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이슈

개헌보다 정당 개혁이 시급한 이유

장백산-1 2017. 6. 2. 12:25

중앙일보

[중앙시평] 개헌보다 정당 개혁이 시급한 이유

입력 2017.06.02. 02:50 수정 2017.06.02. 06:22



여당부터 공천 완전경선제 해야 의원들이 당론 정치에서 해방돼
정당 내부 분권화가 이뤄져야 대통령의 야당 설득도 쉬워진다
이를 협치와 소통의 정치라 한다

장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
중앙대 교수
최근 수개월간 한국 정치에서 의미심장한 변화 하나가 관찰되고 있다. 이 변화는 1987년 민주화 이래 우리가 운영해 온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중대한 변화이다. 필자는 한국 대통령제가 점차 내각제 방식으로 운영되는(parliamentarization) 변화를 겪고 있다고 본다. 첫 번째 근거는 전임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서도 드러났듯이, 우리 대통령제는 더 이상 임기 보장을 통해 안정적이고도 경직되게 운영되는 체제라고 보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6명의 대통령 가운데 두 명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고, 직전 대통령은 실제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헌법에는 여전히 임기 보장 조항이 담겨 있지만, 시민들의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평가가 대통령들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유연하게 운영되는 내각제에 근접해 가고 있다.

내각제화의 또 다른 근거는 현역 의원들의 장관 겸직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 4개 부처의 장관직에 더불어민주당의 현역 의원들을 지명했다. 이로써 여당에서 잔뼈가 굵은 이낙연 총리를 포함해 행정부처 장관 후보자의 절반 이상이 현역 의원들로 채워지게 됐다. 야당과 언론이 후보자들의 온갖 사소한 흠집까지도 (물론 평범한 시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반칙을 거듭하면서 살아온 후보자들도 분명 있다) 캐내는 지금의 인사청문회 관행 속에서, 문 대통령으로서는 여당 의원들을 대거 지명하는 현실적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제의 내각제화를 목격하면서,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레 정당정치로 쏠릴 수밖에 없다. 내각제 정부 운영의 중심은 곧 정당이며, 우리 대통령제가 내각제화하고 있는 현실은 민주주의의 성패가 정당정치의 수준에 크게 좌우될 수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문재인 정부가 정치·경제 개혁을 추진하면서 부닥치는 첫 번째 관문은 정당 개혁이 될 것이다. 정당 개혁 없이는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포함한 검찰 개혁도, 4차 산업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경제 생태계의 개혁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동안 정당 개혁에 대해 숱한 전문가들이 다양한 방안들을 제안해 왔는데, 필자는 정당 개혁의 핵심 열쇠는 여야 간 당론 정치의 타파에 있다고 본다. 엊그제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인준 표결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당론 표결은 여전히 국회의사당을 지배하는 낡고 오래된 관습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김현아 의원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총리 인준 표결에 불참했고, 이낙연 총리 후보는 300명의 의원 가운데 160여 명의 지지를 받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달리 말하자면, 앞으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게 될 검찰 개혁, 대기업 거버넌스 개혁 등의 개혁 법안들은 야당의 당론이라는 벽을 넘지 못한다면 좌초할 수도 있다.
여야 간 당론의 무한대립을 넘어서, 흔히 말하는 협치로 가는 길은 두 가지이다. 첫째 대통령에 의한 설득의 정치, 둘째 당론이라는 낡은 관습이 아예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정당 내부 분권화이다. 우리처럼 종종 여소야대를 경험해 온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야당에 대한 설득의 힘을 강조해 왔다. 소수파 대통령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자주, 다수파 야당을 설득하는가에 따라 대통령의 성공이 좌우된다는 것이 미국 전문가들의 주장이었다.

우리의 경우에도 다수의 전문가가 협치를 위한 대통령의 설득력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여기서 종종 미국과 한국의 정당정치의 중대한 차이가 간과되곤 했다. 미국의 대통령들이 야당에 대한 설득의 힘을 발휘하는 결정적 기반은 정당들의 내부 분권화에 있다. 미국의 의원들은 국회의원 후보 공천, 정치자금 조성에 있어서 중앙당이나 정당 보스들로부터 거의 완전하게 자유롭다. 후보 공천은 유권자들과 당원들이 좌우하고, 정치자금 역시 이들에게 주로 의존한다. 따라서 당론보다는 지역구 여론과 의원들 개인의 상식과 소신이 중요하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면서 검찰 개혁 등을 향한 협치를 해 나가는 선결 조건은 바로 여야 정당의 내부 분권화에 있다. 이를 위해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정당 개혁 경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이 먼저 대통령 후보 경선제를 도입하자, 한나라당 역시 마지못해 이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새천년민주당의 후보 경선제는 노무현 현상이라는 폭발적 변화로 이어졌었다. 달리 말해 문재인 대통령의 여당이 먼저 의원들을 당론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의원 후보 완전경선제를 도입하고 이를 아예 법제화할 때에 정당 분권화는 야당들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분권화에 따라 당론이 무력화되고 의원들이 자율성을 가질 때 문 대통령의 야당에 대한 설득은 용이해진다. 우리는 이를 협치와 소통의 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

장 훈 본사 칼럼니스트 · 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