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25

윤석열 >>> 지귀연

피고인석에 앉은 윤석열 전 대통령 [현장 화보]이준헌 기자입력 2025. 4. 21. 13:26 윤석열이 21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한 두 번째 정식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12·3 비상계엄 사태로 재판에 넘겨져 피고인석에 앉은 윤석열 전 대통령 모습이 21일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심리로 서울법원종합청사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두 번째 공판에 출석했다. 이날은 지난 첫 공판과 달리 재판부가 취재진의 법정 내 촬영 신청을 받아들여 윤 전 대통령이 피고인석에 앉은 모습이 사진·영상을 통해 처음 공개된 것이다. 지귀연 판사는 재판 시작에 앞서 “필요한 절차를..

현대인에게 수심결이 필요한 이유

현대인에게 수심결이 필요한 이유 한국 불교 역사 속에서 가장 뛰어난 스님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신라의 원효와 고려의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을 뽑을 것이라는데 이견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한국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불교가 시작된 이래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를 거치며 불교는 일체중생의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그 뜻을 펴기 위해 다양한 대소승의 교리와 경전 등을 통해 다양성과 심화된 가르침으로 대중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 인도의 힌두교의 성립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이란,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사상, 철학, 종교계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며 발전했다. 특히 대승불교의 성립과 함께 ..

[대승경전 유마경] 본래 죄는 없다

본래 죄는 없다 세존께서 우파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거사에게 문병을 가거라." 그러자 우파리 존자가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에게 문병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기억하건대, 과거 한 때에 두 명의 비구가 계(戒)를 어기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깊어 감히 부처님을 찾아뵙지 못하고, 저에게 찾아와 저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말했습니다. “우파리존자시여. 지금 저희들은 계율을 많이 어겨 참으로 부끄러워 부처님을 감히 찾아뵙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우파리님께서 저희들의 근심과 후회를 풀어 주셔서 이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이에 저는 곧 그들에게 여법하게 설명해주어 근심과 후회를 제거하고 허물을 깨끗이 없애도록 해주었습니다.그때 유마힐이 그곳으로..

싫은 상황을 해결하는 부처의 방식

싫은 상황을 해결하는 부처의 방식 삶은 언제나 연기의 이치대로 정확히 일어나야 할 일을 일어나야 할 바로 그 때 일어나야 할 크기만큼 일어나게 만든다. 과거에 당신이 만났던 고통, 괴로움, 힘들었던 상황들 조차 나를 돕기 위한 법계의 연기 작용이었다. 현재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또한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물론 그렇다고 힘든 상황, 괴로움이 찾아올 때 그것을 해결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힘든 상황이 오면 누구나 그것을 해결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내적인 인연이다. 나의 내면이 문제 해결을 원한다. 이 또한 인연 따라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본다. 온갖 노력을 다 해 보라. 다만 몇 번을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 혹은 죽도..

[조주 선어록] 법에는 거리가 없다

법에는 거리가 없다 “조주에서 진부(鎭府)까지 가는데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300리다.” “진부 (鎭府) 에서 조주까지 오는 데는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거리가 없다.” ✔선지식은 방편과 본질을 자유자재하게 쓸 줄 안다. 세속과 출세간을 자유롭게 오고간다. 법을 물으면 법으로 답하고, 일상으로 물으면 일상으로 답한다. 조주에서 진부까지 거리가 300리라는 것은 일상적인 물음이고 일상적인 답이다. 큰스님이라고 해서 늘 법만을 설하며 사는 것이 아니다. 매일 선문답만 하면서 살지 않는다. 선문답은 특별한 경우, 즉 제자가 법을 묻는 경우에만 한정하여 드러낼 뿐이다.선지식이라고 해서 모르는 사람이 길을 묻는데, 법으로 답을 해서는 안 된다. 진부에서 조주까지 오는데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

고통은 업장을 소멸할 좋은 기회

고통은 업장을 소멸할 좋은 기회분별을 일삼는 생각은 지금 당장 성공하고 싶은데, 현실은 자꾸만 고통스런 힘든 일이 연이어 일어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그럴 때는 힘든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불교에 말하는업(業)의 가르침에서 볼 때, 이 세상 모든 것은 업이 해결되는 방향, 해소되는 방향으로 삶을 펼쳐낸다. 즉, 내 성공보다는 앞서 먼저 내 안에 가득 쌓인 업장이 녹아야 한다면, 업장을 소멸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질 것이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악업의 업장이 해소되기 위해서이다. 즉 나를 괴롭히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나를 돕기 위해 찾아온다. 해결하려면 먼저 그 문제가 해소되어야 한다. 풀려나가야 한다. 고통이 왔다면 그것은 ..

