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내가 부처임을 자각하는 것이 곧 자기를 바로 보는 것이다 / 불필스님

장백산-1 2013. 6. 6. 22:32

우리 절 우리 스님 |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를 출간한 불필 스님

 


“내가 부처임을 자각하는 것이 곧 자기를 바로 보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선승 불필 스님이 쓴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가 출간되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연말 출판가에서는 불필 스님을 혜민, 정목 스님과 함께

베스트셀러작가 스님으로 분류했다.

4월 10일, 벚꽃이 활짝 핀 해인사 금강굴로 불필 스님을 찾아뵈었다.

 

 

사진 사진 작가 김민숙님(2005년 6월, 석남사 심검당)

 

 

 

치열하고 진솔한 수행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을 출간하다
- 일평생 세상밖에 나오지 않고 참선 수행만 하신 분이 책을 내셨습니다. 계기는?


“큰스님(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성철 스님)탄생 1백주년을 맞아 큰스님 법대로 수행해온

바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달라는 청을 차마 물리치지 못했다. 한 사람이라도 책으로 인해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영원한 진리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족하리라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


- 한평생을 되돌아보는 회고록을 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나는 한번 마음 먹으면 앞뒤 없이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한 철 동안 최대한 집중해서

마무리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일기처럼 써두었던 글이 도움이 되었다.

다 쓰고 나니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혔더라.”


- 책이 나오자마자 반응이 대단했죠? 수행 교과서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어요.


“좋은 책이 나왔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각 선원의 선원장 스님들께 책을 보냈더니,

 ‘무릎 꿇고 성철 큰스님의 법문을 듣는 느낌을 받았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책을 읽고 산 너머에 있는 운문사 학인 스님들은 재를 넘어 와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고,

 불자들은 연일 차를 대절해서 석남사를 찾아 스님 뵙기를 청했다고 한다.

- 혹시 책을 읽고 감동받아 출가한 사람은 없나요?

“두 자매가 나를 스승으로 삼아 출가하고 싶다고 찾아 왔다. 한 사람은 내 상좌가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손상좌가 되었다.”
불필 스님은 서른여섯에 첫 상좌를 둔 이래 70여 명의 상좌와 손상좌를 두었다.

한 수행자의 치열하고 진솔한 수행이야기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실감되었다.


 

영원한 행복을 택한 출가

 

- 한국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도인, 성철 스님의 따님으로 태어나 한평생 출가수행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출가의 결정적 동기는요?


“사범학교 2학년 때 큰스님을 찾아뵌 자리에서, 큰스님께서 ‘부처님처럼 도를 깨친 사람은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대자유인이고, 이 세상의 오욕락을 누리고 사는 것은 일시적 행복인데,

너는 어떤 행복을 택할 것인가?’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내 생이 결판나고 말았다.

수많은 생을 큰스님 회상 아래에서 수행자로 살아왔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 가족들의 충격이 크지 않았을까요?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굽혀본 적이 없던 할아버지께서는 나의 출가 소식에 ‘우리 집안이

이제 망했다.’ 하며 눈물을 보이셨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 내게 모든 것을 걸고 사셨던

어머니는 망연자실, ‘대학에 들어가 졸업하고 간다면 그때는 말리지 않겠다.’고 간청했지만,

출가에 대한 나의 확고한 뜻을 꺾진 못했다.”


- 할머니께선 수행을 많이 하신 어른이라고 들었습니다.


“수시로 집 가까운 절에 가셔서 참선을 하실 만큼 신심도, 수행도 깊으신 분이었다.”
- 회고록에서 ‘할머니께서 아드님의 출가로 인해 한쪽 눈을 잃으셨다.’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의복이나 음식을 마련해서 큰스님을 찾아다니시는 할머니를 못마땅해 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이제 그만 찾아다녀라.’ 하시곤 화로를 던지셨는데 그만 할머니 눈에 맞고 말았다고 한다.”


- 출가 후 할머니를 보셨나요?


“내가 집을 나온 이듬해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화두가 성성하셨고, 국일암 성원

노스님께 ‘죽기 전에 삭발을 부탁한다.’ 하시면서 ‘다음 생애는 불필의 상좌가 되어 수행하겠다.’

는 말씀을 전해 들었다.”

 

- 어머니께선 언제 출가하셨나요?


“어머닌 ‘3년 안에 도를 깨치고 돌아오겠다.’는 나의 말을 믿고 기다리다가 10년이 넘어도 딸이

돌아오지 않자 석남사로 찾아와 은사이신 인홍 스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하셨다.

출가생활을 철저히 하시면서 수행을 잘 하시다 돌아가셨다.”


내일이 없었던 정진의 시간들


- 스님께서는 출가 전 이미 매서운 정진을 하셨다지요?


