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無我를 모르는 無知가 괴로움이다.

장백산-1 2015. 5. 4. 20:21

 

 

 

 

지·상·법·석
2013년 06월 28일 (금) 00:09:09한국불교신문 webmaster@kbulgyonews.com

 

 보고 있는 사람의 意識이  있는 그대로의 世界에 同和될 때 完全한 平穩이 있는 것이지요.

 人間의 고(苦)는 無我를 모르는 無知 때문임을 알았지요

혜경(惠耕)스님은 193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56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대승사에서 출가했다. 대경스님에게 구족계를, 야옹스님에게 건당해 ‘회옹(晦翁)’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 양주 화담정사 조실과 서귀포 지역 불자들의 모임인 ‘흰 연꽃들의 모임’ 회주를 맡고
있다. 스님은 <법화경 이야기> <법화삼부경> <우리말 법화경> <법화경 총설> <법구경 입문>
<승만경 강설> <관무량수경> 등 다수의 경전을 번역하고 해설서를 펴냈다. 무려 10년에 걸쳐
<법화삼부경 강설(전10권)>의 집필을 마치고 현재 출판 준비중이다.
 

 

 

 

석모니부처님의 전기에는, 부처님이 생류(生類)의 비참(悲慘)을 체험한 일화가 이야기 되어있고, 그것이 出家에 대한 動機의 하나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어릴 때 어느 날 나무아래에 앉아 農事짓는 것을 觀察했는데, 農夫는 땀투성이가 되어 일하고, 소는 매를 맞으면서 쟁기를 끌고 있었고, 땅에서 파헤쳐진 벌레는 새에게 먹히고, 새는 또 맹금(猛禽)에게 먹히는 것을 목격했어요. 그것을 보고 부처님은 이 世界가 온통 고(苦)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알았지요.

부처님은 또 어느 때, 유람을 위해 東門으로 나섰습니다. 거리에서 주름이 쭈글쭈글하고 허리가 굽은 老人을 만났고 ‘늙음’이라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고 수심에 잠겨서 돌아왔습니다. 그 후 南門으로부터 나와서 병자(病者)를 만나고, 西門에서부터 나와서는 사람이 죽어 싣고 가는 운구행렬을 만났습니다. 부처님은 病과 죽음에 대해 많은 生覺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北門에서 나왔을 때, 당당하게 걸어가는 사문을 보고 ‘이 길이야말로 내 길이다’ 하고 出家를 決心했지요. 부왕은 싯달타의 이러한 결심을 눈치채고 더 화려한 궁전을 지어주고 아름다운 시녀들을 보내주었는데 어느 날 밤 침대 주위에서 잠들어 있는 시녀들을 보았습니다.

코를 골고 침을 흘리며 아무렇게나 자고 있는 그들은 좀 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지요. 이러한 일화는 고(苦)와 부정(不淨)에 대한 疑問과 嫌惡가 부처님을 무아(無我)의 發見으로 引導하는 契機가 된 것을  보이고 있습니다.부처님은 出家하고나서 精神의 근저(根底)에서 希求하는 고(苦)로부터의 解放을 위해서, 마가다국의 서울 라자가하에서 스승으로 삼을만한 수행자를 찾습니다. 최고의 스승을 찾아서 가르침을 請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名聲이 높았던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 두 사람을 차례로 찾아가지요. 알라라깔라마로부터는 ‘소유(所有)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는 冥想을, 웃다까 라마뿟따로부터는 ‘生覺하는 것도 없고 生覺지 않는 것도 없다’라는 冥想을 가르침 받고, 아주 짧은 사이에 그 境地에 到達하고 말지요.

