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인디언 이야기 -13
침묵과 듣기 1- 서정록
인디언들은 말보다는 沈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말은 銀이요, 沈默은 金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로저 해머
같은
사람은 인디언들의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의 言語는 주의 깊게 選擇된다. 마치 外科 醫士의
칼처럼 正確하게... 그리하여 手術用 칼이 썩은 部位를 잘라내듯 삶의 不條理와 거짓을 잘라낸다. 그러나 그들의 言語는 눈보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잎들이 어머니 大地의 품으로 돌아가듯 부드럽고 가볍다. 그리고 簡略하다. -겨우 한 生覺을 말한 것처럼... 그러나 그들의 말 속에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따금 그들의
言語는 매우 깊다.-담요를 짜는 이가 複雜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엮듯...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말을 할 줄 몰라서 沈默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아마도 우리
인디언들처럼 늘 生覺을 하며 사는 이들도 드물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주고받은 말들은 돌처럼 가슴 속 깊이 가라앉아 결코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고...
잘 알려져 있듯이, 인디언들은
白人들과 수많은 條約을 맺었지만 한 번도 그것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조약을 깬 것은 언제나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白人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요구해서 조약을 체결하곤 늘 그들이
다시 와서 깼습니다. 인디언들이 白人들을 信賴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말과 行爲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디언 社會에서 말과 行爲가 다른 사람은 거짓말쟁이로 취급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디언 社會에서 가장
不名譽스러운 일로 여겨집니다. 그만큼 인디언 사회에서 말은 무거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이 그처럼 무거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沈默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우族 出身의 찰스 이스트맨은 '沈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完全한 均衡의 證據인
沈默의 힘을 깊이 信賴한다.
沈默은 몸과 마음과 靈魂의 絶對的인 均衡이다.
어떤 狀況에서도 平穩함을 유지하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 -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
햇빛이 비치는 水面 위에 잔물결 하나 일지 않는 平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知識에 물들지 않고 平常心을 유지할 수 있는 智慧로운 者의 마음을 갖는 것을
우리는 理想的인 삶의 態度로 여긴다.
만일 당신이 "沈默이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對答할 것이다.
"沈默은 偉大한 神靈이다. 神性한 沈默은 神의 목소리다."라고...
만일 당신이
"沈默의 열매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對答할 것이다.
"나 自身을 다스림, 眞實한 勇氣, 또는 忍耐, 참을성, 威嚴, 그리고 尊敬心과 같은 것들이다.
沈默은 人格의 礎石이다."
沈默은 그들에게 成熟한 人間의 標識이자, 훌륭한 사람이
되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뉴욕 지방의 세네카인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에게 沈默은 日常生活 속에서 몸과 마음과 靈魂에 낀 갖가지 感情의 때를 벗어버리고 淸淨의 狀態에 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沈默에 드는 동안, 그들의 肉身과 靈魂은 淸淨해지고 새로워진다고 말이지요. 따라서 沈默은 그들에게 일상에 낀
不淨을 除去하는 一種의 淨化 過程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沈默은 장차 어머니가 될 女性이 반드시
지켜야 할 生活의 規則이기도 합니다.
찰스
이스트맨은
이렇게 말합니다.
姙娠한
女性은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며, 가능한 한 혼자서 靜寂에 둘러싸인 울창한 숲이나 아무도 밟지 않은 들판의 풀밭을 거닐며 祈禱한다. 그녀의 詩的인
마음 속에서 곧 다가올 아이의 誕生은 偉大한 神靈의
現身-英雄이나 또는 英雄들의 어머니-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生覺은 自然의 純潔한 품 속에 있거나 깊은 沈默 속에서 꿈꿀 때만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소나무의 숨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시원한 폭포 소리만이 그녀의 想念을 깰 뿐이다.
한 마디로,
인디언들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沈默과 親熟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延長線上에서
인디언 어른들은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가 되면 第一 먼저 沈默과 恭敬을 가르칩니다.
루페르토
코스토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들은 그들의
嗅覺, 聽覺, 視覺을
使用하는 法을 배우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注意 깊게 보는 法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狀態에서 듣는 法을 배운다.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는 반 푼으로
치부되며, 그의 周圍의
世界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不幸한 사람으로
看做된다.
