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에는 세 제자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최상의 제자는 스승이 말씀을 하실 때,
자신의 존재 전체로 몰두해서
스승의 말씀을 듣는 제자입니다.
스승이 ‘너는 브라흐만이다,’ 라고 말하면,
그는 즉시 절대 진리, 브라흐만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스승에게 ‘완벽’하게
몰입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굳은 믿음과 무조건적 사랑으로
그는 스승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런 제자에게는 다하지 않는
진리에 대한 갈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승의 말씀을 들여 마십니다.
아니 그는 자신의 존재 전체로
스승을 들여 마십니다.
그러므로 ‘너는 브라흐만이다,’ 라는
스승의 가르침은 그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고
그 때 그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런 제자에게는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자세가 있습니다.
경전을 모두 배워 알게 되어도,
그는 여전히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한 신참자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대단히 겸손하고 그래서 참지식이
그에게 흘러 들어 갑니다.
존재 전체로 몰입하는 법을 알고,
모든 피조물에 고개 숙여 절하는 겸손을 알면,
당신은 심오한 진리를 깨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제자는 듣기는 하지만,
듣기가 완전하지 못하고 부분적인 제자입니다.
그가 진리를 깨닫기까지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가 스승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분명 스승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듣기는 감성적입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 전체로는 듣지 못합니다.
그의 듣기는 갈라져 있습니다.
그의 믿음과 사랑도 갈라져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존재 전체로
몰입하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합니다.
자신을 잊을 정도의 강한 집중으로
스승의 말씀을 들을 때,
참지식은 그에게 흘러 들어 갑니다.
주저하고 의심하는 마음은
그를 순진한 신참자가 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참지식은 그에게 흘러 들어 가지 못합니다.
때때로 그는 신참자의 태도를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의 마음은
다시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 갑니다.
수용적 태도는 잠시 왔다가 곧 사라져 버립니다.
그의 마음은 그가 이 경지에
확고히 남아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끼어들어서는 안됩니다.
마음은 어떤 질문도 해서는 안됩니다.
그때 마음의 방해가 멈추고,
완전한 듣기가 가능해집니다.
그때까지 제자는 부분적으로 듣습니다.
세 번 째 제자는 머리가 앞서는 유형의 제자입니다.
그는 내적으로 몹시 말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는 대단히 많은 정보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금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제자는 매우 에고이스틱한 제자입니다.
그를 진리로 이끌려면,
스승은 무한한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 제자의 듣기 능력은 대단히 형편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순진한 신참자가 되는 법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개 숙여 절을 하지도 못하고,
겸손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참지식은 그에게 흘러 들어 가지 못합니다.
스승이 계속해서 ‘너는 신이다.
너는 절대자 브라흐만이다’ 라고 반복해도
제자는 끝임없이 속으로 반문합니다.
‘뭐라고? 왜? 언제?’ 질문이 끊이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는 자신의 생각과 경전의 지식으로
이미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자를 바른 길로 이끌려면,
스승은 대단한 인내를 발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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