“머리를 깎기 전 청량사와 홍제암에서 하루 평균 30분 정도 자면서 화두라는 고삐를 놓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서 정진했다. 3년 안에 도를 깨치려는 각오였으니 얼마나 마음이

급했겠는가?”


- 출가도 하기 전에 어떻게 그렇게 맹렬하게 정진할 수 있었나요?


“집을 나와 공부하러 가는 내게 큰스님께서 직접 쓰신 법문노트를 내주셨다. 처음 발심해서

출가한 수행자들이 굳은 신심으로 수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신 수행지침서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노트를 외울정도로 수없이 보면서, 이렇게 공부하면 영원한 대자유인이 되겠구나

생각했고, 철저히 법문 속의 내용처살려고 노력했다.”


- 삼십대 중반인 석남사에서의 3년 결사는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을 만큼

굉장한 용맹정진이라고 들었습니다

 

“백련암 성철 큰스님의 권고로 시작된 결사다. 해인사에서 큰스님의 백일법문을 들은 뒤여서

신심이 충만할 때였다. 3년 동안 일주문 밖을 나가지 않고 은사 스님을 비롯해 장일·성우·혜춘

스님 등 어른 스님들을 모시고 인간이 기울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쏟아 정진했다.

나이 들어 보니 그때 어른 스님들이 얼마나 필사적인 노력을 했는지 알 것 같다.”


- 3년 결사가 끝나고 바로 하안거 용맹정진을 시작했습니다. 가능한 일인가요?


“예순이 넘은 은사 스님께서 3년 결사를 끝내고 바로 칠불암으로 정진을 떠난 것을 보면서

도저히 누워 잘 수가 없었다. 석남사 심검당에서 젊은 수좌들 일곱 사람이 모여 백일 동안

공양하는 시간과 화장실가는 시간 말고는 가사를 벗지 않고 장좌불와를 했다.

정말 죽겠다 싶을 때는 잠깐 앉아 쉬기도 했던 의자를 치우고 한순간도 등을 의자에 대지 않고

지냈다. 밤 열 시, 졸음이 물밀듯이 밀려올 때면 대중들 모두 롱불을 들고 심검당에서

사슴목장까지 걸어갔다가 새벽예불 시간에 맞추어 돌아왔다.

생각하면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젊음의 힘이 있었기에 폭풍우가 몰아쳐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 이불도 의자도 없이 백일 동안 서서 살다시피하며 행선을 하다 보니, 피곤하면 눈에서

잠이 오는 것이 아니라 다리가 조는 느낌이었다는 말씀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내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정진했다. 무슨 일을 하던 다음을 생각하면 망설임이 생겨

밀고 나갈 수 없다. 피를 말리며 최선을 다한 시간들이었다.”


- 출가 후 단 한 번도 주지 등 공직을 맡지 않으셨습니다.


“숨어사는 도인이 되겠다는 큰스님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사진 사진작가 김민숙님(2005년 6월)

 

진정한 힐링은 수행정진에


-불자들에게 절을 많이 시키고 계시죠?


“인간은 절대적이며 무한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이것을 깨치고 살아야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지는 데 절이 가장 적절한

수행이라고 각한다.”


- 힐링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시대입니다. 진정한 힐링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무한한 능력을 가진 부처임을 자각하는 것이 곧 자기를 바로 보는 것이다. 자기를 바로 볼

존감을 회복하고 자존감이 회복될 때 진정한 힐링이 된다. 수행이 진정한 답 아니겠는가.”


필자는 오랜 동안 불필 스님을 뵈어왔지만, 단 한 번도 삶의 현장인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동요함이 없는 깊고 분명한 눈동자, 단정하고 위의 있는

몸가짐으로 언제나 중을 압도한다. 한결같은 도에 대한 확신과 스승에 대한 물러남이 없는

존경심은 조용한 리더십으로 표출된다. 필자는 그러한 모습만으로도 스님께선 인간의 존엄성을

완성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스님과 동시대를 함께 하고 있음이 행복하다.

 


불필 스님은 1937년 지리산 자락 아름다운 경호강 굽이에 안겨있는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성철 스님의 딸로 태어났다.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 가지산 호랑이라 불리던 인홍

스님을 은사로 석남사에서 출가했다. 1961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비구니계를 수지하고,

1972년 석남사 심검당에서 3년결사0를 회향했다. 출가 이후 자유로운 운수납자로 해인사 청량사,

태백산 홍제사, 문경 대승사 윤필암, 묘적암, 해인사 국일암, 지리산 도솔암, 대원사, 오대산
지장암 등 제방선원을 다니며 공부했다. 지금은 석남사 심검당과 해인사 금강굴에서 수행정진

하고 있다.


취재·글| 박원자 본지 편집장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
글쓴이 : 유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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