따라서 인디언 아이들은 일찍부터 沈默하는 法을 배웁니다.
그리고 새나 동물, 곤충, 그리고 나무, 시내, 바람,
해와 달, 별 等 自然의 친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法을 배웁니다.
이렇듯 沈默은 인디언들의
日常生活에서 빼놓을 수 없는 重要한 部分입니다.
루페르토 코스토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神靈들의 목소리는 외딴 場所에서 홀로 孤獨하게 있을 때, 또는 저녁에 티피에서 조용하게 沈默하고 있을 때 들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좋은 神靈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場所는 많다. 조용한 곳에 가서 沈默을 불러
가슴과 마음을 가르치면 많은 좋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實際로 인디언들은 대부분 自己만의
조용한 場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곳은 집 안일 수도 있고, 산이나 들, 또는 숲이나 물가일 수도 있습니다. 조용히 自己
自身과 만날 수 있고, 偉大한 神靈과 對話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相關 없습니다. 그들은 틈날 때마다 그 곳에 가서 조용히 沈默에 듭니다.
포리스트 카터가 쓴 『작은나무의 교육』(The
Education of Little Tree)
[국내에서는 『내 靈魂이 따뜻했던 날들』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글쓴이]이란 책에는
'작은나무'가
自身의 秘密 場所를 發見하는 이야기가
있지요.
나는 실개천 위쪽으로 올라가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遇然히
그 秘密 場所를 發見했다.
그곳은 실개천 너머 山 쪽으로 올라가는 곳에 있었으며,
월계수나무들로 빙 둘러싸여 있었다. 그다지 넓지는 않았으나 四方에 풀들이 자라고 있었고, 특히 허리가 굽은 香내 나는 늙은 丹楓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그곳을 처음 發見한 瞬間 나는 卽時 그 곳을 나만의 秘密 場所로 定했으며, 그 뒤로는 時間만 나면 그곳에서 보내곤 했다.
그 곳에 갈 때면 나는 으레 늙은 개 마우드를 데려가곤
했다. 마우드 역시 그 곳을 좋아했으며, 우리는 늙은 丹楓나무에 기대고 앉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여기저기를 바라보곤 했다.
마우드는 그 곳에만 가면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우드 역시 그 곳이 秘密 場所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어느 날 늦은 오후, 내가 마우드와
함께 단풍나무 아래 앉아 여기저기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내 비밀 장소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을 지나가고 계셨던 것이다. 할머니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도 숲 속을 걸어다니실 수
있었다. 뒤를 따라가 보니, 할머니는
植物의 뿌리를 캐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를 도와드리기 위해 곧장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달려갔다.
뿌리를 다 캔 後, 나는 할머니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통나무 위에 걸터앉아 뿌리들을 種類別로 나누었다. 아직 어렸던 나는 참지 못하고 할머니께 내 秘密
場所에 대해 털어놓았다. 내 얘기를 들으신 할머니는 전혀 놀라지 않으셨다. 그것이 오히려 나를 놀라게 했다.
할머니는 체로키 사람들은 누구나
秘密 場所를 하나쯤은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역시 비밀 장소를 갖고 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서 나도 비밀 장소를
하나 갖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肉身의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靈的인 마음, 卽 靈魂이다.
만일 우리가 肉身의 삶을 담당하는 마음만 發達시켜 貪慾스러운 生覺에 沒頭하거나 남에게서 利得을 取할
方法을 찾는 데만 몰두한다면, 우리의 靈的인 마음은 히코리 도토리 크기로 쪼그라들고 말 것이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靈魂과
關係된 마음은 筋肉과 똑같은 性質을 지녔다고 한다. 우리가 그것을 使用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커지고 强해진다. 靈魂을 크고 强하게 만드는 唯一한
方法은 그것을 通해서 世上의 모든 것을 理解하려는 姿勢를 갖는 것이다. 靈魂에 이르는 門이 열리면 理解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理解의 길을
가면 갈수록 靈魂과 關係된 마음은 점점 더 커진다고 한다. 나는 앞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理解하려고 努力할 것이다. 내 靈魂이 히코리 도토리
크기만해지기를 願치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나의 靈魂이 더욱 크고
깊어지게 되면 언젠가는 내 過去의 肉身들이 살아 온 過程도 다 알게 될 것이며,
차츰 肉身의 죽음에 대해서도 超然할 수 있게 될 거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내 秘密 場所에서 그러한
過程의 일부를 엿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얼음이 풀리고 봄이 되어
萬物이 誕生할 때면- 그리고 하나의 生覺이 誕生할 때도 그렇지만, 모든 것이 새로 誕生할 때는- 太風이 오듯이...
