하지만, 여래는 <지금 현재 중생이 치성하게 생각을 굴리고 있는


이대로인 채로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즉 <참된 하나>의 자리에서 보면 유심(有心)과 무심


(無心)이 결코 두 법이 아닌 거예요. 뿐만 아니라, 온갖 법이 이 '참된 하나'를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따라서 온갖 법은 '자체의 성품'이 없는 것이어서, 서로 알아보고, 서로 도달하고 하는 일이 


본래 없는 것임을 잊지 마세요. 




이 세상 모든 것들, 우리들, 우주삼라만상만물이 오직 허망한 생각 의식 마음으로 분별(分別)함으로써 


생겨나는 허깨비와 같은 존재임을 안다면 무엇을 다시 확인하고 증득하고 할 일이 있겠어요? 온갖 것 다 


내려놓고 그저 푹 쉬세요. 




* * *


공부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여래의 심행(心行)'을 행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가령 '무심'을 말할 


때에도 '여래의 무심'을 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如來의 無心'은 凡夫들의 '無心'과 어떻게 다를


까요. 




잘 들으세요. 여래는 중생이 지금 치성하게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에도 그것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압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하는 것'이 그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즉 <여래


의 무심>과 <중생의 분별 망상 번뇌 생각이 그대로 생각함이 아닌 것>과는 같은 뜻인 거예요. 




<작용이 그대로 작용이 아닌 지혜>, 이것이 곧 '부처 지혜'의 작용인 겁니다. 




중생의 마음과 부처의 마음이 둘이 아닌데,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언제나 '유위'와 '무위', 


'유심'과 '무심', '유루'와 '무루'를 두 갈래로 인정해서 늘 이 쪽, 저 쪽 분별하느라고 쉴 틈이 없는 겁니다. 




온갖 것은 끝내 '참된 하나'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는 걸 잊지 마세요. 


모든 분별과 차별은 전적으로 중생의 '망심'에 의한 분별 때문에 있게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