수많은 第子들이 쉽게 到達하지 못했던 境地를 아주 간단하게 體得한 부처님에게 놀란 그들은 남아서 제자의 양성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으나, 자기가 원하는 경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떠납니다. 당시 최고라고 존경받았던 명상의 스승들이 가르치는 窮極의 境地는 어느 것이나 부처님이 구하는 不死의 境地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가 마음의 根底에서 계속 求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榮光 있는 王의 자리나 名譽, 온갖 所有物이나 부속물, 또 思考나 想念마저도 버리게 하고, 한층 自身의 深層 밑바닥에 둥지를 트는 自我意識마저도 滅해 버리게 하는 程度의 것이었어요. 그것은 그를 고행(苦行)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苦行의 原語 ‘타파스(Tapas)’는 熱(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苦行을 하게 되면 身體 속에 熱이 蓄積돼 그 熱의 힘에 依해 神通力이나 超能力이 얻어진다고 生覺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苦行者들이 修行하는 숲에 가서 最高의 깨달음, 圓滿한 平安을 얻기 위한 苦行을 합니다. 나중에 부처님께서 “어떠한 사람이라도 내가 행한 것 같은 극렬한 고행을 한 사람은 없다” 라고 회상하고 있을 정도의 굉장한 고행이었습니다. 정신을 통일하고 극한에 이르기까지 호흡을 제어하고, 또 먹는 것을 제어하는(혹은 끊는) 고행은 고행 가운데서도 가장 극심한 것이었지요. 먹는 것도 극도로 제한해, 배를 만지면 손바닥에 등골이 잡히고, 등골을 만지면 배가 잡힌다고 할 정도로 몸이 쇠약한 상태로 되었습니다.

간신히 숨만 유지하고 있는 危機에 빠져들어서 주위 사람들이 “고따마는 죽었는가” 하고 우려할 정도였지요. 極度의 苦行을 하면서 부처님은 身體的인 苦痛이 가져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苦痛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極度의 굶주림과 목마름, 피로로 인하여 마음의 침착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平安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疑問이 생기면서 苦行은 平安으로 向하는 길이 아니고, 깨달음의 智慧, 解脫로 向해 가는 길이 거기에는 없다 라고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6년간 계속한 苦行을 그만두고, 마을에서 탁발하며 통상적인 음식물을 취하게끔 되었습니다.그만 두었다고 해도 6년간의 苦行과 冥想 修行이 無意味했던 것은 아니지요. 經驗은 모두 個體의 形成에 統括되어, 보다 高次元的인 自己를 形成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님들 스스로가 覺性하고 철저하게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지 않으면 누가 스님들을 성자(聖者)라 여겨 尊敬하고 따르겠습니까

그 후의 부처님의 洞察과 行爲에서도 이때의 經驗은 커다란 糧食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밟아 온 길에는 헛된 것은 없는 법입니다.부처님은 네란자라 강에서 목욕을 하고, 수자타가 올린 牛乳죽을 먹고 氣力을 되찾아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깊은 冥想에 들었습니다. 부처님의 마음속에서 變化가 일어나고 있었지요. 깊은 골짜기에 있는 나무의 봉오리가 조용히 꽃을 피우는 것처럼

自然히 그의 속에 깨달음이 찾아들었지요. 꽃봉오리가, 긴장도 괴로움도 없이 自然스럽게 꽃으로 되는 것처럼, 意識은 時空을 超越해서 宇宙 全切로 펼쳐지면서 完全히 새로운 感覺이 열렸습니다.

同時에 지금까지 知識에 依存해서 쌓아올려지고, 條件 붙여져 온 온갖 意識이 消滅되고 떠나갑니다. 世界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 눈앞에 全 存在를 열어서 確實히 알도록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고 있는 사람의 意識이 있는 그대로의 世界에 同化될 때, 그곳에는 完全한 平穩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人間의 고(苦)는 無我를 모르는 無知 때문인 것을 알았고, 모든 것은 연기(緣起)되었기 때문에 무아(無我)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아(自我)의 문제가 부처님의 커다란 관심사였던 것은 틀림없어요. 自己를 찾아 구해서 가는 막다른 곳은 어디일까요? ‘無’입니다.

