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활연히 깨닫고 보면 산하대지가 근본법륜을 굴리고 있음 알게돼

장백산-1 2015. 4. 5. 00:31

 

 

 

 

 

 

> 뉴스 > 연재 | 박상준의 감산 스님 \'說\'역해
활연히 깨닫고 보면 산하대지가 근본법륜을 굴리고 있음 알게돼
2015년 03월 30일 (월) 15:13:05박상준 원장 kibasan@hanmail.net

“만약 한 부처님만 혼자 갖추고 있는 것이라면 또 어떻게 ‘一切衆生의 몸에서 正覺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華嚴經’에서 말하기를 ‘기이하도다, 기이하도다. 一切衆生이 모두 如來의 智慧德相을 갖추고 있구나’하였습니다. 그런데 如來의 德相은 法身 全切입니다. 衆生들이 통째로 淸淨法身 毘盧遮那佛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니, 어찌 部分만 갖추고 있겠습니까.

비늘·날개·털 달린 모두가  色身三昧 나타냄을 알아
마음 밖 다른 존재 없어도  靑山이 눈 가득히 들어와


 

三祖 승찬 스님이 ‘信心銘’에서 ‘完全하기가 太虛空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원동태허(圓同太虛) 무흠무여(無欠無餘)]이것은 사람 사람마다가 부처님과 同體임을 말한 것이니 부처의 경우만 말한 것이 아닙니다.

圓覺經’에서 ‘一切衆生이 모두 完全한 깨달음[圓覺]을 證得해있다’고 하였으니 단지 갖추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난이 말하기를 ‘저와 부처님이 보각명심(寶覺明心)을 각각 圓滿하게 갖추고 있습니다’고 한 것이니, 이른바 ‘모든 부처님의 法身이 나의 性稟에 들어와/ 나의 性稟이 如來와 合致되었네/ 하나의 달이 모든 물에 나타나지만/ 모든 물속의 달그림자를 하나의 달이 거두어들이네’라고 한 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방에 있는 천 개의 등불 빛이 서로서로 비추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圓滿하고 廣大한 法門을 옛날에 이승들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눈이 안 보이는 사람처럼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한 모서리에 치우친 見解를 일으켜서 그 말에 깜짝 놀라 두려워하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안타깝습니다. 俗諦에 치우쳐서 佛法을 배우는 이들이 입과 귀의 껍데기에 걸려있는 知見을 많이 익혀서 진실하게 참구하는 공부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廣大하고 完全하게 밝은 몸을 깨닫지 못하니 分別心을 일으켜 方便의 권교(權敎)를 要義의 가르침으로 여기며 自己의 見解를 究竟의 眞實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無情物이 說法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와 佛性을 각각 갖추고 있는지 각각 갖추고 있지 않은지 하는 것을 꼭 論할 必要는 없습니다.

법계관(法界觀) 게송을 듣지 못했습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眞空의 理致를 알고자 한다면  (若人欲識眞空理)

 마음 속의 眞如가 外部世界까지 두루해야 하리라(心內眞如還外)

 有情과 無情이 다함께 한 몸이니                      (情與無情共一體)

 곳곳마다 모두가 같은 眞如法界라네                 (處處皆同眞法界)’라고 하였습니다.

 

이 게송만 가슴 속에 간직한다면 모든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六根으로 色을 보고 소리를

들음에 한 번 인각된 것이 三昧로 인각되어 오랫동안 순일하게 푹 익어지면 自然스럽게

안과 밖이 一如하게 되어 有情과 無情이 한 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어느 날 闊然하게 깨닫고 보면 이때에 비로소 山河大地가 다함께 根本法輪을 굴리고 있고,비늘과 각질과 날개와 털 달려 있는 모든 것들이 色身三昧를 두루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음 밖에 따로 存在하는 것이 없는데 靑山이 눈 가득히 들어옵니다.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조주 스님이 어떤 때는 풀 한 포기로 장육금신을 만들고 어떤 때는 장육금신으로 풀 한 포기를 만든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옛날의 대덕스님이 대중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대중들은 보고 있느냐. 바로 지금 十方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이 한꺼번에 老僧의 불자(拂子)에서 放光하면서 大地를 振動시키고 있느니라.’ 이것은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받아서 밝힌 것이니 밖에서 빌려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함원전(含元殿) 안에 있으면서 長安을 따로 찾겠습니까.[함원전은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長安)에 있던 궁궐이다. 등에 업고 있는 애기를 잃어버린 줄 알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찾는 것과 같다. 따로 찾는 사람은 중생이다. 역자주]”

공일자가 이 말을 듣고는 환희용약하면서 절을 하고는 물러갔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1288호 / 2015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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