그리고 피와 苦痛 속에서 아기가 誕生하듯이... 할머니는 그런 暴風雨는 靈魂이 다시 物質의 形態 속으로 되돌아가는
過程에서 일어나는 必然的인 騷動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때가 되면 내 秘密 場所에 있는 香氣로운 丹楓나무 역시
靈魂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하셨다.
작은나무에게 그의 秘密 場所는 그의 靈魂을 만나고 自然의 다른 存在들의 靈魂을 만나는
神性한 場所입니다.
同時에
그 곳은 그와 宇宙와 만나는
神性한 곳인 同時에 宇宙의 中心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마릴루 아위악타가 整理한 것으로,
착토族 할머니 이쉬토우아가 孫女인 '작은사슴'에게
沈默과 그것을 通해서 靈魂의 목소리를 듣는 法에 대해 가르쳐 주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할머니와 너는 씨옥수수를
골라야겠다."
나무 테이블의
한 편에 작은사슴은 껍질에 싸인 옥수숫대를 수북이
올려놓았다.
어떤 옥수수는 짙은 오렌지 빛깔이었고, 어떤 것은 황금빛 바탕에 적갈색과 옅은 검정색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밭에 심을 씨옥수수를 고르는 일을 맡았다. 네
아버지와 오빠는 씨옥수수를 담을 자루를 만들
사슴
가죽을 가져왔다.
毛皮는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아 씨앗이
乾燥한 狀態로 있게 해 줄 것이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넓은 들판에 옥수수를 심으려면
씨앗을 넉넉하게 골라야 할 게다. 옥수수는 우리 部族의 친척이다.
옥수수는 그들 옥수수部族으로부터 힘을 끌어온단다. 줄기 하나로는 아무것도 맺지 못하는 法이거든."
할머니는 옥수수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할머니가 옥수숫대를 양 손으로 붙잡고 비틀자 옥수수 알갱이들이 테이블 위에 후드득 떨어졌다. 작은사슴은 재빨리 낱알들을 버드나무 바구니에 담았다.
바구니가 가득차자 작은사슴은 낱알들을 테이블 위에 쏟았다. 두 사람은 씨앗의 빛깔이 너무 검거나 단단해 싹이 트기 어려운 것들을 골라 내었다.
"할머니, 서쪽에는 새로운 하늘이
있겠지요? 옥수수를 심을 時期를 알려 주는 北斗七星도요?"
그女의 質問은 할머니를 웃게 만들었다.
"물론 있고말고. 오직 땅만 바뀐단다. 하늘은 똑같아. 北斗七星이 한 바퀴
돌아 국자 모양이 거꾸로 돼서 물이
쏟아지는 형태가 되면, 우리는 안다. 어머니 大地가 씨앗을 받아들일 準備가 되어 있다는 것을. 偉大한 神靈은
모든 것을
調和롭게 만드셨거든. 偉大한 神靈의 智慧는 이 世上의 모든 存在 속에 다 들어 있단다."
할머니는 말씀을 마치고는 동그란 황갈색 씨앗 하나를
작은사슴의 손바닥에 꼭 쥐어 주셨다.
"씨앗의 가슴은 神性한 불의 조그만
불꽃과 같단다. 하지만 느껴 보거라. 껍질이 얼마나 단단한지! 너는 씨앗을
들판에 던질 수도 있고,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고, 네 손에 가지고 다닐 수도 있지만 씨앗을 오직 따스한 토양에서만 싹이 튼단다. 너무 일찍 싹이 돋아도 그만 죽고 말지. 그래서 씨앗은 安全하게 싹을 틔울 수 있을 때까지 꼼짝하지 않는다. 그것이 씨앗의 智慧다. 그렇게 씨앗은 싹이 트기 適當한 時期가 올 때까지 自身의 靈魂 속에 깊이
들어가 산다."
