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아함경 이야기 7 -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

장백산-1 2013. 6. 7. 01:01

아함경 이야기 7 -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

 

초파일이다. 산천초목은 연록색의 새옷으로 치장을 하고, 봄의 전령들이 새로운 세상을 축하라도 하듯이 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청신한 보시바라밀을 행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봄에 부처님이 태어 나셨다. 모든 생명의 축하를 받으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태어나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그런 위대한 삶을 보여 주셨다.

 

사실 초기불교를 공부하면 할수록 부처님의 신적인 모습의 환상이 벗겨지면서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만나서 자주 놀라곤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런 부처님의 모습이 더욱 소중해 진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신과 인간의 관계와 전혀 성질을 달리 한다. 인간과 인간은 오래 함께 살아서 깊이 알게 되면 될수록 그 사이가 더욱 가까워진다. 그러나 신과 인간의 관계는 그와 반대이다. 인간이 신을 사랑하면 할수록, 신은 더욱더 무한한 것이 되고, 인간은 더욱 작은 존재가 된다.

 

나는 어린 시절, 아니 출가한 초기까지 부처님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계시면서 신통력으로 우리를 내려다 보고 계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초기 경전을 공부하면서 점점 친한 사이처럼 느껴진다. 지금의 나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한 번 보자.

 

“아난다여, 너는 나를 대신하여 카리라바투의 샤카족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도(道)를 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시 법을 설해 주어라. 나는 등이 아프다. 잠깐 누워야겠다”

아난다는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리하여 부처님은 옷을 넷으로 접어서 깔고, 발에 발을 포갠 다음, 정념정지(正念正知)를 하면서 오른쪽으로 누우셨다.”

(《중부경전》 5 유학경 , 《잡아함경》 43:13)

 

“나는 등이 아프다.” 부처님의 이 말씀은 애처로워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우리와 가까워 보이고 친근해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나는 그 분의 사상이 저 쪽 아득한 곳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게 되었다. 다시 그 유명한 바카리에 대한 경문을 보자.

 

그때 한 비구가 어느 옹기장이 집에서 앓고 있었다. ‘바카리’가 그의 이름이었다. 그의 병은 매우 깊어서 도저히 치유될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간호하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나는 이제 죽어야 할 몸이다. 만일 부처님을 다시 한 번 뵈옵고 인사드릴 수 있다면 한이 없겠다. 그러나 이 몸으로는 정사(精舍)까지 갈 수 없으니, 미안하지만 웰루와나에 가서 여기까지 와 주실 수는 없겠느냐고 부처님께 여쭈어 주면 고맙겠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부처님은 기꺼이 옹기장이 집을 찾아갔다. 바카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바카리야, 고요히 누워 있어라. 일어날 필요는 없다.”

부처님은 굳이 그를 눕게 하고 그 머리맡에 앉았다. 바카리는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가망이 없나이다. 병이 악화되기만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소원이오니, 얼굴을 우러러 뵈오면서 부처님의 발에 정례(頂禮)하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만 두어라, 바카리야. 이 썩을 몸을 보아서 무엇하겠다는 것이냐? 바카리야, 법(진리)을 보는 사람은 나를 볼 것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보리라.”

(《상응부경전》22:87)

 

처음 이 경문을 보았을 때 어떤 전율같은 것을 느꼈다. 엄한 말로 오직 진리를 깨달으려고 힘쓰고, 진리만을 의지함이 옳다는 가르침을 보이시고 계신다.

 

불상에 예배드리고 공양 올릴 줄은 알지만 정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일이 적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형식적인 초파일 행사보다 나와 남이 다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공존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그런 일이 부처님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아난다여, 나는 노쇠했다. 나이가 이미 80이 아니야? 비유하자면 아난다여, 낡은 수레는 가죽 끈으로 얽어맴으로써 겨우 움직일 수 있거니와 내 몸도 또한 가죽 끈으로 얽어맨 수레 같으니라.” (《대반열반경》)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에서 마지막 여행 길을 떠나 갠지스 강을 북으로 건너, 베사리 근방인 웰루와나 마을에서 우안거에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에서 부처님은 장마와 습기 때문에 무서운 병이 나서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맛보았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 고통을 잘 견디고 극복했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가 그늘에 앉아서 바깥 공기를 즐기고, 아난다가 오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수레가 오래 되면 그것을 가죽 끈으로 얽어매어서 사용한다. 노쇠한 부처님은 그런 수레와 똑같다고 자기의 몸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이런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등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부처님, 이 썩을 몸을 예배해서 무엇하겠느냐고 말하는 부처님, 자기의 몸을 낡은 수레에 비유하는 부처님, 이런 모습 속에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우리는 더욱 친근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경문이다.

 

신록이 우거지는 오월, 녹색은 생명의 빛깔이요, 기쁨의 빛깔이다. 부처님 오신날, 이제 이런 부처님의 모습을 보면서 지나치게 신격화 시켜서 바라보는 기복적인 불교에서 벗어나 이웃과 환경과 생태계를 아울러 생각하는 한 차원 높은 초파일 행사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출처 : 옥련암
글쓴이 : 산빛노을(원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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