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면 위원장과 YTN 식구들에게 드리는 글.-
노종면 위원장님.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는 YTN 가족 여러분.
희망의 끈을 놓으면 다음은 절망입니다. 10월 30일 저녁. 서울역에 갔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절망하고 있는 당신들의 얼굴을 어떻게 볼까. 지친 어두운 얼굴을 어떻게 보나. 당신들의 눈물을 어떻게 견디면서 보나.
나는 놀랐습니다. 그렇게 표정이 밝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위원장 뿐이 아니라 광장에 모인 YTN식구들과 그들을 지지격려 위로하기 위해 운집한 시민들의 얼굴은 제 생각과는 달리 밝았습니다. 내가 아는 YTN 식구들의 얼굴을 보면서 목이 메는 것은 제 자신이었습니다. 말이 떨리고 가슴속에서 슬픔이 치솟아 숨이 막히는 것은 나였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방송에서 몇 십 년 먹고 산 선배라는 인간들이 당신들을 이렇게 고생시킨다는 죄책감에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날 서울역 광장에서 빛을 보았습니다. 광장을 밝히고 있는 것은 분명 희망의 불빛이었습니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 온 구본홍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목을 자른다고 당신들을 굴복시킬 수도 없고 월급을 안 줘 죽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직 하나,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것뿐임을 알았습니다.
노종면 위원장님. 사랑하는 YTN 식구 여러분.
최시중이 구본홍을 만나고 이동관 박선규가 구본홍을 만나 아무리 용기를 북돋아 줘도 애당초 될 일이 아닙니다. YTN이 국영방송이 아니고 공영방송도 아니고 지상파도 아니고 일개 케이불 방송이라고 고흥길이 아무리 깎아내려도 YTN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YTN은 불사조로 태어났습니다.
이제 YTN은 이 땅에서 가장 듬직하고 올바른 언론으로서 느티나무처럼 뿌리를 내렸습니다. 아무리 뽑아내려고 발광을 해도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고인이 된 선배들의 영혼이 YTN의 뿌리를 꽉 부여안고 있어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YTN이 태어날 때 겪었던 산고를 압니다. 힘들었죠. 누가 YTN이 제대된 언론으로 크리라고 생각했습니까. 월급도 못 받는 처량한 형편에서 몸부림치며 이겨 냈습니다. 국민들은 또 하나의 어용언론이 나왔다고 여겼습니다. 구본홍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때 이제 YTN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YTN을 보는 국민의 눈을 어떤가요. 만신창이가 된 이 땅의 방송 중에 가장 신뢰받는 방송으로 평가 받습니다. 열흘이 못 가리라던 투쟁은 이미 백일이 넘었습니다.
그 날, 서울 역 광장에서 나는 희망이란 저렇게 아름다운 것임을 새삼 느꼈습니다. 자유당 독재의 언론탄압을 보았고 관제언론인 서울신문이 시민의 손에 불타는 것을 보았고 동아일보 경향신문 탄압을 보았고 보도지침을 보았고 중정요원이 언론사에 상주하는 것을 보았고 중앙일보의 소설을 연재하던 한수산의 고난을 보았고 동아일보 해직사태와 광고탄압을 보았고 KBS MBC의 언론투쟁을 보았습니다.
이제 이 땅에 언론자유가 활짝 꽃 핀 줄로 알았습니다. 언론인 출신의 최시중, 이동관, 신재민이 권력의 핵심이 되었고 박형준도 기자출신이더군요. 국회에는 국회의장을 비롯해서 언론인 출신이 득실거립니다. 언론인 출신이 하도 많아서 몇 명 죽어도 누가 죽은 줄 모를 정도로 많은데 언론자유가 만발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 아닌가요.
그러나 ‘수 만 많은 곤쟁이’라고 하던가요. 이 땅의 언론은 숨이 찹니다.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을 망치는 원흉이 바로 언론인 출신인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처음 언론인이 될 때 언론의 사명이 무엇인지 잘 알았을 것입니다.
사회정의 구현, 그게 바로 YTN 탄압으로 구현됐습니다. 언론탄압이 바로 그들의 사회정의 구현인 것입니다. 언론이 권력화 되어서도 안 되지만 언론의 시녀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려서도 안 됩니다. 국민의 불만과 욕구를 언론이 말해 주지 않으면 국민의 분노가 곪아 터집니다. 언론이 병든 국민감정을 풀어 주는 명의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정치를 망치는 인간들을 언론이 대신 질타해야 국민의 분이 풀리지 않습니까. 기자출신 안형환의 선거법 위반 사건 판결내용을 YTN만이 자세하게 보도 하더군요. 다른 언론은 왜 보도를 안 하나요. 제 새끼 감싸긴가요.
바로 그런 것입니다. 끼리끼리 감싸는 언론의 못된 악습을 YTN이 무너트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뢰입니다. 여성 앵커와 기자 PD들의 눈물이 화면으로 보일 때 국민은 함께 웁니다. 노위원장의 국회증언을 들으며 국민은 YTN에게 신뢰를 보냅니다.
국회에서 죄인처럼 앉아있는 구본홍의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인간이 저렇게 망가지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척 교육적이라고 하겠지요. 왜 구본홍이 저렇게 됐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왜냐면 그는 기자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민주언론투쟁사에 빛나는 족적을 남긴 MBC의 정치부장 출신입니다. 후배들이 얼마나 창피할까요.
노위원장님. 그리고 YTN 가족 여러분.
방송이 엉망이 되어 갑니다. <돌발영상>이 사라져 못난 정상배들은 좋아하겠지만 국민은 화가 치밉니다. <미디어포커스>도 <시사투나잇>도 <화제집중>도 <심야토론>도 윤도현의 <러브레터>도 다 숨이 끊깁니다. 예산 없어서 그렇다는데 국민성금 한 번 모아주면 살려 낼까요.
그러나 절망하면 안 됩니다. 10월 30일, 국회출입 기자들과 검찰청 출입기자들, SBS 기자와 PD의 검은 정장이 의미하는 것은 언론탄압 세력들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서울역 광장에서 목이 터져라 부르던 <님을 위한 행진곡>의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은미, 권해효, 한겨레신문의 <공덕스> 밴드의 연주를 기억하십시오. 인터넷 방송을 통해 지켜 본 온 국민의 뜨겁고 눈물겨운 성원을 잊지 마십시오.
이제 MB 정부에게 간곡히 권합니다. YTN에서 떠나십시오. 절대로 언론장악은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불법 투하한 낙하산 부대를 철수시키십시오. 구본홍은 물러나십시오. 집에서 반성하십시오. YTN의 간부 여러분.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힘 들 때 바른 선택이 진정 용기있는 언론인의 모습입니다. 반드시 후배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노종면 위원장님. YTN 가족 여러분. 이 땅의 언론인 여러분.
YTN이 지금 이 땅의 새로운 언론사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중심입니다. 당신들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비원을 잊지 마십시오. 건강 하십시오.
2008년 1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