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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함경이야기 35 - 불교교리 10 - 삼법인(三法印) 대해서 2 – 제행무상(諸行無常) 2

장백산-1 2013. 6. 7. 01:30

아함경 이야기 - 불교교리 10

삼법인(三法印) 대해서 2 제행무상(諸行無常) 2

 

제행무상인은 연기법의 토대를 이루고 있기에 조금 더 설명하기로 한다. 즉 모든 것이 무상하기에 고통을 느끼고, 또한 영원한 실체가 없다라는 삼법인 공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연기법 하면 또렷이 인식 되지 않지만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하면 수긍이 간다. 하지만 이 말은 염세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인생은 무상한거야라고 인생무상을 말하니, 딸이 듣고 있다가 아빠! 무상하지 않으면 어떻게 내가 자라나요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우주의 모든 것은 그것이 생명체이건 생명체가 아니건 무상이고 무아라는 것에는 예외가 없다. 그러나 무상과 무아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역시 생명세계이다. 그리고 진화란 생명체가 만약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속성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과정이다. 생명세계가 아닌 경우에는 찰나멸의 논증을 사용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우주의 다양한 물질은 120여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고, 이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반지름은 10-15m정도이다.

 

이것이 얼마나 작은 크기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양성자나 중성자를 지름이 10인 사과에 비유한다면, 1라는 길이는 지구에서 태양에 이르는 거리에 해당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작은 양성자나 중성자의 내부에서도 무수한 미립자들이 순간순간 생성되었다가 소멸한다는 것이 현대물리학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다.

 

 이 미립자들의 전형적인 생명은 10-23초라고 한다.

 

이 미립자들의 생명을 가령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1초로 늘린다면, 우리의 1초는 1023초가 되는데, 이는 약 300조 년에 해당한다.

 

이는 지구 역사의 60만 배, 우주 역사의 20만 배나 되는 긴 시간이다. 즉 미립자의 생명과 1초와의 비는 1초와 우주 역사의 20만 배나 되는 시간의 비와 같다는 것이다. 미립자들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생겨났다가 소멸하니, 순간적으로 생성되고 순간적으로 소멸한다.

 

혹은 생성되는 순간에 바로 소멸한다고 하여도 그리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러한 미립자들에 의하여 원자가 이루어지고 그 원자에 의해 우리의 세계가 이루어지니,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듯하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찰나에 생멸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물의 원자나 분자가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 물을 끓일 수 없고 또한 수증기로 변할 수 없으며 그러면 구름도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비가 내릴 수도 없다.

 

또한 동식물의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나 분자가 변하지 않는다면 자라날 수가 없고, 또한 생명이라는 것은 탄생할 수가 없다. 우리 몸만 살펴보아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인간 뇌의 현상만 보아도 잠깐도 쉬지 않고 전기·화학적 변화를 이루고 있기에 삶이 유지 되고 의식의 활동이 가능한 것이다.

 

어떤 사회과학자나 종교가들은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고, 또한 우리 몸의 진화는 목 이하에 까지만 해당된다고 한다. 이 말은 인간은 자연계의 동식물과 다른 특별한 생명체이며, 또한 의식(마음)을 만들어 내는 뇌는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에서 보면 인간은 특별한 생명체가 아닌 하나의 동물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뇌도 자연선택과 자웅선택에 의해 진화된 것일 뿐이라고 한다.

 

어떤 종교에서는 인간은 신이 창조했다고 하기도 하고, 과학이 발달해서 자신의 창조론이 너무 종교 색을 띄고 있기에 미국 헌법의 종교의 장유에 위배되는 것을 피해서 교과서에 과학과 함께 가르쳐 자기 종교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지적설계론(세상의 모든 것은 어떤 전지전능한 지적인 자가 설계한 것이라는 이론)’을 들고 나온다. 하지만 과학의 기본 상식은 경험적이고, 관찰가능하고, 궁극적으로 검증 가능한 데이터만을 다룬다. 지금까지 창조론과 지적설계론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어떤 논문도 내 놓은 적인 없다. 아니 초자연적 현상이기에 검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과학 교과과정에 삽입할 수 없는 믿음의 차원인데도 불구하고 2005년 펜실베이니아 중부 미국연방 지방법원에서 지리한 재판을 통해 지적설계론은 과학이 될 수 없고 교과서에 실어서도 안 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정치와 여론, 언론을 통해 끝없이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생각하는 것은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자신의 믿음이 무너질 수 있기에 끝없이 과학을 무력화시키거나 묻혀가려 하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연기법이라고 했다. 이 연기법은 진화론과 맥을 같이 하고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길을 제시한다. 과학은 다만 자연세계에 대한 검증 가능한 자연적 설명을 탐구하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과학을 토대로 인간이 왜 고통과 번민 속에서 살며 행복하지 못하는 것인가에 대한 올바른 관찰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쉬워지고 또한 그 수행방법론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과학과 함께 할 수 있는 종교는 불교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물론 불교에서도 방편으로 신적인 불·보살의 사상을 펼지는 대승경전의 가르침과 윤회(순환논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져 올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불교의 어떤 이론이라도 궁극적으로는 연기법과 합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불교의 상식이다. 인간의 의식수준이 다양하고, 또한 당시의 사회·역사적 현상 때문에 수많은 방편이 있는 것일 뿐이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무상의 이치는 온 우주의 이치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모든 것도 무상의 이치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부처님은 외연기(外緣起, 인간을 제외한 외적 사물의 연기)보다는 내연기(內緣起, 인간의 마음에 대한 고찰)에 집중하셨던 것이다.

 

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생명역사 38억년, 호미니드(인간과 비슷한 종)역사 500만년의 결정판이기에 우리 한 생명은 자연선택적으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평등하며 특별하지도 않다. 그리고 또한 인간의 몸과 의식의 모든 부분을 생명의 나무를 통해 관찰하면 지금 우리를 알 수 있고, 또한 중요한 인간의 마음과 본능에 대한 것도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삼법인의 두 번째 항목인 일체개고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무상의 이치는 인간의 마음에도 통용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음()에 있는 선천적인 유전적 것과 후천적인 환경적으로 경험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은 이런 수준 높은 의식이 없기에 불가능하지만 인간만이 노력여하에 따라 충분히 번뇌를 뛰어넘어 행복할 수 있는 것이기에 사회학자들의 독특하다는 이론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인간이 무상의 이치만 처절하게 깨닫는 다면 현재의 번뇌가 곧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일시적인 것이고 또한 우리의 삶이 우주의 기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다 차원 높은 의식수준에 머물러 모든 생태계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출처 : 옥련암
글쓴이 : 산빛노을(원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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