옥수수 알갱이들 쪽으로 작은사슴의
손을 가져간 할머니는 나무의 뿌리처럼 생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조그만
주먹을 꼭 쥐셨다.
"서쪽으로 가는 길은 힘들게다.
그리고 많은 忍耐를 堪耐해야 할 거야. 씨앗처럼 해라. 그리고 너 自身을 지켜라. 적당한 시기가 올 때까지 네 靈魂 속에 깊이 들어가서
살아라."
작은사슴은
할머니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말했다.
"네 안의 智慧에 귀를 기울이거라. 그 곳에서 偉大한 神靈이
네게 말씀해 주실 게다."
"그럼 할머니도
불 앞에서 기도하실 때, 귀를 기울이고 계신 거예요?"
"불은 우리에게 生命을 주시는 太陽의 친척이란다. 불은 偉大한 神靈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도와
주거든. 기도할 때 나는 귀를 기울여 듣는다. 내 靈魂의 눈과 귀로..."
작은사슴은 화덕의 불을 쳐다보았다.
"불꽃을 보고 있지만, 탁탁
튀는 소리와 불길이 치솟을 때 나는 소리 外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그건 네가 네 몸의 눈과 귀로 들으려 하기 때문이란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손가락 끝으로 작은사슴의
가슴을 톡톡 치셨다.
"네 靈魂의 눈과 귀로 들어야 한단다."
"제게 듣는 法을 가르쳐 주세요."
할머니는 머리를 가로저으셨다.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조용히 沈默하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네 스스로 불의 神性한 힘에 對해 깊이 生覺해 보거라."
그날 밤, 작은사슴은 할머니 곁에서 조용히 沈默하면서 기도하려고 노력했다. 작은사슴은
눈을 화덕의 불꽃에
고정시켰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房 안의 이곳 저곳을 옮겨다녔다. 門가에 쌓아둔 옥수수를 담을 두꺼운 사슴 가죽 자루들, 오빠가 잠자고 있는 건너편 다락, 어머니와 아버지가 주무시고 있는 구석의 침상, 설탕과 옥수수
가루가
담긴 호로박, 물레와 아버지의 총, 과실과 콩, 호박 주머니, 구슬이 장식된 그녀의 모카신 위에서 춤추는 화덕의 불빛, 그녀의 붉은 옷에 장식된
뱀가죽 무늬, 그녀의 목에 걸린 씨앗이 든 조그만 주머니, 할머니의 눈.
작은사슴이 마주친 할머니의 눈은 무언가를 말씀하시려는 듯 가만히 미소짓고
있었다.
"불의 神性한 힘에 대해 生覺하는 것은 忍耐가 필요하단다.
너는 아직 어리다. 때가 올 거다."
할머니가 주무시기 위해 다락으로 올라가신 뒤에도 작은사슴은
한참 동안 담요 위에 앉아서
가만히
불길을 바라보았다. 몸이 따스해지자 잠이 오기 시작했다.
위의 이야기에서 할머니는 沈默을 단단한 껍질 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씨앗에 比愉하고 있습니다.
씨앗이 發芽하려면 흙과 물, 그리고 따스한 溫氣가 있어야 하듯이,
우리들의
靈的인 씨앗이 發芽하려면 適當한 기다림과 集中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沈默이
自身의 內面으로 들어가는 通路인 同時에,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靈魂의 世界로 들어가는 通路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이 沈默과 듣기의 關係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생태공동체를 일구는
『이장』, 2004년7월호.
[우리의 삶 속에 담긴 '창조'의 의미] | |
북미
인디언들은 24시간 늘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잘 되게 해달라고, 잘 살게 해달라고, 福을 달라고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每事에 感謝하는 기도이고, 生命을 살리는 기도이고, 삶에 意味를 創造하는 기도이지요. 그들은 말합니다. 祈禱가 있어 人生은 풍요롭고 살
만한 것이라고...
