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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기도(祈禱)란?

장백산-1 2021. 6. 17. 12:55

진짜 기도(祈禱)란?

진짜 기도(祈禱)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온전한 평화(平和)에 안착하는 것이다.

겨울잠을 자던 학교도 3월을 맞으며 활기를 되찾았을 터인데 신도님들 중에는 새봄의 설레임보다는 여전히 무거운 마음으로 새학기를 맞는 분들이 계시다. 대학에 가는 자식을 위해 똑같이 입시기도를 했는데 어떤 신도 분은 자식의 합격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반면, 어떤 신도 분은 그 힘겨웠던 수험생 뒷바라지를 한 해 더 해야 하는 분들도 계신다. 그러면서 부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기도와 가피의 힘에 경외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계시고, 부처님을 원망하면서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을 주는지 부처님을 원망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참된 진짜 기도(祈禱)를 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항상 그 기도(祈禱)는 성취된 것이지만, 다분히 무언가를 바라는 기복적(祈福的)인 기도(祈禱)를 한다면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행과 불행이 엇갈리게 마련이다.

 

사실 본래 의미의 기도(祈禱)는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찾아온다. ‘바라는 바’가 있다는 자체는 벌써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랬을 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의 평화(平和)는 깨지고 만다. 바라는 바가 있는 이상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라는 바를 놓아버렸을 때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 만족할 수 있고 온연한 평화로움과 고요와 마주할 때 비로소 참된 기도(祈禱)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 더 이상 바라는 바가 없고 부처님께 빌 것이 없어졌을 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감사’와 ‘찬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가 그대로 깨달은 자(覺者), 즉 부처(佛)이고,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온전한 행복의 순간임을 안다면 사람들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와  ‘찬탄합니다’라는 말 외에는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인 나의 근본(根本)에서 온전한 평화(平和)를 느끼고 있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맙겠는가. 온 우주 법계를 찬탄하고, 삼라만상만물인 하늘, 땅, 해, 달, 별, 나무, 바람, 물, 구름, 온갖 동물, 꽃 한 송이, 풀 한포기를 찬탄하며 그것들의 근본(根本)인 내 안의 부처,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찬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숨 쉬고 있음이 감사하고,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잠자고 생활할 집이 있음에 감사하고, 두 발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기도(祈禱)로써 읊조릴 수 있음이 감사할 것이다. 인간에게 입이 있는 이유는 말하고, 싸우고, 논쟁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찬탄의 기도(祈禱)를 노래 부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렇게 감사하는 행위 그것이 참된 의미의 기도(祈禱)인 것이다.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인 나의 근본(根本), 즉 부처님(佛)께 할 수 있는 기도(祈禱) 오직 감사의 기도(祈禱)를 드리는 것, 찬탄을 드리는 기도(祈禱)뿐이다. 그러나 이렇듯 감사와 찬탄의 기도(祈禱)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 속에 바라는 바가 없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온전한 만족(滿足)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가 바로 부처의 자리라는 믿음, 나의 근본(根本)이라는 믿음, 천지만물 산하대지가 있는 그대로 참빛(眞光)이라는 말씀을 굳게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의 만족(滿足)은 곧 감사의 기도로 이어지고, 감사의 기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 줄 것이다. 우리 모두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 미래에 있을 어떤 결과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더없이 고맙고 감사한 찬탄의 기도를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