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함경 이야기 8 - 열반(涅槃)
“사리불이여, ‘열반, 열반’하고 말하지만, 대체 열반이란 무엇인가?”
“벗이여, 무릇 탐욕의 소멸, 노여움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 이것을 일컬어 열반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벗이여, 그 열반을 실현할 방법이 있는가? 거기로 갈 길이 있는가?”
“벗이여, 이 성스러운 팔정도야말로 그 열반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즉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다.”(《상응부경전》38:l 열반)
불교의 이상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열반(涅槃)이라 일컬어지는 경지이다. 열반의 그 원어는 빨리어로는 닙바나(nibbāna)이고 산스크리트어로(범어)는 니르바나(nirvāṇa)이다. 그 뜻은 ‘불이 꺼진 상태’를 의미한다. 번뇌, 욕망, 애욕, 갈애의 불이 꺼진 절대행복의 상태를 말한다. 상대적인 행복은 조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조건에 의해 행, 불행이 다르게 느끼지만, 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인 열반은 절대행복으로 어떤 조건을 필요치 않는다. 그러기에 늘 자유와 행복속에 노닐 수 있게 된다.
이런 종교 이상의 경지는 사람과 종교에 따라 각각 다르다. 죽어서 천국에 태어난다든지, 신의 나라, 극락에 왕생한다든지 하는 것을 이상으로 그리는 종교도 있다. 또 현세에서의 번영이나 상대적인 행복을 궁극의 희망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불교가 이상으로 여기고 있는 열반의 사고방식은 다른 종교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인생은 괴로움으로 차 있다. 그리고 그것은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때문이다. 사람이 어리석어서 격정의 희롱하는 바가 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격정을 없애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 격정이 없어지고 보면 불안이니 괴로움이니 하는 것도 없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훨훨 타오르던 불도 그 땔감이 다하고 나면 꺼져 버리는 것과 같다. 그것을 나는 열반이라 하는 것이다.”(《중부경전》72)
후대 사람들은 불교의 열반을 오해하여 죽음과 연관시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나 이 열반은 죽음과 연관시켜서 이해하게 되면 부처님의 뜻을 이해 할 수 없게 된다.
바차라는 외도가 부처님을 찾아와 해탈한 사람은 어디에 가서 태어나는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바차여, 만약 여기에 불이 타고 있다 할 때, 그 불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그것은 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바차여, 그 불이 다 타고 꺼졌을 때, 그 불은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려는가?”
“대덕이시여, 그것은 적당한 물음이 아닙니다. 그 불은 나무가 있었으므로 탔던 것이요, 이제는 나무가 없어졌기에 꺼진 것입니다.”
창조론 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이원론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기에 끊임없이 실상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 죽음 뒤의 천상에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불교는 진화론적 사고를 하고 있기에 현실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타고 있다. 활활 타오르고 있다. 먼저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어떤 뜻인가?
비구들이여, 눈이 타고 있다. 그 대상을 향해 타오르고 있다. 귀도 타고 있다. 코도 타고 있다. 마음도 타고 있다. 모두 그 대상을 향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것들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타는 것인가?
탐욕의 불꽃에 의해 타고, 노여움의 불꽃에 의해 타고, 어리석음의 불꽃에 의해 타고 있다.”
(《잡아함경》연소경)
유럽학자들이 예수의 ‘산상수훈’에 비교하여 ‘산상설법’이라 부르는 경문이다. 여기서 부처님께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연소하는 욕망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번뇌의 불꽃이 완전히 꺼질 때, 거기에 나타나는 시원하고 평온한 경지, 그것이 열반이다.
이와 같이 열반은 이런 인생의 현실에 대한 생각을 배경으로 하여, 이상의 경지를 뜻하는 말로써 생겨났다.
세상은 갈애(渴愛)에 의해 인도되고
갈애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는 것.
갈애야말로
일체를 예속시키도다. (《상응부경전》1:63 갈애)
부처님이 열반을 말씀하실 때, 결국은 이런 예속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불이 꺼지듯이 소멸되어야 하는 것은 갈애이다. 그리고 번뇌의 불꽃이며,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일 뿐이다. 인간 자체가 여기에서 “소멸하여” 어딘가에 가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여전히 여기 이 땅에 있는 것이다. 그를 예속하던 갈애가 소멸됨으로서, 그는 완전한 자유와 평온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것이다. 진리의 길, 평화의 길을, 그리고 그것이 열반이다.
여기서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은 개인적인 열반도 중요하지만 대중적인 열반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체 중생이 모두 함께 열반의 세계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래에 지구를 가장 위협하는 존재는 종교이다.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는 “종교는 악마다”라고 했다. 이 말은 이 땅에서 평화를 추구하지 않고 저 위 천상을 그리는 종교인들을 가리켜 한 말이다. 그들이 계속 천상의 영생만을 추구한다면 이 땅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땅의 모든 문제 즉 환경, 공해, 공존, 화해, 평화의 문제를 등한시 하게 되어 모든 존재에게 엄청난 불행을 맞이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두렵고 두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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