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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破邪)하는 수행법 현정(顯正)하는 수행법

장백산-1 2024. 7. 6. 15:36

파사(破邪)하는 수행법 현정(顯正)하는 수행법

 

파사현정이란 그릇된 것을 깨버리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 두 가지가 바로 파사하는 방법과 현정하는 방법입니다.

 

파사의 방법은 그릇된 것을 깨버리는 방법으로, 분별심, 망상, 알음알이, 무명, 집착, 욕망, 삼독심 등의 삿된 것들을 깨어버리는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경전이나 불교의 방편이 주로 이 파사하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초기경전에서는 삼독심의 불길을 훅 불어 끄는 것을 열반이라 하여,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심을 그릇된 것으로 봅니다. 또 해탈이라는 말은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 해탈로 번역되는 빠알리어 ‘위목카’, ‘위뭇띠’의 의미는 해탈, 해방, 자유 등을 나타내는데요, 무엇으로부터의 벗어남일까요? 경전에서는 탐욕과 무명으로부터의 벗어남이라고 말하고 구체적으로는 유신견, 회의적 의심, 계율에 대한 집착, 감각적 욕망, 성냄, 아만, 들뜸, 무지 등 으로부터의 벗어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파사하는 수행은 중생들로 하여금 쉽게 하나 하나 차근 차근 단계를 밟아나가게 합니다. 크게 얽매여 있는 집착과 애욕, 성냄과 어리석음, 아상과 분별심 등을 하나 하나 깨버릴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지요.

 

무언가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음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집착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하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과거에 마음에 남긴 트라우마와 상처에 갇혀 괴로워하는 사람은 그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는 방식인 것이지요. 사실 대부분의 불교 경전이나, 불교의 교리는 바로 우리가 잘 ‘파사’의 방법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다양하게 파사하는 수행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기도법, 수행방법, 명상, 참선, 염불, 독경, 사경, 다라니, 참회, 발원 등 다양한 불교의 기도 수행법들이 모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분별망상, 집착과 애욕, 무명, 아상 등의 삿된 부분들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주는 방법입니다 

 

 

불교의 역사에서 이러한 다양한 파사의 수행법들이 있어왔지만, 후대 불교에서 곧바로 진리를 드러내 보여주는 ‘현정(顯正)’하는 수행법이 생겨났는데 그것이 바로 선(禪)입니다.

 

파사는 삿된 것들을 하나 하나 없애주는 친절한 방법을 쓰고 있는데 반해, 현정의 선수행에서는 깨달은 조사가 당신의 깨달은 견처를 그저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깨닫지 못한 중생은 조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죠. 보여줘도 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승이 자꾸만 ‘이것이다’ 하고 알려주니까, 제자는 그저 모르겠고, 당황스럽고, 답답하고, 온통 꽉 막혀 어떻게 손을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조사선이고 간화선인데요, 이 선에서는 현정으로 진리를 곧장 드러내주기 위해, 대도상재목전이라 하여 큰 도는 언제나 눈 앞에 드러나 있다고 말합니다. 입처, 당처라고 하여 바로 이 자리에 이렇게 도가 드러나 있다고 말하지요. 이 도를 곧장 바로 가리킨다고 하여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도를 곧장 가리킬까요? ‘뜰 앞의 잣나무다’ ‘마른 똥막대기다’ ‘할’ ‘방’ ‘무’ 하는 등의 말 아닌 말을 통해 드러내는 방법입니다. 물론 진리, 당처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보니 어쩔 수 없이 방편으로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지요.

 

파사하는 수행법은 점수적인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현정하는 수행법은 돈오적인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파사는 ‘교’라면, 현정은 ‘선’이지요. 불교 교리와 경전을 통해 차근차근 선근공덕을 심고 반야의 씨앗을 심다 보면, 어느 순간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선의 방편인 직지법문을 듣고 그 자리에서 몰록 깨닫는 돈오의 순간이 오게 될 것입니다.


[BBS 불교방송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