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 괴로움(색온의 괴로움)
누군가에게 얻어 맞았거나, 육체적인 고된 노동을 하거나, 몸에 상처가 나게 되었다면 색온의 요소가 괴로운 것이다.
이러한 색온의 괴로움 , 즉 육체적인 괴로움은 실체적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산길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며칠이고 계속해서 걷는 것은 괴로울 수 있지만, 스스로 선택해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갔다면 이 트레킹은 행복한 산행이 될 수도 있다.
직접적으로 몸에 통증이 느껴질 때도 마찬가지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의 인터뷰를 보면, 그 지옥 같던 상황에서는 오른손이 통째로 날아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음을 고백하곤 한다.
이처럼 몸의 통증이나 상처가 곧장 괴로움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색온의 괴로움은 결정론적이거나, 실체적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육체를 ‘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육체 안에 갇힌 제한된 존재로써의 ‘나’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살 수밖에 없다.
육체가 나인 것은 아니라는 생생한 사실을 깨달은 애런 롤스턴(Aron Ralston)의 실화가 있다. 롤스턴은 깊은 계곡에서 혼자 등반을 하다가 굴러 떨어진 큰 바위 덩어리가 그의 오른팔을 짓누르는 사고를 당했고, 손을 빼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를 닷새가 지났지만 꼼짝 없이 죽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죽음을 받아들였더니 공포가 사라지고 육신의 집착도 사라졌다. ‘팔이 나’라고 생각할 때는 팔이 바위에 깔려 꼼짝 못하고 죽게 될 때 ‘나’도 꼼짝 없이 죽게 된다고 생각했지만, 육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났더니 팔이 나인 것은 아니며, ‘나는 팔 이상의 존재’임을 깨달았다. 비로소 팔을 잘라내고 살아날 수 있었다.
색온은 무아다. 내가 아니다. 진정한 나는 육신(색온) 그 이상의 존재다. 색온을 나와 동일시하는 데서 벗어날 때 비로소 사람들은 육체적인 괴로움, 즉 색온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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