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 (의도)는 내가 아니다.
『상윳다 니까야』에서는 “행온(行蘊)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깊이 관찰해보면 그것들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허망한 것으로 드러나며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행온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라고 함으로써 행온 또한 비실체적인 무아(無我)임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일으키는 의도와 의지, 욕구와 바람 등은 결정적으로 정해진 것일까? 예를 들어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의도를 일으킨 사람이라도, 뜻밖의 인연을 만나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거나, 회사에 취직하기도 한다. 우리의 의지와 욕구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계속 변하는 것일 뿐이다. 부와 풍요,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던 사람도 어느 순간 그러한 삶이 허망한 것임을 깨닫고는 가진 부와 재산을 이웃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수행자의 길을 걷기도 한다.
이처럼 의지(의도)는 내 안에 고정불변하게 존재하는 ‘나’가 아니다. ‘의도하는 나’가 정해져 있지 않다.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떤 특정한 한 가지 의지나 욕구를 끝까지 고집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이 성사 되어야 한다고 고집하게 되면, 다른 의도를 가진 사람들과 다투게 되고, 사고가 한 가지 방향으로만 제한되어 꽉 막힌 채 의식이 닫히고 갇혀 버린다.
타인이 내 의도와 다른 제안을 하며 내 의도를 꺾고자 하면, 내가 공격받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이것은 내 안에 ‘의도하는 나’가 있다고 여기며 그것을 나와 동일시하기에 내가 공격받는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사실 ‘의도’는 인연 따라 생겨난 비실체적인 마음일 뿐, 그것이 ‘나’인 것은 아니다. ‘의도하는 나’는 없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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