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계(無境界, No Boundary), 허공성(虛空性)
무경계, 허공성, 본래의 나, 텅~빈 바탕 진공의식, 텅~빈 바탕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전(現前)
이것은 이미 숨김없이 완전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찾으려는 마음을 일으키면 더욱 찾을 수 없습
니다. 이것을 찾겠다고 일으킨 그 마음에 이것이 가려져서 이미 드러나 있는 이것은 더욱 드러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무경계, 허공성, 본래의 나, 무시무종의 나, 불생불멸의 나, 상주불멸의 나, 텅~빈 바탕 진공의식, 텅~빈
바탕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전 이것을 찾겠다는 마음은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그 마음이 일어난
바탕, 무경계, 허공성, 본래의 나, 무시무종의 나, 불생불멸의 나, 상주불멸의 나, 텅~빈 바탕 진공의식,
텅~빈 바탕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전 이것은 본래 일어난 적도 없고 사라진 적도 없습니다. 이
것은 생각을 일으켜 분별하지 않으면 항상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이렇게 영원히 항상 있을
뿐입니다.
일으키는 생각과 그 생각으로 인한 분별(分別)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이것을 확인하려 하는 한 이것을
찾아 끝없이 헤매는 짓을 멈출 수 없습니다. 어떤 인연에 문득 한 생각이 멈추어 제 자리로 돌아가는 순간,
본래부터 언제나 이미 완전하게 눈앞 지금 여기에 있었던 이것을 터득하게 됩니다.
이것을스스로 깨치고 보면 단 한 순간도 이것을 떠난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실소를 터뜨리게 됩니다. 어떤
객관적 속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것은 나와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것과 나 사이에는 어떤 경계도 없
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래의 나이고 본래의 내가 바로 이것입니다. 온갖 현상들로 가득 찬 지금 여기 이대
로가 그저 텅~빈 허공(虛空)과 같은 하나의 근본성품입니다.
이것은 마치 없는 것처럼 있기에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들만
쫓아다녔던 것입니다. 이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법(法)입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식,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상대적 분별의식으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법(法)입니다. 설사 이것을 이 법(法)을
납득한다 하더라도 자신과 이것 사이의 완전하게 빈틈이 없이 온전히 한 덩어리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비록 내가 이것과 물샐틈 없는 한 덩어리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일상의 삶에서 한 덩어리로 익숙해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호랑이 눈을 뜨고 황소걸음으로(호시우행 虎視牛行)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이것일 뿐이어서, 아무리 가고 또 가도 한 걸음도 간 바가 없습니다. 이것을 일러
행행본처 지지발처(行行本處 至至發處)라 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저 이것뿐이어서 모든 시비와 분별, 비교와 판단, 해석을 벗어버리면 살아도 산 바가
없고 죽어도 죽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할 때 완전한 포기 즉 내맡김이 완전한 수용 즉 받아들임
이 될 것입니다.
-몽지-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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