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함경 이야기 - 불교교리 8
연기법에 대해서 3 – 12연기
연기를 빨리어로 빠띳짜사붑따다(paṭicca-samuppada)라고 한다. 이는 3가지의 단어가 합성된 말이다. 빠띳짜(paṭicca)는 ‘~로 인하여’, ‘~을 원인(조건)으로 하여’이며 삼(sam)은 ‘잘(well)’을, 웁빠다(uppada)는 ‘발생’을 의미한다. 즉 원인에 의존하여 결과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의존적 발생의 법칙’ 혹은 ‘윤회’의 법칙이라고 한다.
12연기는 연기법 안에 있는 12개의 연결고리로써 끝없는 윤회의 사슬 속에 하나의 현상에서 또 다른 현상으로 의식체가 일어나는 과정이다.
12연기가 무명(無明, Avijja)에서부터 시작되지만 무명이 시원은 아니다. 왜냐하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회를 거듭하는 존재의 시원은 무명에 가려져 알 수가 없다. 연기는 재생의 순환을 가르쳐 주며 원인은 원인이자 한편에서는 결과이다. 즉 이 시공의 우주 속에서 원인은 결과가 되고 그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12연기는 다음과 같다.
1. 무명(無明, Avijja)을 원인으로 하여 행(行, 업의 형성, Saṅkhara)이 일어난다.
2. 행을 원인으로 하여 식(識, 의식, Viññāṇa)이 일어난다.
3. 식을 원인으로 하여 명색(名色, 정신과 물질, Nāmarūpa)이 일어난다.
4. 명색을 원인으로 하여 육입(六入, 육근, 육처, Salāyatāna)이 일어난다.
5. 육입을 원인으로 하여 촉(觸, 접촉, Phassa)이 일어난다.
6. 촉을 원인으로 하여 수(受, 감각, Vedana)가 일어난다.
7. 수를 원인으로 하여 갈애(渴愛, 愛, Taṇhā)가 일어난다.
8. 갈애를 원인으로 하여 취(取, 집착, Upādāna)가 일어난다.
9. 취를 원인으로 하여 업의 생성(업의 생성, 有, 業有, Kamma bhava)이 일어난다.
10. 업의 생성을 원인으로 하여 생(生, 태어남, Jāti)이 일어난다.
11. 생을 원인으로 하여 노사(老死, Jarāmaraṇa)가 일어난다.
이로 인하여 슬픔(愁), 비탄(悲), 육체적 괴로움(苦), 정신적 괴로움(憂), 고뇌(惱)가 일어난다.
위의 12연기를 간략하게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과거의 무명 즉 진리를 모르는 것(사성제법을 모르는 것) 으로 인해 업을 짓고 그 업의 형성력으로 인해 태내에 재생연결식이 연결되고 그 식(識)에 의해 정신(名)과 물질(色)로 이루어진 태아가 생기고 이 명색으로 말미암아 6가지 감각기관이 형성되고 태어난다. 이 6가지 감각기관(眼耳鼻舌身意=六根)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외부의 세상(色聲香味觸法=六境)와 부딪혀서(觸) 느낌이 있게 된다.
이 느낌으로 말미암아 갈애(愛)가 있고, 이 갈애로 말미암아 집착(取)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또 업을 짓게 된다.(有, 업의 생성) 이 업력이 다시 내생에 삶과 죽음(生, 老死)을 초래하는 것이다.
미래에 다시 삶을 살면서 무명과 갈애로 이어진 삶이기에 識, 名色, 六入, 觸, 受의 작용이 있게 되고 그러면 또 다시 느끼고, 집착하고, 업을 형성시켜 無明과 行 등으로 끝없이 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무명에 의해 행이 있고 … 업의 생성에 의해 생과 노사가 있다고 설명하는 것을 유전문(流轉門) 즉 윤회의 길이라고 하고, 만약 무명을 없애면 행이 없어지고 행이 없어지면 식이 없어지고 … 업의 생성이 없으면 미래에 생과 노사가 없다고 설하는 것을 환멸문(還滅門) 즉 해탈의 길이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명(無明)과 갈애(渴愛)이다. 이 두 가지가 윤회의 근본이 된다. 무명은 진리를 모르는 것, 본질을 모르는 것으로 교리적으로는 苦集滅道의 사성제법을 모르는 것이다. 요즘 과학으로 이야기 하면 유전자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 된다. 유전자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다만 생존과 번식을 위한 생체프로그램으로 되어 있다. 오로지 이 두 가지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이 두 가지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간 또한 예외 일 수 없다.
스티븐 핑거는 “내가 존재하는 데에는 어떤 이유도 없다는 깨달음이야말로 진화 심리학의 개가이다.”라고 했고, 또한 “마음은 자연선택이 우리 조상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식량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특히 사물, 동물, 식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극복하기 위해 설계된 기관들의 연산체계이다”라고 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기계일 뿐이라고 했다.
어쨌든 무명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 할 수 없다. 우리가 무명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맹목적인 무지정도로만 알 수 있다. 또한 행(行)도 맹목적인 의지정도로 알면 된다. 이 두 가지는 깨달음을 이루었을 때 해결되는 문제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현생에서 어떻게 무명과 갈애를 없애느냐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요점은 그 다음의 다섯 요소이다. 즉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이다. 이 다섯 요소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기되어 영향을 준다. 즉 이쁜 사람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면 다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 등이다. 여기에서 식(識)은 맨 처음에는 재생연결식이지만 그 다음의 식은 선행하는 마음이다.
불교 수행의 입장에서 보면 이 중에서도 수(受)가 무명과 갈애에서 벗어나는 키포인트이다. 몸과 마음이 있고 6가지 기관이 존재하는 한 부딪히지 않고 살 수 없다. 그 촉(부딪침, 觸)에서 크게 세 가지의 느낌이 일어난다. 좋은 느낌, 나쁜 느낌, 좋지도 싫지도 않는 느낌이다. 이 느낌에 마음이 흔들리면 갈애가 일어난다. 갈애는 목마른 사람이 간절히 물을 찾는 듯한 마음이다. 만약 이 느낌을 갈애로 나아가도록 두면 곧 바로 집착심이 생기고 그 집착심이 생기면 업력이 형성된다.
이 형성된 업력(습관화 된 마음에너지)이 끝없는 고통의 삶으로 윤회시키는 것이다. 윤회는 꼭 과거, 현재, 미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 반복하는 습관이다. 이 습관이 인격을 형성하고 이 인격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자들은 느낌이 일어났을 때 재빨리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것이 불교 수행이다. 부처님은 이 방법으로 sati(사띠, 알아차림, 마음챙김, 깨어있음, 주시)수행법을 가르쳤다. 곧 8정도의 정념(正念)수행법이다. 이 사띠 수행은 느낌이 일어났을 때 판단없이 곧 바로 알아차림만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하지 말며, 없애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알아차리고 또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모든 마음현상은 다만 뇌의 전기 화학적 반응이요, 연기되어진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사에 몸과 느낌, 그리고 마음, 법을 알아차림하는 것이 불교수행의 요체이다. 이렇게 오래 하다 보면 수(受)에서 갈애(愛)가 생기지 않고 그러면 집착심과 업력이 힘을 잃고 반복 된 습관에서 해탈하는 것이다. 물론 이론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불교의 정법에 의거한 수행법을 따라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하고 있는 간화선이나, 위빠사나, 염불선 등을 통해야만 지혜가 생기고 그 지혜의 힘이 있어야 모든 것이 연기되어져 있어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라고 철견하고 열반(평온)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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