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리] 道란? 10.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도다.
이 본심(本心)은
끝없는 과거(過去)와 끝없는 미래(未來)에 걸쳐
무한(無限)한 시간 속에
단 한번도 생멸한 일 없는
영원불멸(永遠不滅)의 존재(存在)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時間)과
동서남북(東西南北), 상하(上下)의 공간(空間)과
그 속의 모든 생멸(生滅)은
한 마음 속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본심(本心)에는
생사(生死)니, 번뇌망상(煩惱妄想)이니 하는 것이
붙어 있을 수가 없으나,
마음이 산란(散亂)하여
공적영지(空寂靈知)가 온전치 못하면
불안이 싹트지 않을 수 없다.
공적(空寂)과 영지(靈知)에,
어느 쪽 하나라도 결(缺)하면
온전하다 할 수 없다.
공적영지(空寂靈知)의 본심(本心)은
영지(靈知)이면 그대로 공적(空寂)이요,
공적이면 그대로 영지이니,
공적과 영지가 둘이 아니다.
공적과 영지를 둘로 보는 것은
영지가 되면 산란(散亂)하여 공적이 결(缺)하고,
공적이 되면 혼침(昏沈)하여 영지가 결하여
온전하다 할 수 없다.
수레의 양(兩)바퀴에 하나가 빠진 것 같아서
바로 나가지 못한다.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하나라야
참된(眞) 영지요,
참된 공적이라 하겠다.
참된 영지(靈知)는
지식분별(知識分別)이 아니니
공적이요,
참된 공적은
무기혼침(無記昏沈)이 아니니
영지인 것이다.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이 아닌
공적과 영지가
원만(圓滿)한 마음이라야
심중(心中)의 혼침과 산란을 녹이고,
양륜(兩輪)을 갖춘 수레와 같이
똑바로 전진(前進)하여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열반(涅槃)의 언덕에 도달(到達)할 것이다.
일상생활(日常生活)의
동(動)과 정(靜)에 있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하는 것은
뜻에 맡기고,
공적과 영지를 온전히 하면서
혼침과 산란을 녹여 가는 것이
수도(修道)일 것이다.
초심자(初心者)는
마음이 산란(散亂)하기 쉬우니,
동(動)과 정(靜)에
잘 조절(調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향(一向)에 동(動)해도 안되고,
일향(一向)에 정(靜)해도 안될 것이다.
수도(修道)가 숙련(熟練)되고
동정일여(動靜一如)가 되면
일체(一切)무애(無碍)가 될 것이다.
공중(空中)의 새가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날더라도
공중에 흔적(痕跡)이 남지 않듯이 !
*** 스스로 부처임을 자각하소서***
화곡산 화엄정사에서 원오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