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방통위 위원장이 MBC에 가서 축사를 했습니다. 그 발언의 전문에서 사족을 빼고 말 속에 있는 뼈만 추려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세월이 험악했고 오늘은 더 험악하고 내일은 더 더욱 험악할 것이다. 경제적 공황은 장기화될 것이고 현실은 엄혹하다. 이런 상황에서 MBC가 갈 길을 되새겨 봐라. 더군다나 미디어 전 분야를 뜯어고칠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MBC가 한 것을 생각해보고 겸허하게 새 길을 찾을 때다.
MBC 관리자들은 감독 충실히 했는지 자성해라. 국민의 인식 속에 무엇을 심어주었는지 생각해보고 무엇을 심어주어야 할지를 생각해봐라. 문화방송이 공영인지 민영인지 어떤 형태로 존재할 지 스스로 생각해봐라. 내년에 이름 지어 주겠다. 이 자리는 축하할 자리가 아닌 MBC가 반성할 냉험한 자리다. 내년 미디어 대개편에서 MBC가 자리잡을 곳을 새롭게 돌아보라."
KBS는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어용방송이 되었고, YTN은 여전히 고사시키고 있으며, 이제 MBC가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MBC의 공영성과 독립성을 대표하는 방송문화진흥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최시중은 드러내놓고 협박했습니다.
최시중의 말 속에는 지금 이명박 정권의 상황인식과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정권에 충성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앞으로 더욱 험악한 세상으로 만들 것이라는 선포가 들어 있습니다. 경제공황까지 겹쳤으니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더욱 힘들 것이라는 협박도 곁들입니다. 정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데 경제공황을 악용하겠다는 속셈입니다.
MBC에 대한 협박은 그대로 국민에게도 통합니다. MBC라는 단어를 빼놓고 국민이라는 단어를 넣어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줍니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정권이 하고자 했던 일들을 모두 밀어붙이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나 마찬가지 입니다.
MBC에게는 정권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미디어 대개편에서 공영방송이든, 민영방송이든, 어떤 형태로 남게 될 지 생각해보고 미리 고개 숙이고 있으라는 엄포가 추가적으로 곁들여져 있습니다. MBC의 명줄을 쥐고 있으니 이제 MBC가 위치할 자리는 직접 이름지어 주겠다라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방송의 역할에 대한 인식에 심각한 결함을 노출하였습니다. 방송을 국민 인식의 조작수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무엇을 심어주어야할 지를 고민하랍니다. 국민을 TV 상자 속의 바보로 알고있다는 전제도 깔려있는 셈입니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것을 통제하면 국민 인식은 장악할 수 있다는 망령된 생각입니다.
정권의 입맛대로 편집된 내용을 국민 인식 속에 심어줄 수 있는 구도로 미디어를 개편하겠다는 의도도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이미 역사교과서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자행되었습니다. 역사교과서의 저자가 반대함에도 누가 그 내용을 서술했는지도 불분명한 문구들을 강제적으로 삽입하여 뜯어 고쳤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시각에서 국민은 자유로운 정신에 따라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저 주어진 대로만 인식하고 쉽게 조종될 수 있는 부속품에 불과합니다. 교과서를 뜯어 고치고 미디어를 통해 주입하면 국민은 그저 대기업과 족벌언론을 포함한 소수 특권계층을 위해 틀에 박힌 부속품처럼 굴러갈 것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 망령된 생각은 바로 이명박 정권의 무덤이 될 것입니다. 교과서와 방송을 조작한다고 국민은 호락호락 넘어가는 바보상자가 아닙니다. 책에서도 진실을 발견할 수 없고, 방송에서도 정의가 은폐된 채 정권에 아부하며 시중드는 타령만 읊어질 때, 국민은 진실과 정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자유를 찾아 밖으로 뛰쳐나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MBC PD수첩이 국민에게 심어준 인식 때문에 촛불을 들었다고 생각합니까? 그나마 MBC가 제대로 방송을 했기 때문에 평화적인 집회가 아름답게 그 시작을 고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어느 방송에서도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방영하지 않았다면 국민의 내밀한 언어는 서로 전하고 전하여 결국 시작부터 분노로 폭발했을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국민은 평화로운 목소리로도 충분히 토론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촛불문화제는 지난 10년간 성숙한 대한민국의 종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합리적인 의사소통 구조 아래 정당한 설득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평화에 의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권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신뢰를 임시방편적인 표정관리로 속아 넘긴 후에 뒷통수를 쳤습니다. 사회의 합리적인 의사소통 구조가 정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단절되면 남는 것은 분노 밖에 없습니다. 교과서가 거짓말을 하고 방송이 국민의 속마음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정권의 겉도는 장밋빛 환상만을 방영한다면 국민은 학교에서 책이나 들추고 있고 안방에서 TV나 켜놓고 세월을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국민의 의사소통 네트워크는 오히려 더 진실된 신뢰 속에 내밀히 다져져 견고해질 것입니다. 국민의 분노는 표출될 통로를 잃은 채 국민 사이사이에 그 응집력을 더하여 어느 순간 겉잡을 수 없이 폭발할 것입니다. 어느 독재정권도 국민을 끝까지 속이지는 못합니다. 특히나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독재정권이 방송과 신문을 마음대로 편집하던 상황에서도 서로 진실과 정의를 소통하여 자유를 되찾은 경험이 여러차례 있습니다.
교과서나 뜯어고치고 방송이나 검열하는 정권은 국민의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모를 것입니다. 대화의 통로가 단절된 상황에 다른 어떤 탈출구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할 것입니다. 정권과 국민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통로가 하나하나 정권의 획일성에 길들여지는 때가 바로 정권이 국민과 괴리되어 붕괴의 길로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이미 합리적인 대화의 통로가 단절되어 곳곳에서 그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과의 대화는 이제 신뢰를 상실했고 오히려 국민이 먼저 거부하는 상황까지 도달했습니다. 이제는 이명박 정권이 지난 1년을 반성하면서 낮은 자세로 국민을 뜻을 받들어 실천까지 내놓아야 타협할 수 있는 상황에 왔습니다.
갈수록 국민들 심정이 더욱더 험악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1년이 험악했습니까? 교과서가 개악된 오늘은 더 험악하며 그나마 남아있는 소수 자유로운 언론마저 장악하려는 내일은 더 더욱 험악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이제 달콤하되 거짓된 말로는 국민의 신뢰를 붙잡을 수 없으며 무조건적인 반성으로 새 길을 찾아야 그나마 이명박 정권이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시중 방통위 위원장의 MBC 협박은 오히려 이명박 정권의 운명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부디 스스로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자신들의 운명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자유로운 세상을 향해 협박한 말이 바로 스스로를 옭아매는 운명이 되어 자신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