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숙자의 글
둥지를 잃은 집시에겐 찾아오는 밤이 두렵다.
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집시에겐 두려움의 그림자일 뿐...
한 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만 미쳐서 하루 해가 짧아 아쉬웠는데
지금은 모든 것 잃어버리고 사랑이란 이름의 띠로 매였던 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 여기저기서 가슴을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
굶어 죽어도 얻어 먹는 한술 밥은 결코 사양하겠노라 이를 깨물던 그 오기도
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서는 허무하게 무너져내리고 무료급식소 대열에 줄서서
행여 아는 사람과 마주칠까 조바심하며 날짜가 지난 신문지로 얼굴을 가리고
아려오는 가슴을 안고 숟가락 들고 목이 메는 아픔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
그 많든 술친구도, 그렇게도 갈 곳이 많았던 만남들도
인생을 강등당한 나에겐 이제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밤이 두려운 것은 어린아이만이 아니다.
50 평생의 끝 자락에서 잠자리를 걱정하며 석촌공원 긴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
만감이 교차하는 상념들이 눈 앞에서 춤을 춘다. 뒤엉킨 실타래 처럼 난마의 지난 세월들...
지금은 깡소주를 친구 삼아 물 마시듯 벌컥대고 수치심 잃어버린 육신을 아무데나 눕힌다.
빨랫줄 서너발 사서 청계산 소나무에 걸고 이 생을 비겁하게 마감하자니
눈물을 찍어내는 지어미와 두 아이가 "안 돼! 아빠 안돼! 아빠 " 하는 것 같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이제는 교만할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고, 으시댈 것도 없고
그저 주어진 생을 살아가야지. 앞만 보고 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 편하다고 주저앉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날의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가야지... 걸어가야지...
-충정로 사랑방에 기거했던 한 노숙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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