 

期經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아이들이 있다, 나에게는 財産이 있다 라고 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을 태운다. 自己에게 自己마저도 없는 것이다. 어찌하여 아이들이 있겠는가. 어찌하여 財産이 있겠는가.” <법구경>. “어떠한 物質도 自己 性稟을 가지고 있지 않다”<법구경>. “自我에 執着하는 見解를 버리고, 목가라자여! 世界를 實體가 없는 ‘空’이라고 보아라. 그렇게 하면 그대는 죽음을 超越한다.” <숫타니파타>. 산발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無我 思想은 이러한 말 속에 굳게 배태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無我, 卽 이 世上 모든 것은 固定不變하는 獨立的인 實體가 없어 텅~비어 空하다는 事實을 說明하는데 취한 方法은 人間을 構成要素로 分析하고 그러한 要素의 어느 것에도 人간 혹은 靈魂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 恒常 不變한 存在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敎示하는 것이었어요. 그 때문에 敎理에 ‘오온(五蘊)’이 있습니다. 五蘊이란 人間을 構成하는 5가지의 要素 즉, 色(肉體), 受(感覺), 想(想念), 行(意欲), 識(判斷)입니다. 五蘊 가운데 受想行識 네가지가 精神的 要素인 것은 佛敎가 人間의 精神面에 特히 關心을 가졌던 證據입니다.(受, 想, 行의 3가지를 非 肉體· 非精神으로 보는 見解도 있음)또 6근(六根)의 교리도 있습니다. 이것은 人間을 感覺器管으로 분석하여 어느 器管에도 靈魂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교시합니다. 6根이란,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를 말합니다.

처음의 5根에 依해서 感覺作用이, 뒤의 意根에 의해서 思考作用이 行해져요. 몸(身)은 피부를 의미해요. 어느 世上, 어느 世界에서도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月)을 가리킬 때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어리석은 사람이 꼭 있어요. 부처님이 무아(無我)의 眞理를 가르치기 위해 五蘊(五蘊)의 교리를 설했을 때, 제자 가운데에는 無我를 보지 않고, 五蘊에 關心을 기울이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손가락의 길이나 굵기를 논하는 것과 똑같은 것처럼, 색(色)이나 수(受)의 本質을 논하기 시작했어요. 이것이 손가락을 본 것입니다. 

 

지난해 4월, 1주일동안 미얀마 양곤에서 제일 큰 쉐다곤 파고다 주지이신 자그라비원타 스님의 초청으로 제자 혜화스님과 함께 미얀마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은 200명의 아이들을 국가 보조도 없이 자비로 먹이고 재우고 교육시킨다고 했습니다. 바간의 부파야, 쉐지곤, 구바욱지, 아난다 사원 등을 참배하고 만다레이로 이동하려고 바간 공항에 도착했는데 안내원이 스님은 줄을 서지 말고 미얀마 스님들과 함께 들어가면 된다고 하여 비행기 표만 들고 들어갔는데, 여권이나 비행기 표를 보자고도 않고 그대로 통과시켰습니다. 내 자리 양 옆에 미얀마 스님들이 자리했는데 비행기가 이륙하자 여승무원이 기내식을 가져 왔습니다. 양장차림인데도 바닥에 털썩 꿇어앉아 음식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미얀마 스님에게 바쳤습니다. 다음은 내 차례였는데 일어서서 일반여객과 똑같이 주고 나서 내 옆자리의 미얀마 스님에게도 전과 같이 공손하게 드렸습니다.

그때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우리 한국의 스님들도 이처럼 국민들에게 진정에서 우러나온 존경의 대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었지요. 한국에서의 스님들의 위상에 대해 생각하니 참으로 서글펐습니다. 우리네 불교신자들은 스님이기 때문에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는 것이지, 과연 존경하기 때문에 머리를 숙이는 것일까요? 깨닫기만 한다면 어떠한 파계 행위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고 잘 못 생각하고 있는 일부 스님들의 막무가내 행동과‘대승이기 때문에…’라는 사고방식으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교계(敎誡)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오만함이 스님들을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은 아닐까요?서로 (닭벼슬만도 못한)자리를 차지하려고 폭력이 난무하고, 도박과 술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이는 등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파계행위를 백일하에 노출시켰으니 부처님제자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스님들 스스로가 각성하고 철저하게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지 않으면 누가 스님들을 성자(聖者)라 여겨 존경하고 따르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전하는 우리네 스님들이 과연 중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大衆들을 現實的인 고(苦)로부터, 소외와 아픔으로부터 解放시켜 주는 일을 앞장서 해야 합니다.



ⓒ 한국불교신문(http://www.kbulgy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