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의(행동, 말, 생각) 삼업(三業) - 법상스님 법문녹취
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을 남에게 주라. 남에게 주는 것이 곧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이다. 주는 것을 마음에서 연습할 때 계속 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업보(業報)라는 단어에서 업(業)은 나에게서 세상으로 나가는 행위(行爲, 생각, 말, 행동)를 말하고, 보(報)는 내가 어떤 행위를 했느냐에 따라서 나에게 되돌아오는 갚음 그걸 보(報)fk고 하지요. 그래서 업(業)이 곧 보(報)를 끌어오는 거지요. 업(業)이라는 원인(原因)이 곧 보(報)라는 결과(結果)를 끌어오는 겁니다. 즉 세상으로 내가 어떤 말과 생각과 행동이라는 세 가지 업을 내보내느냐에 따라서, 내가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내보내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나에게 돌아올 것 내가 업보로 받게 될 것 결과적으로 내가 무엇을 받을 지가 결정이 된다는 말이지요. 그게 이제 인과응보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인과응보의 원리에 따라서 보통 이렇게 얘기를 하지요.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이다. 내가 남들에게 뭔가를 주게 되면 나중에 내가 받을 게 뭔지가 그걸로 인해서 결정이 난다.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등쳐먹고 어떻게 하면 저 사람한테 뺏어먹고 좋은 건 내가 싹 가져올 수 있을까? 저 사람은 안 주고 나만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늘 한다는 것은 그런 미래를 끌어오는 거지요. 계속해서 뭔가 이렇게 남들에겐 주고 싶어 하지 않고 나만 자꾸 뭔가를 막 가지려고 애쓰는 그런 어떤 인색한 마음, 남들을 부자로 만들어주려는 마음이 아니라 자꾸 내가 없다! 없다! 없다! 하는 생각이 있으니까 자꾸 막 더 가져야지 더 가져야지 하고 집착하고 욕망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 안에 인색한 마음이 연습이 됩니다. 그러면 그 결과 사람들은 더욱 더 인색해지고 더욱 더 인색해지는 결과가 만들어집니다. 점점 더 가난해지면 점점 더 인색해질 수 있겠지요. 점점 더 내 내면이 궁핍해지는 내면 마음이 가난해지는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
내가 많이 주는 마음을 연습한다. 베풀고 나누고 하는 마음을 연습하면 내가 연습한 마음이 그대로 나에게 미래에 돌아온다. 그래서 주는 마음을 연습하면 계속 더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끌려온다. 끌어당김의 법칙, 즉 많이 주면 점점 더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끌려온다 그 말은 뭐겠어요? 내가 줄 수밖에 없으려면 내가 많아야 되는 거예요. 내가 많아야 자꾸 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주면 줄수록 더 줄 수 있는 상황이 생겨난다. 내가 지금 그 주는 마음을 연습을 하니까. 그래서 사랑하면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더 큰 사랑이 내 안에 생겨나겠지요. 누군가를 사랑한다 라는 건. 그 사랑한다, 라는 것은 요 뒤에도 나오지만 내가 너를 사랑하는 뭐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애착하고 내가 쥐려고 하고 내가 가지려고 하고 이게 사랑이 아니에요. 그냥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서 존재하도록 그대로 허용해주는 것, 그게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취사간택해서 내가 사랑하는 건 내 걸로 만들고 내가 미워하는 건 밀쳐내고 이거는 진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 종교는 사랑하고 우리 종교 아닌 건 미워한다. 이건 진정한 사랑을 왜곡해서 받아들인 거지요. 네 편 내 편이 따로 있는 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평등하게 바라봐주는 것. 그게 진정한 사랑이지요. 내 주변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더 많이 도와줄 수 있을 만한 상황으로 바뀌겠지요, 내가. 내가 더 빨리 먼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성공하는 그런 상황이 나에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실은 이 세상이 나와 둘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 하나입니다. 하나.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이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사실 가만히 나를 살펴보면 나 아니 것들로 이루어져있어요. 나는. 나 아닌 많은 것들, 내가 음식을 먹어야 내 몸이 이렇게 만들어지듯이 태양이 없으면 나는 바로 죽잖아요. 바람이 구름이 하늘이 내 주변 사람들이 있지 않으면 나는 절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무수히 많은 주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기 때문에 내가 밥도 먹을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고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 아닌 것들이 모여서 나를 구성하고 있는겁니다. 내 몸도 전부 다 나 아닌 것들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내가 먹는 것들도 가져와야 되고, 바깥에서 햇볕도 가져와야 되고, 공기도 가져와야 되고, 숨도 호흡도 내가 바깥에 있는 걸 가져와야 되고, 먹는 것도 가져와야 되고, 나 아닌 것들이 모여가지고 나를 인연(因緣) 따라 잠깐 형성하고 있는 거거든요. 우리가 나라고 이름을 붙인 그런 나는 없지만, 즉 진정의 근원은 내가 아니라 나 아닌 것들이 오히려 나의 근원을 이루고 있지요.
