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어느 선원장 스님의 탄식

장백산-1 2018. 10. 27. 17:56

어느 선원장 스님의 탄식


좌선 일변도 수행 풍토 폐단 커

건강 악화에다 매너리즘도 우려

공부하고 안목 나누는 문화 절실


며칠 전 참선하는 스님과 우연히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선원장을 맡고 있는 스님은 의외로 현행 간화선 수행 풍토에 비판적이었다. 오늘날 한국 선원에서 스님들이 정진하는 방식은 어느 때부터인가 선의 본류에서 너무나도 동떨어졌다고 탄식했다.


스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앉아있는 좌선 일변도의 수행 방식에 대해 지적했다. 선의 황금시대라는 당송시대 활동했던 수많은 선사들의 어록이 남아있지만 어느 곳에도 좌선을 강조하는 구절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우리나라 선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줬던 임제 선사의 상당법어 마지막 구절인 ‘구립진중(久立珍重)’의 의미를 상기시켰다. 방장스님(주지스님)의 법어를 듣는 동안 ‘줄곧 서 있었으니 이제 편히 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선수행의 요체가 결코 좌선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자 당송시대 선종사원 연구서를 펴낸 분도 스님의 말에 적극 동의했다. 그에 따르면 청규의 효시가 된 백장회해 스님의 ‘백장청규’에도 좌선 시간은 개인의 역량과 자율에 맡겼다. 좌선 위주의 수행법이 정착된 것은 선이 전성기를 지난 남송시대였다. 이전까지는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로지 좌선만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아침저녁으로 방장스님의 법문을 듣고, 방장스님으로부터 개별 지도를 받는 독참도 있었다. 게다가 각각 맡은 소임이 있고 자급자족을 위한 울력까지 해야 했기에 좌선 시간은 4~5시간을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보았다.


선원장스님은 옛 조사들께서 고목처럼 종일 앉아 있다고 해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음에도 지금 한국 선원에서 하루 8시간 좌선은 기본이고 10시간, 14시간, 심지어 18시간까지 앉아있는 일도 있다고 했다. 오래 앉아 있어야 수행을 열심히 한다고 인정받고, 그것을 권장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선원 분위기라는 것이다.


스님은 이어 좌선 일변도의 수행문화가 가져오는 폐해에 대해 언급했다. 오래 앉다 보면 무릎과 허리에 심한 무리가 와서 고통받거나, 활동부족으로 장기가 상하기도 하고, 상기병과 두통으로 고생하는 스님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무엇보다 앉는 일에 점점 익숙해지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수행의 진척이 더뎌 자칫 직업수좌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학생이 선생님의 지도나 변변한 책도 없이 홀로 몇 년간 자율학습을 한다고 해서 실력이 월등히 향상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스님이 당송시대 선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산중에서 길을 잃었다면 그곳에서 계속 헤맬 게 아니라 왔던 길을 되돌아 원점으로 가야하듯 한국불교는 이제 수많은 선지식들이 배출될 수 있었던 옛 선원총림의 오도시스템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스님은 지금 선원에 당송시대처럼 공부에 꼭 필요한 법문과 납자들을 지도할 수 있는 명안종사가 드묾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결제 중에 대중들이 함께 선어록을 읽고, 서로 공부한 바를 공유하고 나누는 안목교환의 문화가 절실하다고 보았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택해야 하듯 유능한 스승이 없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선지식이 돼줄 수 있는 수행문화 정착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럴 때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바른길을 일러줄 수 있는 선지식들이 나오고 한국불교도 대중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님의 절박한 고민과 사유에서 나온 방안이 화석처럼 굳어진 오늘날 수행문화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할런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어른스님이나 도반들로부터 기존의 수행풍토를 어지럽힌다느니, 차라리 산문을 떠나라는 얘기나 듣지 않을까 걱정된다. 옛사람들은 수행이란 익은 것은 설게 하고 선 것은 익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익숙함이 편안함을 줄 수는 있겠지만 고인물이 그렇듯 썩기도 쉽다. 스님의 원력이 한국 선불교의 새로운 물줄기가 되어 도도히 흐르기를 발원한다.


mitra@beopbo.com 이재형 국장, 1461호 / 2018년 10월 24일자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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