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함경 이야기 - 불교교리 6
연기법에 대해서 1
불교의 가르침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연기법이다. 이 연기법을 모르면 불교를 모른다고 할 만큼 최고의 가르침이다.
연기(緣起)란 빠알리어로 ‘빠띳짜사뭅빠다(paticca-samuppada)’라 한다. 한자어 ‘연(緣)’과 ‘기(起)’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풀이하면 “조건하여 일어난다”라는 뜻이다. 한자어 ‘연(緣)’을 ‘조건’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빠알리어 ‘빠띳짜(paticca, 緣, 조건하여)’를 조건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뒤의 ‘기’를 빠알리어로 사뭅빠다(samuppada, 起, 함께 일어남)라 하는데, 이는 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어남’을 말한다. 이는 원인이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조건을 가지고 함께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연기법은 철저하게 원인과 조건과 결과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고 보는 ‘상견(常見)’과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단견(斷見)’을 배격한다. 그런 구체적인 설명을 5세기에 붓다고사 비구는 《청정도론》에서 ‘연’과 ‘기’로 이루어지는 단어를 분석하여 설명하였다.
앞의 단어(즉, 緣)로 영원함(常見)등이 없음을
뒤의 단어(즉, 起)로 단멸(斷見)등의 논파를
두 단어를 합쳐서 바른 방법(ṅāya)을 밝혔다.
(《청정도론》, 제17장 통찰지의 토양 21절)
붓다고사는 연기의 연자 즉 빠알리어 ‘빠띳짜(緣)’로 상견이 없음을 설명하였다. 빠알리어 빠띳짜는 ‘조건의 화합’을 뜻하기 때문에, 영원하다거나, 원인 없이 생긴다거나, 신이나 창조주등이 거짓원인으로 부터 생긴다거나, 지배자의 의해서 존재한다는 학설 등으로 분류되는 ‘영원함(常見)’등이 없음으로 보여 주었다.
부처님은 상견에 빠진 당시 바라문인들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또는 세 가지 베다에 정통한 브라흐민들의 스승의 스승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라도 브라흐마신(梵天)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님.
또는 그 스승들 중 7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어느 한 사람이라도 브라흐마 신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님.
(디가니까야:13 때욋자 경 1-15.19.24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 중에서)
부처님은 어느 누구도 창조신을 본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신과 합일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를 주장하지만 이는 고대 브라흐민들이 전승한 내용을 그대로 암송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터무니 없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창조주가 조건이 되고 원인이 되는 것은 연기법에 어긋나므로 거짓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빠띳짜(paticca, 緣, 조건하여)’로 ‘영속론’를 논파하였다.
다음으로 연기의 ‘기(起)’자 즉 ‘사뭅빠다’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단멸론’을 논파하는데 사용된다. 붓다고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단어는 법들이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조건이 화합하여 법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단멸한다거나, 허무하다거나, 도덕적 행위의 과보가 없다고 주장하는 ‘외도의 견해’를 논파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죽으면 끝나는 것으로 보고 또한 다시 태어남도 없고, 선악에 대한 과보도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을 단멸론이라 하는데, 육사외도중에 뿌라나 까사빠(Pūrana Kassapa)와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āla)와 아지따 케사캄발린(Ajita Kesakambalin)의 사상이 대표적인 단멸론에 해당한다. 이들 외도의 사상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푸라나 까싸빠(Pūrana Kassapa) - 도덕 부정론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푸라나는 원인과 업보를 부정하는 주장을 폈다. 악한 일을 하거나 선행을 하거나간에 둘 다 선악의 과보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자유로웠던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②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āla) – 숙명론
아지비까(Ājīvika)교파의 개조인 막칼리는 삶의 모든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결정된 숙명에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체 생명체의 윤회나 해탈도 원인이 없으며, 다만 자연의 상황과 결정에 따른다고 하였다. 부처님 당시에 상당한 세력을 가졌으며 후대의 아소까(Asoka)왕 비문에도 독립종교로 기록되었으나, 후에 자이나교에 흡수되었다. 아지비카(Ājīvika)란 생계수단을 뜻하는 ājiva(命)에서 파생된 단어로 그들은 바르지 못한 생계수단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이해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사명외도(邪命外道)로 옮겼다. 이들은 나체수행자들이었다고 한다.
③아지따 케사캄발린(Ajita Kesakambalin) – 유물론
아지따는 모든 것이 지·수·화·풍의 4요소와 활동하는 공간인 허공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오직 현세만이 있을 뿐이며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도 없으며, 생명체가 죽으면 신체구성의 4요소가 자연계로 환원한다고 보았다. 존재론적으로는 유물론이고, 인식론적으로는 감각론이며, 실천적으로는 쾌락주의인 아지따의 사상은 푸라나의 도덕부정론에 대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유물론의 전통은 그 후에도 인도에 존재했는데, 이것을 로까야따(Lokāyata)라 하며 불전에서 순세외도(順世外道)라고 하였다. 또한 후세에는 쨔르바카(Cārvāka)라고도 한다.
모든 법은 조건에 따라 일어나게 되어 있다. 조건이 화합할 때 법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대상(根)과 감각기관(境)과 알음알이(識)가 서로 조우할 때 감각접촉에 조건 지워진 조건발생의 산물로 보는 것이다. 이를 한자용어로 ‘삼사화합(三事和合)’이라 한다.
삼사화합이 일어나면 법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감각접촉에서 부터 시작하여, 느낌, 갈애, 집착으로 이어지면서 존재로서의 업(業有)이 생겨나게 된다. 그 결과 태어남이 있고, 늙음과 죽음과 비애, 탄식, 고통, 비탄, 고뇌, 절망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조건에 따라 법이 일어나면 그 법 역시 다음 법의 조건으로 되어 끊임없이 연기가 회전 되는데, 이를 십이연기로 설명한다. 그런데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다음 생은 없다”라는 삿된 견해를 가지면 어떻게 될까.
진짜 그렇게 된다면 다행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절반의 성공에 그칠지 모른다. 업이 남아 있는 한, 그 업의 힘으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서 새로운 생이 시작되기 때문에 “죽으면 끝이다”라고 생각하는 단멸론을 삿된 견해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하여 법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단멸한다거나, 허무하다거나, 도덕적행위에 대한 과보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 된다. 따라서 ‘사뭅빠다(samuppada, 起, 함께 일어남)’로‘단멸론’을 논파한 것이다.
이와 같이 연기법은 외도들의 사상과 확연히 구분되는 사상체계였다. 또한 연기라는 의미를 청정도론에서는 ‘맛지마 빠띠빠다(majjima patipada,中道)’라 하였다. 중도는 담마짝까경(초전법륜경)에서 저열한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거나 자신을 학대하는 극단에 따르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 중도는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이런 중도는 다름 아닌 ‘사성제’를 말한다.
불교에서 진리는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사성제를 말한다. 그런 진리는 해탈과 열반으로 인도한다고 하여 ‘네 가지 성스런진리(四聖諦, cattari-ariya-saccani)’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성제는 중도라 하였다. 따라서 중도는 연기법이고, 연기법은 진리가 된다. 그렇다면 연기법으로 논파되는 상견과 단견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당연히 진리가 아니다. ‘삿된 견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앞에서 연기법을 모르면 불교를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불교를 접했지만 아직도 의문이 남는 것이 이 연기법이다. 설사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연기법을 체득하고 실천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 같다. 그만큼 연기법은 심오한 것이다.
아난다여, 이 연기는 심오하고, 또한 심오하게 드러난다.(S.ii.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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