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걸림이 없게 되면 어느 곳인들 편안하지 않는 곳이 없다

장백산-1 2018. 11. 16. 15:48

걸림이 없게 되면 어느 곳인들 편안하지 않는 곳이 없다  / 달마 대사      

   


달마 대사가 말했다. "만약 부처(佛)를 찾고자 한다면 견성(見性, 성품을 보다)을 하라. 

만약 견성(見性)하지 못하면 염불을 하거나 경을 외우거나 계(戒)를 지켜도 아무 이익이 없다. 

염불을하면 인과(因果)를 얻고, 경을 외우면 총명함을 얻고 계를 지키면 천상에 태어나고 

보시하면 복된 과보를 얻기는 하겠지만 결코 부처는 되지 못한다.


자신이 밝게 깨닫지 못했으면 반드시선지식을 찾아가서 생사의 근본을 깨달아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설사 팔만대장경을 외워서 설할 줄 안다 해도 역시 생사를 면치 못해 

삼계에 윤회하며 괴로움을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옛날 선성비구가 경전을 다 외웠는데도 윤회를 면치 못한 것은 견성(見性)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성비구도 그러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경전 서너 권 배워 가지고 불법으로 삼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자기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글을 외워도 쓸모가 없다. 비록 한 물건도 얻을 것이 없으나 

만약 알지 못함이 있으면 선지식을 찾아가 마음에 깨달음이 있을 때까지 간절히 배움을 구하라.


생사는 인생의 큰 일이니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하라. 비록 보배가 산같이 쌓이고 처자권속이 강가의 

모래알 처럼 많다 하더라도 한번 눈을 감으면 다시 볼 수 있겠는가.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꿈과 같다. 

그러므로 급히 스승을 찾지 않으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게 된다.


불성(佛性)은 누구에게나 이 세상 모든 것에 본래부터 이미 완전하게 갖춰져 있으나 스승을 통하지 않고는 

밝게 알지 못하며, 스승 없이 깨친 사람은 만에 하나도 드물다. 만약 스스로 깨달아서 성현의 뜻을 알았다면 

선지식을 찾지 않아도 된다. 이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지혜를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깨닫지 못했으면 

간절히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그 가르침으로 인해 견성(見性)해서 깨닫게 될것이다. 스스로 밝은 깨달음에 

이르면 그 때에는 배우지 않아도 다 알게 되어 미혹한 사람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검고 흰 것도 분별하지 못하면서 망령되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편다면 이는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法)을 어지럽히는 짓이다. 이러한 무리들은 설법하기를 비 오듯 하여도 모두가 마군의 말이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스스은 곧 마왕이요, 제자는 마왕의 권속인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그들의 지도로 

인해 생사 고해에 떨어지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견성(見性)하지 못한 사람이 망령되이 부처님을의

가르침을 얘기한다면 이런 중생은 곧 큰 죄인이 되고 다른 중생까지도 마군의 세계로 몰아넣고 만다.


견성하면 부처요, 견성하지 못하면 중생이다. 만약 중생의 성품을 떠나 따로 불성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면 

부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중생의 성품이 곧 불성이다. 성품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는 곧 성품이니, 

이 성품 밖에 따로 부처가 없으며 부처 밖에 성품 또한 없다."


제자가 물었다. "견성하지 못하더라도 염불하고 경을 외우고 보시하고 계를 지녀 부지런히 공부하여 복을 

지으면 성불할 수 있습니까." "못한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조그만 법(法)이라도 얻는 법(法)이 있으면 

이는 유위법이며 인과에 얽매인 것이니 과보를 받고 생사에 윤회하게 된다. 생사도 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성불하겠는가? 성불은 바로 견성을 해야 하는데 견성하지 못하면 인과라는 말도 모두 외도들의 법이 된다."


제자가 물엇다. '만약 사람의 행동과 모든 때와 장소가 다 본심이라면 이몸이 허물어질때 어째서 본심을 보지 못합니까?" "본심은 항상 눈앞 지금 여기에 드러나 있건만 그대가 보지 못할 뿐이다."

"마음이 있는데 어째서 보지 못합니까?" "그대는 꿈을 꾼 일이 있는가?" "있습니다."

"그대가 꿈을 꿀 때 꿈속 그 몸이 그대의 몸인가, 아닌가?" "제 몸입니다."

"꿈속의 그대 말이다. 꿈속 그대의 행동이 그대와 같은가, 다른가?"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다르지 않다면 그 몸이 곧 그대의 법신(法身)이며, 그 법신이 곧 그대의 본심이다. 

본심은 끝없는 옛적부터 지금까지 그대와 떨어져있은 적이 없다. 

본심은 생사 생멸도 없으며, 늘거나 주는 일도 없고, 더럽고 깨끗함도 없으며, 줗고 나쁨도 없으며, 

옴도 감도 없으며, 옳고 그름도 없으며, 남녀의 구별도 없으며, 승속과 노소도 없으며, 

성현도 범부도 없으며, 또한 부처와 중생이라는 분별도 없고, 닦아서 증득하는 것도 없고 인과도 없다. 

본심(本心)은 마치 허공(虛空)과 같아 잡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이 마음은 빛깔이나 모양이 없고 

극히 미묘하여 보기도 어려운데 이런 마음이 곧 부처다. 


사람들은 이런 마음을 보고자 하며, 이 광명속에 들어가 뛰어다니는 자가 셀 수 없이 많지만 마음에 대해

누가 물으면 마치 목석처럼 말을 하지 못하는구나. 이 모두 자기가 받아서 쓰고 잇는 물건인데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가?"


제자가 물었다. "가정을 가진 사람은 음욕을 버릴 수 없는데 어떻게 성불할 수 있습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했다. "이 법은 견성(見性)만을 말할뿐 음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음욕이 문제다. 만약 견성하면 음심과 욕심이 본래 공적하여 끊고 버릴 것이 

없으며, 그렇다고 거기에 빠지지도 않는다. 비록 음심과 욕심의 버릇이 남아 있다 해도 해로울 것이 없다.

왜냐하면 성품은 본래 청정하므로 비록 우리 몸가운데 있으나 물들거나 더러워지지 않는다.

법신은 본래 받는 것이 없고, 주리고 목마름도 없으며, 춥고 더움도 없으며, 병도 없고 은애도 없고, 

권속도 없고, 괴롭고 즐거운 것도 없고, 좋고 나쁨도 없으며, 길고 짧음도 없고, 강하고 약함도 없다. 


얻을 수 있는 물건이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으나 단지 이 육신으로 인해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더운 분별이 있으니 만약 속지 않으려면 즉시 정신 차려 정진하라. 생사에 자재하고 일체법을 굴려 

성현과 더불어 걸림이 없게 되면 어느 곳인들 편안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마음에 터럭만큼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결코 일체 경계를 벗어나지 못해 생사 윤회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견성(見性)하면 백정도 성불(깨닫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