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운하 건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국토해양부가 국토연구원 등 5개 국책연구기관에 지난 4월17일 연구용역을 의뢰한 ‘한반도 물길 잇기 및 5대강 정비계획’ 과업지시서를 보면, 운하를 정부가 나서서 주도적으로 건설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정부가 이들 연구기관에 수계별·단계별 운하 건설계획은 물론 재원 조달 방안까지 연구하도록 지시한 것이 이를 방증하는 예다.
현재 현대·대우·지에스·삼성·대림 등으로 구성된 건설업체 컨소시엄 쪽은 한강 구간, 낙동간 구간, 두 강을 잇는 조령터널 구간 가운데 조령 구간은 투자 비용이 과다해 포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연구용역 내용을 뜯어보면 정부는 이런 현실을 고려해 민간업체의 투자 부담을 줄여주는 운하 건설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토해양부는 그동안 이 연구용역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두고 검토 중”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분석을 진행 중”이라고 해명하곤 했다.
그러나 과업지시서를 보면, 연구과제 가운데 ‘운하 선박 안전성 확보를 위한 조사’ ‘운하 신설의 지역개발 파급효과 극대화 방안’ ‘운하 신설에 따른 정부 지원 사항’ ‘운하 건설 및 운영, 관리를 위한 법·제도 연구’ 등 운하 건설을 기정사실화하는 항목이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
정부는 또 운하 반대 논리를 반박할 수 있도록 한반도 대운하 쟁점 사항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중요 과업으로 제시했다. 5개 국책연구기관을 동원해 운하 건설에 필요한 모든 것을 연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연구용역에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총괄과 홍수·수질을, 한국교통연구원이 물류 경제성,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해운물류, 한국해양연구원은 운하선박, 국토연구원은 운하 주변 지역 개발을 맡고 있다.
이 연구용역에서 운하 관련 연구는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전체 연구 비중의 20%인 ‘5대강 유역 물관리 종합대책’은 수질과 수량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수단으로 운하를 제시하려는 구상으로 보인다.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자는 “물관리 수단으로 댐 건설 등과 같은 기존 대책과 함께 운하를 넣어 검토해 운하 건설이 합리적 대책이라는 결론을 내려는 고육책”이라고 풀이했다.
정부는 이 연구 용역을 통해 운하 건설 방안과 찬성 논리를 정교하게 갖춘 뒤 워크숍, 공개토론회 등을 통해 대국민 설득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시도는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운하를 민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랏돈을 들여 운하 준비를 진행하고 있음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운하 반대 여론을 의식해 “(한강과 낙동강을) 잇고 하는 것은 국민이 불안해하니까 뒤로 미루고…”라며 단계적 추진을 시사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도 최근 “민간사업계획서가 제출되면 전문가와 국민 의견을 수렴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문건을 보면, 정부는 지난 4월 중순부터 이미 5개 국책연구기관을 동원해 내부적으로 대운하 건설을 면밀히 준비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속인 셈이 된다.
정부는 특히 연구용역 내용이 대외적으로 알려질 경우의 파장을 의식한 듯, 연구자료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11개 항에 걸쳐 자세히 열거하고 있는 보안대책을 보면, 보안각서 제출과 함께 △발생한 자료 등의 폐기물은 완전 소각할 것 △보고서는 감독관 입회 아래 정부 비밀취급인가 업체에서 발간하고 원지와 폐지는 완전 회수 또는 소각할 것 △작업실을 제한구역으로 지정해 외부인 출입을 금할 것 등이 명시돼 있다.
이런 전방위적 압박은 한 연구원의 양심선언을 부르는 사태까지 빚었다. 국토해양부와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들은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안에서도 정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추진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다고 전한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도 일반 국민과 차이가 없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라고 하면 누가 신이 나겠느냐”며 “대운하 추진으로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비난을 또 받게 생겼다”고 말했다.
허종식 선임기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jo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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