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민주주의

촛불을 보며 동학을 추억한다.

장백산-1 2009. 3. 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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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보며 동학을 추억한다
번호 23100  글쓴이 손오공 (sonogong)  조회 647  누리 319 (324/5)  등록일 2009-3-7 19:49 대문추천 22   참고자료


촛불을 보며 동학을 추억한다
(서프라이즈 /손오공 / 2009-03-07)


1860년, 최제우는 동학을 창시하고 혹세무민의 죄로 사형에 처해진다.

모든 주민들이 동원되어 보를 만든다. 만세보다. 주민들이 함께 공용으로 사용하던 만세보의 물에 세금이 매겨진다. 조병갑이 만세보를 민영화한 결과다.

 

사발통문이 돈다. 사발통문이란 주동자가 없거나, 무차별적인 공권력에 항거하여 주동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게 서명을 원탁형으로 해바라기 잎처럼 둥글게 하여 연락이 전해지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사발통문이 도는 사회는 폭압의 사회이다.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고 미네르바를 잡아넣어 그때 그 그리운 시절로, 인권이 유린당하던, 대자보가 붙고 사발통문이 돌아다니는 시절이 그리운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1차 상례 집회에서 단순히 종교적인 성향의 모임에서 최제우의 숙청으로 흥분해 있던 주민들을 조병갑은 만세보를 사유화하여 높은 세금으로 임계점으로 내몰아 버린다. 사발통문이 돌고 2차 보은집회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한다. 1차 동학혁명이다.

최제우의 사형에 대하여 사과하라.’라는 종교적인 명분에서 조병갑으로 대변되는 탐관오리를 숙청하라는 현실정치에까지 개입하게 되며 주민들의 자발성이 나타나게 된다. 이후, 이용탁이 안핵사라는 신분으로 조사관으로 파견된다. ‘농민의 신분질서 훼손으로 모든 책임은 농민에게 있다.’라는 결론이 난다. 농민들이 흥분하기 시작하나 콧대 높은 안핵사 나으리는 부녀자를 겁탈까지 하며 농민들의 임계점을 폭발시켜 버린다.

 

공권력에 의한 용산 만행은 알카에다 같은 테러리스트들의 집단이며 그 테러리스트들은 죽어도 마땅하며 모든 책임은 철거민에게 있다. 술집 아녀자의 젖통을 만진 국해우원은 복당시키며 70 노인과 실랑이를 벌인 위대한 국해우뇬은 눈탱이가 밤탱이로 변했다며 병원에 누워 영원히 나오지 말 것이며, 청와대 행정관과 촛불 법관들은 이메일로 통치한다.

 

녹두장군 전봉준을 선두로 고부 민란이 시작된다. 무장, 벽산에 4대 격문이 나부끼며 2차 동학혁명의 출발이다.

-. 사람을 죽이지 말고 가축을 잡아먹지 말라.
-. 충효, 안민의 정치를 원한다.
-. 일본을 쫓아내고 바른 정치를 하라.
-. 탐관오리를 숙청하자.

 

MB 정권의 4대 격문이다.

-. 사람을 죽이지 말라. 철거민도 사람이다.
-. 도덕, 신뢰의 정치를 원한다.
-. 친일을 정리하고 바른 정치를 하라.
-. 고소영, 강부자, 조영남에 치우치지 말고 법을 어긴 자에게 책임을 물어라.

 

동학혁명은 결과론적으로 봉건사회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임금과 타협하는 것으로 실패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지방수령의 수탈과 그 명백한 잘못에 대하여 농민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버리는 조정 중신의 잘못은 임금의 잘못된 정치의 소산일 수밖에 없으나 임금의 한마디에 깨갱하여 버리는 봉건 사회의 한계점을 나타내게 된다. 다급한 임금은 탐관오리를 숙청한다고 합의를 하여 동학민을 달래는듯하다가 비즈니스 프랜들리와 프레스 프랜들리에 익숙한 임금은 기득권에 치우쳐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 사기와 거짓정치에 속은 농민들의 반발은 이어진다.

