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來부터 이미 완벽한 완전무결함
여산(廬山)의 안개비와 절강(浙江)의 물결이여! 가보지 못했을 땐 온갖 여한이 많았는데
가서 보고 다시 돌아오니 별다른 것 없더라 그냥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일 뿐이로세.
- 소식(蘇軾, 1037년~1101년)
여산연우절강조(廬山煙雨浙江潮) 미도천반한불소(未到千般恨不消)
도득귀래무별사(到得歸來無別事) 여산연우절강조(廬山煙雨浙江潮)
풍문으로 전해들은 理想鄕의 소식은 언제나 조금은 과장되고 왜곡되기 마련입니다. 도(道)나 깨달음
이란 말을 접하게 되면 사람들은 보통 道나 깨달음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神秘스러운 어떤 영역일
것이라는 先入見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온갖 현상들로 현시되어있는 이 누추하고 별볼일 없
는 것 같은 이 現實 이 世上과는 달리, 일상의 자질구레한 삶의 문제들을 훌쩍 벗어나서, 道나 깨달음
그것을 한 번 얻기만 하면 바야흐로 완전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상상하고 예상합니다.
그렇게 상상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상태나 두 세상을 想定하고, 그 둘 중에 하나
는 버리고 다른 하나는 取하려는 意圖나 勞力으로 道나 깨달음을 구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道나 깨달
음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變化나 轉移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의 變化나 轉移가
아닙니다. 道나 깨달음에 대한 이러한 根本的인 錯覺이나 幻想을 돌아보지 못한 까닭에 道나 깨달음
을 찾아 구할수록 오히려 점점 더 道나 깨달음으로부터 헤매고 멀어지는 우스운 일이 벌어집니다.
結局엔 몸소 한 번은 道나 깨달음을 맛보아야 합니다. 소리소문으로만 듣고 想像 속에서만 그렸던
道나 깨달음의 事實을 직접적으로 경험해 봐야 합니다. 道나 깨달음에 대한 그런 직접적인 맛보기나
경험은 인간의 일반적인 상상과는 달리 아주 별볼일 없고 소박할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재냈던 記憶을 회상하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새롭게 얻거나 알아야 할 道나 깨달음의 對相이
따로 어디에 별도로 특별하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세상 그 이상 아무것도 달리 얻을 것이 없다는 事實에 대한 確信일 수도 있습니다.
道나 깨달음은 직접 그 맛을 보면 별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道나 깨달음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했던
사람은 그만큼 실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평범함, 이 소박함이야말로 진실로 비범한 것
이요, 특별한 것입니다. 눈앞을 가리고 있던 한 生覺에서 벗어난 後로도 한동안은 이 평범 속의 비범,
소박한 일상 속의 특별함을 실감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스스로를 살펴보는 生覺이
딱 멈춰지는 순간 本來부터 이미 완벽한 완전무결함,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의
現存 顯現만이 있을 뿐입니다.
- 몽지님(몽지릴라밴드에서) /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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