[대승경전 유마경] 직심(直心)이 보살정토

직심(直心)이 보살정토 보적아, 마땅히 알라. 올곧은 마음(直心)이 곧 보살심의 정토이니 보살이 성불하였을 때 굽은 마음이 없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며, 깊은 마음(深心)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성불하였을 때 공덕을 구족한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 보리심(菩提心)이 보살정토이니 보살이 성불하였을 때 대승의 중생들이 와서 태어난다. ✔ 생각으로 헤아려서 한 번 걸러서 본별로 이해된 마음은 직심이 아니다. 직심, 즉 올곧은 마음이란 생각과 분별로 걸러지지 않은, 곧장 바로 이 마음이다. 분별하지 않을 때 곧장 바로 이 마음이다. 곧장 바로 이 마음이면 곧 보살의 마음이요, 보살의 정토요, 본래 청정한 깨달음의 자리다. 생각과 분별망상은 얕은 마음이지만, 생각과 분별의 파도가 잔잔해지면 그..

나답게 사는 삶이 진리답게 사는 삶이다

나답게 사는 삶이 진리답게 사는 삶이다 ‘나는 부족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남을 부러워하며, 남들처럼 살려고 노심초사하고 애쓰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나다운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면, 마음껏 나다운 삶을 나다운 방식으로 살아간다. 나다운 삶은 전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주어진 삶이기에 단순하고 쉽다. 그리고 더 큰 열정과 에너지가 샘솟는다. 나다운 것이야말로 진리다운 것이기에 진리가 돕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에 내맡긴다’는 말이다. 나답다고 할 때의 그 ‘나’는 에고, 아상으로써의 나가 아니라, 진리로써의 나를 말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라, 법신불이며 불이법으로써의 전체로써의 나를 말하며, 이 전체인 한마음이 이러한 현실로 나타난 삶 전체를 의미한다. 자기답게 사는 것이 곧..

[대승경전 유마경] 불이법문(不二法門)

불이법문(不二法門) 유마거사가 여러 보살에게 물었다.“보살이 어떻게 상대적 차별을 끊고 절대 평등한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들어가는지 말해 주십시오.” 법자재보살이 말했다.“생겨나는 것(生)과 멸하는 것(滅)은 서로 둘로 대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은 본래 생한 것이 아니므로 멸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체득하는 것이 불이법문에 드는 것입니다.” 불사보살이 말했다."선(善)과 불선(不善)은 서로 대립합니다. 그러나 만약 선과 불선에 집착하지 않고 평등하며 진실한 공(空)의 도리를 깨닫는다면 바로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드는 것입니다." 보수보살은 말했다."자아(自我)와 무아(無我)는 서로 대립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변치 않는 실체적 자아도 알 수 없는데 어찌 무아(無我)가..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 소유에서 자유로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 소유에서 자유로 고미숙 승인 2025.04.04 15:58 호수 1772 폭우 앞둔 강변서 펼친 붓다와 목동의 ‘게송 배틀’‘물질·소유’ 자랑에 ‘마음·자유’ 응수하며 자성 이끌어소유 넘치는 오늘날도 마음은 여전히 ‘불타는 황무지’우리 삶 방향도 소유에서 자유로 전면적으로 바꿔야코살라국 수도 사왓티에서는 대부호이자 정주민인 다니야와 여기저기 다니는 노마드 붓다의 게송 베틀이 벌어졌다. [AI 생성 이미지]‘숫타니파타’는 청년붓다가 전하는 ‘길 위의 노래’다. 붓다는 북인도를 유행하면서 수많은 이들을 만난다. 바라문과 사문에서 농부와 장자, 천신과 야차같은 비인간에 이르기까지. 붓다는 한결같은 평등심으로 그들을 맞이한다. 때론 붓다가 그들의 토론 현장을 방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