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저마다 自己만이 펼쳐낼 수 있는 無限한 潛在力과 可能性을 꽃피워 보고, 그 에너지를 한 곳에
集中하는 沒入과 三昧의 즐거움을 느껴보며, 自身이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열정과 헌신을 다 바쳐 보는
것이야말로 내가 나 自身으로 피어난 나다운 삶의 몫을 行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强力한 發心과 願力도 重要하지만, 더없이 重要한 또 한 가지는 바로 無執着과 利他心입니다.
큰 願力을 發心해야 하지만 거기에도 過度하게 執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執着 없는 發願이
더 없는 强力한 힘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그 發願이 利他的인가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려는 所願인가 아니면 모든 이들과 함께 잘 살고자 하는 利他的인 願力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소망은 내 개인의 복력의 중요한 힘의 원천이 되지만, 이타적인 발원은 나 혼자만이
아닌 이웃과 일체 중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宇宙法界 全切의 福力을 끌어 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돈을 많이 벌라거나, 적게 벌고 만족하라거나 하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가르침이 아닙니다.
自己답게 自身이 이번 生에서 해야 할 일을 자신에게 주어진 몫에 따라 自器 式대로 實行하면 됩니다.
이 세상에는 부자도 필요하고 가난한 자도 필요합니다. 그 모두가 아름다운 삶의 다양성이지요.
부자이면서 풍요로울 수도 있고, 가난하면서 풍요로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외적인 상태가 내적 상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조건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내적인 마음이 주도적으로 삶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外的인 環境과 物質的 現實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부자가 되어도 좋고, 가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도
좋습니다. 마음만 豊饒롭다면 양쪽이 모두 富者인 것입니다. 괴로운 삶을 겪어 보는 것도 좋고, 행복한 삶을
겪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事實 우리는 그 양 쪽의 狀況 모두를 통해 均衡感 있게 삶을 배워나가고 깨달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法華經에는 諸法實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一切 모든 存在와 그 存在가 만들어 내는 狀況은 그 自體로써
眞理의 實相이기 때문에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自身에게 處한 狀況은 남들과의 比較를 넘어서서 그것
自體로써 나에게 최적화된 인생 공부를 시켜주는 최선의 眞理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狀況이야말로 지금 여기 이 瞬間 나의 眞實입니다. 그 일이 지금 이 旬間에 나에게 펼쳐지고 있다는
그 理由만으로도 우리 앞의 現實은 참된 眞理입니다.
남들과 比較하면서, 比較 優位과 劣等에 마음이 휩싸이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언제까지고 주변 환경 조건에
휘둘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삶의 방식에는 옳고 그른 것이 定해져 있지도 않을뿐더러, 잘나고 못난 것,
부유하고 가난한 것은 모두 마음에서 오는 幻想일 뿐입니다. 바깥을 기웃거리며, 比較 優位를 점하려던 삶을
내려 놓고, 지금 여기 이 瞬間 이 자리에서 充滿하게 存在하는 ‘나 自身’에 마음을 集中해 보시기 바랍니다.
相對的인 幸福을 얻으려 한다면, 永遠히 삶을 失敗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여기 이 모습 있는 그대로,
어느 것 하나 바꾸지 않은 채로, 우리는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당당한 진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대와의 比較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내가 나 自身의 眞實 本質 根源과 마주하게 됩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 밖에 없는 당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사랑하십시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