그래서 나와 나 아닌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사실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내가 정말 잘 되고 싶으면 나 아닌 것들을 살려주면 내가 살아나는 이치입니다. 나를 살려주고 있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살리면 내가 살게 됩니다. 나 아닌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도와주고 구원해주면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됩니다. 누군가를 도와주면 내가 도움을 받게 되고 배고픈 누군가에게 음식을 주면 내가 배고플 때 얻어먹을 수 있는 인연이 생기고, 그래서 근원적인 나눔의 실천은 나 아닌 무수히 많은 것들을 도움으로써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내가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이 우주 법계로부터 받게 됩니다.
따라서 업보(業報)의 이치는 아주 단순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 어떤 생각으로 사느냐, 나만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사느냐, 아니면 어떻게든 내가 내 인생에서 내가 지금 하는 일을 통해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사람들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이런 생각들을 늘 생각하며 사느냐. 또 말 한마디를 하는 것도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욕을 함으로써 그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진 않은지. 아니면 내가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는지, 말 한마디로 누군가에게 행복이고 되어주는지를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톡톡 쏘는 말투를 지닌 사람들이 있잖아요. 뭔 말을 해도 본인은 자기가 그런다는 거를 모이그냥 뭔 말할 때마다 톡톡 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사실은 존재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나라는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걸 모르는 게 더 가슴이 아프지요. 사실은 우리는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는 것을 통해서 세상에 베풀고 있는 겁니다. 누구나 자신의 존재방식 그것을 가지고 이 세상에 무수히 베풀고 있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 말을 거칠게 하고 톡톡 쏘아붙이고 사람들 기분 나쁜 말만 골라서 하고. 꼭 욕을 하지 않더라도 이 말을 들었을 때 저 사람이 상처받을 만한 그런 말들이 분명히 많이 있거든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렇게 말을 해놓고도 모르지요 상대방은 엄청난 상처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면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너무 힘들겠지요. 그런데 반대로 말을 예쁘게 하고 정말 상대방을 어떻게든 뭔가 이렇게 마음을 깨어나게 해주고 살려주고 또 지혜롭게 만들어주고 그 사람을 응원해주고 지지해주고 사랑해주고 이런 말들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으면 그 사람은 어딜 가든 그냥 그 사람의 존재자체가 그 사람의 말하는 그런 생활자체가 이 세상에 도움을 주고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에게 막 큰 힘이 되고.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뭐 이런 말도 하잖아요. 집에 가서 아이들은 엄마 등만 봐도 엄마가 설거지하고 있는 뒷모습만 봐도 엄마는 멀쩡하게 설거지를 했을 뿐인데 화가 난 뒷모습인지 아닌지 다 안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이 말의 습관 하나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말이 업(業.)이라는 우리 인생을 창조하는 신구의 삼업 가운데 하나 아니겠어요. 사실 행동으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잘 없거든요. 행동으로 누굴 때리는 사람은 많이 없잖아요. 기분 나쁘다고 가서 때리지 않고 폭력 저지르지 않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몸으로 나쁜 짓은 과하게 안 해요. 해도 뒤에서 숨어서 몰래하지. 그런데 입으로는 이거 말을 걷잡을 수 없다 보니까 말의 습관이라는 것이 상대방을 살리고 죽이고. 누군가에게 엄청난 힘이 되기도 하고 그런 어떤 결과를 가져오지요.
그래서 우리가 내가 이 우주 법계로부터 받는 무한한 돌봄 무한한 사랑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단순합니다. 이 우주 전체에 돌아다니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필요가 없지요. 내가 내 앞에 있는 어떤 한 사람에게 사랑의 말, 사랑의 행동, 사랑의 생각을 보냈을 때 그것이 그대로 결국은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게 되는 겁니다.
-정리 by 하이얀마음-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구와 충족을 향한 갈구의 끝! (0) | 2020.10.04 |
---|---|
명(名)과 상(相)을 빼고 있는 그대로 보기 (0) | 2020.09.27 |
사람들이 올바르게 살지 않아 화가 납니까? (0) | 2020.09.19 |
사람들을 괴롭히는 주범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0) | 2020.09.18 |
현실은 왜 괴로운 걸까? (0) | 2020.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