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법상응사(法尙應捨)

장백산-1 2019. 7. 14. 16:13

법상응사(法尙應捨)


以是義故(이시의고), 如來常說(여래상설) : '汝等比丘(여등비구), 


知我說法(지아설법) 如筏喩者(여벌유자), 法尙應捨(법상응사). 何況非法(하황비법)'


이러한 뜻의 까닭으로, 여래는 항상 말하였다 : '너희 비구들아, 나의 설법이 강을 건너는 수단(방편)인 

뗏목을 비유함과 같음을 아는 자들은, 내가 말한 법(가르침)조차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법을 가리키는 수단 방편은 더욱 마땅히 버려야 한다.'


종교는 교설(敎說)이 아니다. 부처님의 설법 그 자체가 진리가 아니다. 설법조차도 깨달음을 가리키는

방편(수단)에 불과하다. 아무리 귀한 휴지라도 밑을 닦으면 버려야지, 그것이 귀하다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똥냄새만 계속 날 것이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고,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 할 때에 우리는 뗏목과 같은 탈 것(승 乘)를 

이용해야 무사히 건너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건너편에 무사히 도척한 뒤에 일이다. 어렵사리

뗏목을 구했고, 뗏목은 아주 좋은 나무로 곱게 다듬어져서 잘 만들어졌다. 강을 건너기 위해 이 뗏목을 

얼마나 어렵게 구했던가. 뗏목이라는 수단(방편)을 이용해서 저쪽 언덕에 도착을 했는데도, 뗏목이 좋고 

아름답고 귀하기 때문에 그냥 뗏목에 주저앉어 있다면 도대체 어느 날에 피안의 땅을 밟을 것인가.



※득어망전(得魚忘筌)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수단(방편)은 즉시 버려야 한다.'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전자소이재어 득어이망전)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제자소이재토 득토이망제)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언자소이재의 득의이망언)


吾安得夫忘言之人  而與之言哉! 오안득부망언지인 이여지언재


-장자 외물편(莊子 外物篇)-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다.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버려야 한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다.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는 버려야 한다.


말(언어)은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말 뜻을 터득하고 나면 말은 버려야 한다.


말을 버릴 줄 아는 그런 사람과 더불어 언제 나는 말을 해볼 수 있을까?'



망전(忘筌), 망제(忘蹄), 망언(忘言)은 모두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초월한 절대경지를 뜻하는 

것으로, 진리 진실 깨달음을 터득하고 나면 진리를 터득하는 동안 사용된 모든 방편, 수단과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붓다는 장자(莊子, 쭈앙쯔)가 죽은 4 • 5세기 후에 장자를 만나러 중국에 왔다(불교가 중국에 전파됨). 

이 두 위대한 영혼은 그리운 만남의 회포를 풀었다. 이것이 실크로드의 출발이요, 이것이 격의불교의 

시작이요, 지구상에 존재했던 가장 대규모의 문명교류의 시발점이었다.


같은 시간에 전혀 다른 공간에서 이 두 거인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장자는 중국인의 프라이드요, 

붓다는 인도인의 프라이드다. 쭈앙쯔는 승단을 만들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붓다에 뒤지지 않는 인물

이었다. 사실 중국인의 불교에 대한 이해는 모두 이 노장(老莊, 노자와 장자)사상의 틀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중국인의 지혜의 프라이드로서는 노자(라오쯔) • 장자(주앙쯔)가 있다. 인도인의 지혜의 프라이드로서는 

붓다가 있다. 과연 우리 조선인의 지혜의 프라이는 어디에 있을까? 이제 21세기에는 우리도 주앙쯔 • 

붓다 • 예수를 뛰어넘는 우리 지혜의 후손들을 많이 많이 길러 내자! 함께 힘내자!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강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