‘對話를 通해 누군가와 하나 된다’는 뜻이다. 그대는 기도하기 위해 特定한 時間에 敎會에 갈 필요가 없다. 그대는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와 對話를 通해 하나가 될 수 있다. 만일 그대가 그리 한다면, 그대의 삶이 곧 기도가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예술가에게는 혼신의 힘을 다바쳐 하는 藝術行爲가 기도요, 명상하는 이에게는 沈默이 기도요, 운동선수에게는 경기에 熱中하는 것이 기도요, 가족을 위해 정성껏 밥을 짓는 어머니의 行爲 또한 기도요, 전쟁터에 나간 전사의 희생적인 行爲 또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日常的인 모든 行爲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 할 때
祈禱가 된다는 것입니다.
대개
過去나 以前보다 좋아지는 것, 또는 나아지는 어떤 狀態나 條件을 말하지요.
하지만 이런 논리
속에도 결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수많은 사건들이 모두 행위자의 선택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행위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사건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를테면, 國家 間의 戰爭과 같은 것은 한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와는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交通事故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道路의 中央線을 잘 지키며 가는데, 反對편에서 오는 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侵犯해 들이받는
경우처럼 이 세상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와 우연적인 요소가 너무도 많은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행위자의 선택과 그 결과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입니다. 물론 인디언들도 우주의 창조를 말하고, 태초의 창조를 말합니다. 그 점에서 인디언들의 창조론은 얼핏 서구의 창조론과 대동소이해 보입니다. 그런데 인디언들은 또 하나의 創造에 對해서 말합니다. 바로 이 世上의 뭇 生命과 存在들의
日常的 行爲가 바로 創造 行爲라는 것입니다.
偉大한 神靈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인디언들은 말합니다. 이 세상은 수많은 生命과 存在들의 相互作用에 依해서 끊임없이 變한다고. 잠시도 變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모든 生命과 存在는 그들이 일으키는 바람, 흐름, 결, 떨림의 물결 속에서 變한다고.
따라서 이 世上의 모든 變化는 結局 이 世上의 存在들이 함께 부대끼고 어울리며 낳은 結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그냥 變하는 것이 아니라 各各의 存在들의 行爲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存在에게 影響을 미칩니다.
그리고 돌고 돌아 처음으로 돌아옵니다. 始作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오직 變化와 새로워짐과 再生만이 있을 뿐입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듯이 그렇게 돌고 도나, 새로 오는 봄은 지난 봄과 같지 않습니다. 한번 흘러간 江물에는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變하기
때문입니다. 存在와의 關係 속에서,
영향 속에서, 주고받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創造는 태초에 있었던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進行中인 事件이라고. 創造야말로 우리 삶을 可能하게 해주는 根本 條件이라고.
創造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삶에 意味가 있고 來日의 成長이 있다고. 絶望이 있는 곳에 希望이 있고,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고.
숨쉴 때마다 우리는 宇宙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우리의 日常에서는 그런 진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과학적 견지에서는 생물학적 진화론이
중요할지 모르나, 인디언들이 보기에는 日常 속에서 다른 存在들과의 均衡과 平和가 더 重要합니다.
인디언들은 말합니다.
모든 存在는 서로 連結되어 있다고,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반드시 그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게 되어 있다고. 그러므로 늘 感謝하며 살아야
한다고. 人生은 고달프고 걱정거리가 끊일 새가 없지만 그럼에도 늘 경이와 感謝한 것들로 가득차 있다고.
時間觀을 낳았습니다.
오직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높은 곳만 바라보았습니다. 땅은 蔑視했습니다. 낮은 것은 無視했습니다. 오직 未來의 神的이고 理想的인 것만이 그들의
눈과 關心을 사로잡았습니다. 靈的인 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직 높은 곳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어떤 決定을 내릴 때면 반드시 다음 세대에 끼칠 영향을 먼저 考慮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그들의 決定이 未來 世代에게 否定的인 影響을 끼칠 可能性이 있다고 判斷되면 지체없이 그 決定을 폐기했습니다. 그들의 行爲에 智慧와
神性함이 가득한 것은 이런 남다른 努力과 配慮가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日常的 行爲가 創造的 行爲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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