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지의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열린우리당이 해체됐을 때 가장 가슴아파 했다"

장백산-1 2009. 5. 30. 18:51

  • 직찍/제보 노무현을 살린 이명박과 노무현을 죽인 정똥영 [39]
  • 진월 jinmo****진월님프로필이미지
  • 번호 49524 | 09.05.3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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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상고 총동문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가 역부족해서 더 큰 성취를 이루거나 이룰수있는 토대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면 열린우리당의 해체를 제가 막지 못했지요.

법적으로는 해체되지 않았습니다만...............................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이 점은 그냥 한 인간으로서의 미완의 과제로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다음 다른 누군가가 이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점이 저로서는 아쉽습니다.

여러분께도 그거까지 성취했으면 제가 오늘 기고만장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kbs나 mbc 영상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가슴아팠던 것이 대통령 탄핵했을때도 아니고 이라크 파병, 대연정, fta 로 인해 지지층도 비판했을때 보다

 

열린우리당 해체를 했을때가 가장 가슴아팠다고 합니다. 정똥영이가 대통령 찾아가서 열린우리당 해체할거니 탈당하라고 협박해도 노무현 대통령은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살아온 길이 열린우리당이고  열린우리당이 곧 노무현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부활하지 못하게 정똥영이 작살내고 가고 도로 민주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노무현 서거 신드롬으로 노무현의 가치를 새삼 국민이 느끼는데...경상도 사람들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을 위해 민주당을 지지할 수 있어도, 노무현이 없는 민주당을 지지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민주당이 버릴때는 언제고 이제와 노무현 탄핵때처럼 빌붙으려고....

 

열린우리당이 사라지지 않고 소수 정당으로 남았다면 제2의 탄핵신드룸처럼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재평가 할것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공통점은 둘다 이 나라의 대통령 후보였다는 것. 하지만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었고, 정동영은 그러지 못했다. 왜 일까? 그 정답은 요즘 정동영의 행보에 있다. 95년 서울 시장 선거때 충분히 당선이 가능했지만, 노무현은 바보처럼 부산시장에 출마해 떨어졌고, 98년 종로 보궐 선거에 당선되었지만 다시 2000년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 또 떨어졌다. 이런 노무현을 두고 바보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했지만, 노무현은 지지 않았다. 가시밭 길을 걷는 것이 결코 패배가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반면에 정동영은 거저 먹으려는 거지 습성이 있다. 세상에 이 나라의 대통령 후보까지 올라간 사람이 보궐선거 그것도 자기 근거지에서 재기를 도모하려 하다니. 누가봐도 정동영이 전주 덕진에 나오면 당선될 것 다 안다. 정동영이 출마하려는 덕진구가 바로 내가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덕진구는 경상도가 아니가 호남에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이 가장 크다. 덕진구가 경상도에 있었다면 정동영이 후보로 나설 수 있었을까?


언제는 동작구에 뼈를 묻겠다고 하더니, 이제와서 고향에서 새로 정치를 시작하고 싶다. 상황따라 편한대로 말을 바꾸니 앞으로 누가 정동영을 믿을거라 생각하는지. 노무현은 적어도 자기가 내뱉은 말에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정동영은 과연 무엇을 내놓을 수 있는가?


정동영이 정치인으로 재기하고 싶으면 노무현을 따라하면 된다. 죽는 것 같지만 그것이 사는 길이다. 뻔히 보이는 그 길을 차마 선택하지 못하는 까닭은 정동영이 노무현과 그릇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주 덕진구 국회의원이나 할 사람이 대한민국 대선후보까지 올라갔으니 이것이 바로 이 나라의 비극이다.

정똥영 약력

고향: 전라북도 순창

학력: 서울대학교학사, 웨일즈대학교대학원석사

경력: 문화방송 뉴스데스크 앵커

      15대 국민회의 국회의원

      16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통일부 장관

      열린우리당 당의장

전과14범에참담하게 패한 측은지심의 장본인.

 

지난 노무현대통령 탄핵으로 얻은 152석의 엄청난 의석수를 가지고도 그 흔한 개혁법안 하나도 통과시키지못한 그래서 참여정부의 지지율 바닥의 장본인이도 하다.

개혁을 부르짖던 열린우리당을 당의 개혁보다는 당의 기본이며 뼈대이던 기간당원제를 폐지하고 대선후보시절에 동원한 그 유명한 동원 당원으로 수많은 지지자들의 등을 돌리게한 장본인.

그가 당의장으로 있으면서 각종 재보선에 43:0이라는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준 헌정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양산한 민주의식 결여의 대표적인 정치꾼.

자신을 후계자로 키워준 노무현대통령을 비난하고 등을 돌려 참여정부에 국정책임을 전가하고 심지어 당의 지지율 추락을 대통령에게 뒤집어 쒸웠으니 천인공노할 난봉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