 

총으로 무장한 군과 낫과 쟁이를 든 농민의 전쟁에서 농민의 승리가 이어진다. 동학민은 고부민란에서 황토현의 승리에 이어 장성에서 승리를 거둠으로 전주까지 점령하게 된다. 동학민의 승리는 종교를 넘어서는 현실정치에 원망이 넘친 원민들의 한의 표출이었다. 민비와 대원군,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싸움에서 눈치 보기로만 일관하던 고종은 원민들을 달랠 생각은 하지 않고 동학민의 기세에 청에게 지원을 요청함으로 외세를 끌어들이는 빌미를 주어 결과적으로 조선을 쫑치게 만든다.

 

청이 고종의 요청에 따라 아산으로 들어오자 일본 역시 인천으로 밀고 들어온다. 외세의 개입이 노골화되자 부랴부랴 동학민과 폐정개혁 12개조의 협정을 내세워 합의를 하였으나 이미 이리를 몰아내고자 했던 조선은 늑대와 호랑이게 유린당하는 신세로 전락되고 만다.

 

노비문서 소각, 천민 차별 철폐, 과부의 재가 허용, 조세 개혁, 토지 개혁, 인재의 등용을 골고루 하라, 횡포한 부호를 엄벌하라, 탐관오리를 숙청하라.

폐정개혁 12개조는 150여 년이 지난 MB 정권에서 화려하게 부활 될 것만 같다.

 

복지예산과 장애인 예산을 건들지 말라. 비정규직 노동자도 사람이다. 부자 중심 조세에 반대한다. 소작농에게 돌아갈 직불금 가로챈 부호를 엄벌하라. 법을 어긴 장관, 대통령 물러가라. 고소영, 강부자에 이어 조영남(조금만 있으면 모두가 영남)에 치우친 인재 등용 철폐하라. 신입직원 연봉 깎자고 하면서 장관들 연봉 7,000만 원 이상씩 올린 것 다 토해내라.

 

이후 농민들을 중심으로 반외세 항일 투쟁과 함께 집강소가 설치되기도 하나 이념의 부족을 드러내며 분풀이식 행정에 따른 일본의 무차별적인 탄압에 이은 경복궁 침탈, 갑오개혁, 청일전쟁 등 근대사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서 5월 농사철을 맞은 농민군의 취약성 속에 개혁파의 비협조로 토지개혁 등 폐정개혁 12조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은 채 정부에 또 한 번 배신을 당하며 우금치 전투에서 밀고자의 체포로 역사에 실패로 기록되어진다.

 

역사를 두고 가정하는 법은 없다고 하나 당시 조정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농민들을 상대로 끊임없는 거짓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비열한 짓거리는 끝내는 외세를 끌어들이고 그 외세에 조선은 역사에서 지워진다. 고종이 수구들과 한통속이 되지 않고 농민군과 개혁을 지향했더라면 수구들에게 뒤통수를 맞지도 않았을 것이며 역사는 좀 더 길게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수구들은 또 다른 권력인 친일로 전향하여 나라는 망해도 기득권을 지킨다는 철저한 자기 중심적인 야비한 정책으로 일제와 야합을 이어나가며 조선은 단, 한 번도 부흥 운동 한 번 일어나지 않는 가장 불쌍한 왕조로 기록된다. 그 친일은 지금까지도 김구 씨도, 안중근 테러리스트도, 3.1절도 인정하지 않으며 대한민국을 건국 60년으로 폄훼시켜 버리려는, 역사까지도 친일 중심으로 유전자 조작에 혈안이 되어 있다. 국민들과 협의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인천항으로 유전자 조작된 농산물이 쏟아지고 전 국민들의 반대에도 미친 소가 수입되며 국토마저도 운하라는 말로 유전자를 조작하려 드는 그들의 머릿속을 먼저 유전자 조작하고 싶다.

 

2009년 3월 7일 저녁, 추모 촛불문화제가 시작되었다는 서울역 상황이 문자로 들어오고 있다. 폭력견찰 물러나라. 평화행진 보장하라. 문자로 변하여 들어오는 사발통문 중 첫째는 고종이 수구 중심정책으로 권좌에서 물려났듯이 미디어법으로 자기들의 기득권이 지켜지는 순간 수구들에게는 MB의 사용 시효도 완료됨과 동시에 레임덕은 시작될 것이다. 오리는 쥐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얼리덕과 레임덕. 두 마리 오리의 협공에 쥐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으리라.

 

촛불을 보며 동학을 추억한다.

 

ⓒ 손오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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