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見性) 4

공적한 마음이 신령스럽게 알기 때문에 어리석지 않다

공적한 마음이 신령스럽게 알기 때문에 어리석지 않다 '空寂之心 靈知不昧(공적지심 영지불매) 는  보조 지눌스님의 절요의 한부분입니다. 공적한 마음이 신령스럽게 알기 때문에 어리석지않다.' '마음을 깨달았든 아니든 간에 마음이 본디 스스로 아는 앎(知)이며, 앎은 인연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경계로 인연하여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앎(知)이라는 글자는 온갖 오묘한 도리의 근원이다. 이 앎을 모르기 때문에 나에 대해 집착하고, 나와 내 것으로 만들어 좋아하고 미워하는 분별을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선지식을 만나 그 가르침을 받아 '텅 빈 고요한 앎'을 몰록 깨닫는다면, '고요한 마음자리에서 드러나는 앎'은 망념도 없고, 어떤 형태도 없으니, 어찌 '나'와 '남'에 대해 집착하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

가야산선원 선원장 효담 스님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 끊임없이 욕심 부려서 괴로움 자초 만족할 줄 알아야 괴로움 · 권태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어 자신의 본성 깨닫고 욕망 · 근심 · 걱정에 휘둘리지 않는 게 선(禪)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관계를 고슴도치에 비유했습니다. 인간관계는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돋아있어서 서로에게 가까이 가면 상처를 준다는 겁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게 부부인데 이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제일 많이, 끊임없이 주지 않습니까? 쇼펜하우어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리를 두어 상처 주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 거리 두기가 바로 예의이고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 비결이라는 겁니다. 쇼펜하우어는 오늘날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왔다..

언제나 어디서나 '아무 일 없다'

언제나 어디서나 '아무 일 없다' 모처럼 공주 마곡사에 갔다가 오는 길에 갑사(甲寺)에 들렀다. 시간의 여유를 갖고 떠나는 산사(山寺) 기행은 늘 마음에 맑은 바람을 한 줄기 던져 준다. 갑사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법당 앞 긴 의자에서 깜빡 잠이 든 스님. 내가 법당에 들어갈 때 그 스님은 바람을 바라보시는 건지, 이제 막 올라오는 매화꽃대를 바라보시는 건지, 그냥 그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긴 의자에 평화롭게 앉아 계시던 바로 그 스님. 아무 일 없다는 듯 영락없이 한가(閑暇)한 도인(道人)의 모습이다. 아무렴, 우리들의 삶에는 늘 아무 일이 없으니까... 스님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 글귀가 안에서 피어오른다. '아무 일 없다'. 우리들 삶에 그 어떤 사건이 일어나건, 좋지 않은 사고를 당했건, 심..

부처님 신장님은 다 알고 계신다

부처님 신장님은 다 알고 계신다 / 지광스님 견성(見性)이라는 말은 마음을 본다는 겁니다. 마음을 볼 수 있다는 말은 마음을 만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되고 마음을 들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사람들은 마음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까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그러듯이 자신이 누군지 확실히 알게 되면 마음을 계량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은 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득(自業自得)이지 어느 누구도 여러분을 징계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부처님이 계신데 무얼, 누가, 어디에 심판관이 따로 있단 말입니까? 어리석어서 남들이 심판하는 거처럼 보이지만 내 마음이 먼저 나를 심판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지 부처님과 신장님들은 전부 다 알고 계십니다...